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정신이 없다. 주 3일 출근이라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많이 바쁘다. 오랜만에 하고 있는 고1 수업은 공부를 해도 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자주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이 바빠지는 걸 보면, 아마도 나는 지금 바쁜 게 맞다.
바쁘면 바쁜 거지 바쁜 게 맞다니.
나는 나 자신이 참 예민하다고 생각하는데 또 어떤 면에서는 참 둔하다. 정작 바쁜 시기에는 그런 줄 모르다가 머리가 복잡해지고 몸이 지쳐서 격한 신호를 보내야 ‘아.. 내가 실은 바빴구나..’ 깨닫는다.
작년에는 하고 싶은 활동으로 매일을 채웠다. 평일에는 영어, 독서, 글쓰기, 각종 모임을 하며 열심히 움직이고 주말에는 신나게 보드게임을 했다. 생애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1,2월에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하다 보니 지쳤고 두 달이 다 된 오늘,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내 일상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수업 준비에 드는 시간과 마음의 쏠림 정도, 그 외 시간에 해낼 수 있는 활동, 쉼에 필요한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수업 준비 n시간, 글쓰기 m시간, 조카들 수업 p시간, 모임 k시간 등등 기계적으로 하루를 계획했다. 1월에는 글쓰기 모임을 쉬었지만 1월 말에 새로운 글쓰기 모임과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2월에는 쉬었던 글쓰기 모임에 합류했다.
돌아보면 2월 초부터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수업 준비를 할 때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는 일은 많은데 제대로 못하는 느낌. 수업은 수업이고, 좋아하는 것도 다 하고 싶다는 마음에 욕심을 부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평안, 여유, 천천히, 책, 글쓰기, 다양한 사람과 넓은 세상을 만나는 일, 결이 맞는 사람들과의 소통,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도 괜찮은 관계’다. 감사 일기에 지속적으로 쓰는 단어와 자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종합해보면 ‘책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만나고,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것.
책도 좋지만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책과 쓰기, 관계’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세 가지가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어우러지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월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기존 글쓰기 모임을 쉬는 대신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미뤘을 것이다. 모임을 줄였다가 한 달만에 여러 개의 모임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고. 나에게 충만함을 주는 활동을 남기고, 나의 속도를 고려해 다른 활동을 잠시 멈추었을 텐데. 올해 1,2월은 나의 속도와 성향, 나에게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해서 마주하게 된 바쁜 시간이었다. 보낸 시간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일상에 새로운 일이 끼어들었을 때, 그래서 기존에 이어오던 일상을 재정비해야 할 때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일상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사회적 성취를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유롭고 느린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의 ‘빠름’이 싫어서 여유로운 나라로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변화가 좋아 한국을 찾는 사람도 있다. ‘잘 산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충만함을 느끼는지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아닐까.
정돈되지 않은 두 달간의 바쁜 시간을 통해 나에게 ‘소통과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나를 살피며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곁에 두고 싶다. 내 삶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를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