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사람이 AI를 사고 도구로 쓰는 방식
처음에는 몰랐다. AI 가 답을 쉽게 준다는 것도, 그게 내 사고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다만 나는 대화 중에 자주 멈추고 있었다.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고, 틀렸다고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답은 충분히 괜찮았고,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도 문장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 멈추고 숨을 고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미 답은 앞에 놓여 있는데, 나는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 멈춤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생각이 많은 편이니까, 원래 이런 식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다른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답을 받으면 마음은 잠깐 편해진다. 안심도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되고 나는 또다시 묻게 된다. “이번에는 뭐가 맞지?” 그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답이 내 안에는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을.
내 관심은 조금씩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번 상황의 정답이 아니라, 내가 판단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로.
아이를 키우고 다양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 기다림이 더 나은 순간도 있다. 그 차이는 아주 미묘해서 상황과 아이와 시점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준에 따른 듯한 “이렇게 하세요”라는 답은 이 미묘한 차이를 한 번에 지워버린다.
누군가 대신 판단해 주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내 아이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이건 양육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고 전반에 대한 태도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화 속에서도 자주 멈춰 서는 사람이다. 이 말이 정확한지, 이 표현이 내 기준과 어긋나지 않는지, 이 문장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건 내 생각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래서 사고를 건너뛰고 바로 답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감각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자꾸 조심스러워졌다.
AI와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만, AI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다. 생각의 주도권은 끝까지 내가 가져가고 싶다. 그래서 더 똑똑해 보이는 답보다, 더 설득력 있는 문장보다, “이건 내가 이렇게 생각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더욱 중요하다.
그 지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답을 잘 주는 챗봇이 아니라, 생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챗봇은 가능할까. 정리해 주지 않아도, 결론을 서두르지 않아도, 질문이 생긴 지점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대화.
그래서 나는,
생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챗봇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