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Nov 13. 2020

지금 여기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가 37세에 뇌졸중을 겪고 8년 동안 회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상세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던 질 볼트 테일러는 1996년 12월, 뇌졸중(좌뇌 출혈)을 겪는다. 좌뇌의 기능이 마비되는 과정을 통해 일반인이라면 인지하기 어려운 뇌 기능의 변화를 생생하게 체험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그날, 이후 8년의 기록’에서는 뇌졸중 이전의 삶, 뇌졸중 이후 겪은 몸과 정신의 변화를 자세히 기록한다. 2부 ‘나로 살아가는 법’에서는 뇌졸중 경험으로 배운 것을 정리하고 3부 ‘우리는 뇌에 관해 알아야 합니다’에서는 뇌, 뇌졸중에 대한 지식을 짧게 소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다. 우리 두뇌의 두 반구(우뇌, 좌뇌)는 외피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두 개의 반구는 뇌량을 통해 소통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각각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좌뇌의 출혈로 인해 뇌기능이 손실되어 가는 4시간 동안 ‘좌뇌는 동작하지 않고 우뇌만이 가동’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나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그저 관찰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말이다. 3차원의 물리적 현실과 연결이 끊긴 상태로 몸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독자적 대상으로 지각할 수 없게 되었다.


좌뇌의 부정적인 판단이 사라지자 나는 나를 완벽하고 전체적이며,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다. p.61


우리는 평소 좌뇌의 판단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의 깊은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저자는 회복과정에서 양측 반구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좌우하는 성격을 직접 선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의 깊은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평화와 사랑, 기쁨, 공감을 표현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p.134

우리는 오른쪽 뇌의 평화로운 의식에서 출발해야 하며, 왼쪽 뇌의 능력을 사용하여 바깥세상과 상호작용해야 한다. p.152


뇌졸중을 경험하지 않은 일반인도 우뇌에 접속함으로써 ‘신체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나와 타인의 구분이 사라지는 상태, 우주와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완전한 평화 상태에 들어가는 것’ 등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뇌의 평화로운 의식에서 출발하는 방법, 즉 우뇌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좌뇌와 우뇌)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2. 부정적인 사고나 감정의 순환이 시작되면 이런 회로에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존중하기)

3. 이런 회로가 내 몸에 생리적으로 어떤 느낌을 주는지 집중하기

(마음, 신체 변화 : 경계심이 드는가? 동공이 팽창했나? 숨이 깊거나 얕은가?)

4. 정서적, 생리적 변화가 사라질 때까지 90초 기다리기

5. 뇌에게 특정한 사고 패턴에 엮여 들어가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청하기

(아이를 대하듯 뇌에게 차분하고 거짓 없이 말하기

‘생각하고 느끼는 네 능력은 높이 사지만 나는 더 이상 이런 생각이나 감정에는 관심이 없어. 그러니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지 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위 과정을 통해 원치 않거나 부적절한 사고 패턴에 엮이지 않고 우뇌의 평화로운 의식에 닿을 수 있다. 알아차리기, 현재 일어나는 감정과 변화에 집중하기, 인정하고 존중하기 등은 명상의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나는 요즘 날뛰던 좌뇌를 잠재우고 우뇌를 사용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인 듯하다. 어지러운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면서 마음의 속도를 늦췄고, 최근에는 모닝 페이지를 통해 좌뇌의 재잘거림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감사일기가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우뇌를 활용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 하나, 매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몇 문장을 암기하고 녹음하는 과정에서 꽤 자주 ‘하기 싫다. 괴롭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때마다


① 느껴지는 기분을 가만히 인지하고

② 기분과 상관없이 행동하겠다고 다짐

③ 암기, 녹음 등 행동


이때 하기 싫다는 기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분에 집중하면 부정적인 마음이 커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행동을 시작해도 지속하기가 어렵다. 이 과정에 성공하면 기분은 사라지고 과제를 마치게 되는데, 기분에 잠식되면 한없이 과제를 미루게 된다.


과제를 하던 초반에는 기분을 무시하고 외면했는데 경험이 쌓일수록 외면보다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기분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영어공부를 할 때만큼은 부정적인 기분이나 생각이 들어도 행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 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 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p.148


어떤 자극으로 인해 특정 감정이 올라오는 것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분노가 일어났는데 평안함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한다고 해서 ‘분노’라는 감정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감정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감정을 구성하는 화학 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90초 이후에는 최초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올라오는 감정(하기 싫다, 괴롭다)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기분에 집중할지, 행동할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뇌를 활성화시켜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의지와 선택으로 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놀랍고 신기하다.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우뇌의 ‘평화, 사랑, 기쁨, 공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과거의 경험을 통한 패턴과 규칙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좌뇌’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에 만족하고 정이 많으며 낙관적인 우뇌’의 평화로움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실천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 참고 : 좌뇌와 우뇌의 차이                     


작가의 이전글 과연 인생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