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의책 표지를보고 쓴 픽션입니다
산 아래 자리한 우리 마을에는 15가구가 산다. 대부분 짙은 고동 빛을 띠고 있는 집들과 달리 산자락에 닿아 있는 게일 아줌마 집은 쨍한 푸른빛이다. 마을 입구에서 아줌마네 집을 바라보면 거대한 초록빛 산 아래 푸른 동굴이 입을 꾹 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집은 푸른 동굴 바로 옆이다.
우리 가족은 2년 전에 이 마을에 왔다. 여동생 테리의 피부염이 악화되어 공기 좋은 곳을 물색하다가 정착하게 되었다. 테리는 태어날 때부터 약했다. 부지런히 병원을 찾아다니며 전전긍긍하던 부모님은, 차도가 없는 동생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익숙한 거리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산에 파묻혀 있는 듯한 이곳으로 이사하던 날, 나는 종일 입을 다물었고 굶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테리의 피부염은 나아졌다. 1년 동안 테리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주 칭찬받았다. 하지만 테리가 좋아지면 옛 마을로 돌아가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엄마의 약속을 굳게 믿은 내가 멍청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매일 꾸중을 듣는다.
이곳은 따분하기 그지없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게일 아줌마네 집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금요일 오후 2시,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게일 아줌마는 창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한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아줌마를 불렀다.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아서 심술이 났다. 돌이라도 주워서 던져볼까.. 고약한 생각을 하던 찰나, 창밖으로 종이 한 장이 펄럭이며 떨어졌다. 미동도 없던 아줌마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종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문 앞에 다다르자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게일 아줌마가 문을 열어주었다. 왠지 머뭇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아줌마의 검정 구두가 낯설다. 맞아, 아줌마가 외출하는 걸 본 적이 없지.
앞서 걷는 아줌마를 따라 들어가며 고개를 든 순간, 숨을 멈췄다. 거실 천장이 짙은 녹색과 연둣빛이었다. 벽지는 은은한 하늘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카펫은 바깥벽이 이어지는 듯 쨍한 푸른빛이었다. 창가에 놓인 소파는 더 짙은 푸른색이었다.
“가져다줘서 고맙구나”
슬쩍 훔쳐본 편지 속 조이스가 누군지, 왜 아줌마는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에 창밖에 서 있는지, 외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대체 언제 외출하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아줌마의 투명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줌마가 간식을 가지러 간 사이, 짙푸른 소파에 몸을 파묻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푸른 동굴이다. 내 생각이 맞았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여긴 나밖에 없어. 푸른 호수에서 노닐고 있던 나를 향해 핑크빛 고래가 다가왔다. 초록색 쿠키와 오렌지 주스다. 아닌데, 나는 좀 더 헤엄치고 싶은데.
바삭바삭, 쿠키를 먹으며 책상 위에 놓인 그림책을 만지작거렸다. 가만히 바라보던 핑크 고래가 말했다.
“읽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