아이를 키우며, 나를 배우는 중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빠르다 / 느리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걷기, 말, 배변처럼 눈에 보이는 발달 지표들은 비교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쉽다.
축복이는 신체 발달 쪽이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걷기는 16개월에 시작했고, 말도 또래에 비해 느리다. 배변감은 비교적 일찍 인지했지만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았고, 얼마 전에는 변기 사용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걷기가 늦을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걱정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은 29개월까지는 신경 쓰지 않다가, 30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발음에 큰 변화가 없어 조만간 검사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던 바로 다음 날, 아이는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선명해진 발음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아이를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고, 지금은 예전처럼 쉽게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왜 아이는 이런 순서로 자라고 있을까, 이 아이의 발달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축복이는 인지가 먼저 발달하고, 실행은 나중에 따라오는 타입인 것 같다.
옹알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했고 표현 욕구도 분명하다.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도 좋다. 다만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두 단어를 이어 말하거나 문장을 만드는 속도가 어린이집 친구들에 비해 느리다.
아이의 이해도와 표현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면, 말이 느린 이유는 '이해 부족'이 아니라 입과 혀, 호흡, 발성 같은 ‘말하는 몸’이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배변도 비슷하다. 배변감은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신체 실행이 아직 따라오지 않은 상태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이런 흐름을 ‘발달 비동기(Asynchronous Development)’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아이를 분류하거나 특별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발달 영역들이 같은 순서로 자라지 않을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다. 말, 배변, 걷기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지·감정·신체 실행이 각기 다른 순서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이는 지연이라기보다는 발달이 배열되는 방식의 차이다.
발달을 하나의 직선으로 보면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발달을 여러 영역이 각기 다른 리듬으로 자라는 과정으로 보면, ‘늦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기질 연구로 잘 알려진 The Nature of the Child에서 제롬 케이건은 아이의 발달을 ‘얼마나 빨리하느냐’보다 ‘어떤 리듬으로 자라느냐’의 문제로 설명한다. 어떤 아이는 뇌가 먼저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신체 실행은 그 뒤를 따라오는 구조를 가진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앞당기는 훈련이 아니라 몸이 연결될 시간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축복이는 16개월에 걷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걷고 뛰는 움직임이 안정적이다. 균형을 잘 잡고, 방향 전환도 자연스럽다. 킥보드도 수월하게 탄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늦게 시작했지만 따라잡았다’는 말보다는 ‘충분히 준비된 뒤에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고 느꼈다.
어떤 아이들은 일찍 걷기 시작하지만 한동안 자주 넘어지고, 걷기와 뛰기, 균형 감각이 따로 발달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걷기 전까지 몸을 충분히 준비하고, 시작과 동시에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발달을 기능의 축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눈에 보이는 기술이 늦게 나타난다고 해서 그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기나 조절, 실행 같은 기술은 이미 내부에서 충분히 준비된 뒤 어느 순간 한꺼번에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방임이 아니라 아이의 타이밍을 존중하는 선택이 된다.
나는 요즘 아이의 신호를 보여 지금 개입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기다림이 더 나은 선택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발음을 고쳐주지 않는 것도, 배변을 서두르지 않는 것도 “알아서 크겠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는 지금 기다림이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느리다’는 말을 ‘덜 자랐다’는 뜻으로 쓰고 싶지 않다. The Whole-Brain Child에서는 아이의 뇌 발달이 의미 이해와 감정 처리 같은 상위 기능이 먼저 열리고, 그다음에 신체 조절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해는 빠른데 실행과 조절이 늦은 아이들이 있다. 이건 발달 지연이 아니라, 연결 순서의 차이다.
축복이는 느린 몸을 가졌지만, 몸보다 먼저 열리는 마음을 가진 아이다. 이 두 흐름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 시점이 다른 아이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발달은 언제부터 속도의 문제가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순서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답을 내리기보다는 그 질문을 조금 더 오래 붙들고 가기 위해 남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