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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Oct 16. 2020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 2년간의 찝찝함 내려놓기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여름이었고 집이 시원해서 좋았다. 통풍이 잘 되어 쾌적했는데 10월이 되자 너무 추웠다. 전에 살던 집은 중앙난방이었는데 에너지가 남아 돌아서 한 겨울에도 넘치게 난방을 해주었다. 덕분에 추위에 약한 나는 좋았지만 열이 많은 편은 힘들어했다. 지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다. 겨울에 춥다는 것은 내 기준이고 편은 좋단다. 지금 집도 중앙난방이지만 집마다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있어서 가구마다 난방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사를 한 뒤 업무 처리를 위해 관리 사무소에 갔을 때, 난방이 시작되는 시기에 연락을 주면 점검을 나온다고 했다. 난방이 시작되자마자 연락했고 보일러가 너무 낡아서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집을 매수한 지 두 달도 안 되었기 때문에 부동산과 전 주인에게 연락해서 보일러 교체에 대해 의논했고, 매도자와 우리가 비용을 반씩 부담했다.


낡은 파이프와 밸브를 교체했는데도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아 배관을 청소했다. 배관 청소를 하면서, 욕실 공사를 할 때 관련 장비 설치를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도 바꿨다. 이틀 동안 매도자와 관리사무소간의 다툼, 업체 선정에 대한 이러쿵저러쿵, 비용이 적당한지 비싼지에 대한 논쟁이 오갔지만.. 잘 해결되었다.


두 번째 겨울,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부품에 쌓인 이물질 때문이었고 관리사무소에서 해결해주었다. 다음 해에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또 다른 부품이 낡았는데 왜 작년에 바꾸지 않았냐며 교체를 권한다. 어라, 관리사무소에서 아직 쓸만하다고 했던 부품인데... 그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비싸도 괜찮으니 수리해달라고 했다. 직원은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아직 쓸만하니 그냥 쓰란다.


뭐야, 나.. 뭔가 속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다른 업체에 비해 높은 가격 때문에 부동산과 논쟁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관리사무소와 수리 업체가 결탁되어 있는 건가. 이것저것 따져 물었지만 직원은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 바삐 돌아갔다. 보일러는 잘 돌아갔다. 관리비 폭탄도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한 해를 지내고 올해 난방이 시작되었다.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는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작년과 같은 소리 - 이물질이 끼어서 뚫었고 부품이 오래되었다. 2년밖에 안 된 우리 집 보일러실 부품들의 사연, 작년과 똑같은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자꾸만 커졌고 직원들은 친절해졌다.


‘이물질이 끼었다. 부품이 오래되었다’는 말은 화가 날만한 내용이 아닌데 왜 나는 자꾸 화가 날까. 속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사 올 때 보일러 수리를 맡았던 업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말을 돌린다. 점검을 올 때마다 부품이 오래되었으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가, 관리소에서 교체해야 하는 부품일 경우에는 그냥 쓰라며 말을 바꾼다.


멀쩡한 것을 바꾼 것 같고, 다른 업체에 비해 비싸게 한 것 같아서 억울하다. 부품을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관리소에 연락해서 점검을 받아야 하는 것이 귀찮다. 하지만 쓸데없이 돈을 썼다고 해도 이제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고장 없이 보일러가 잘 돌아가서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물질이 낀다는 부품을 갈아달라고 했더니 올해는 그냥 쓰란다. 내년에 또 같은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속은 걸까. 속았다면 무엇을 얼마나 손해 보았을까. 시간? 돈? 귀찮음? 타인을 속이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이득을 위해서? 2년 전 나를 속여서 얻은 이득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만 원일 텐데.. 몇만 원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것이 과연 이득일까. 아니면 내가 속았다고 오해하는 걸까. 2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때 속았다 한들 그게 지금과 무슨 상관인가.


보일러는 잘 돌아가고 올 겨울 우리 집은 따뜻할 텐데..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월세, 전세를 전전하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주인에게 자주 속았다. 대부분 원래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일들이었다. 돈이 아까운 것보다 속은 것 같다고 분노하고 바보같이 당한 나를 자책하는 시간이 더 괴로웠다. 이상하게 속고 속아도 여전히 사람을 믿게 된다. 속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보다 그냥 믿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속 편하다.


속은 건 아닐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기보다는 현재 일어난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좋다. ‘저들이 나를 속였을지도 모른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따뜻한 집’에 분명한 초점을 두자. 어쨌든 올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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