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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Feb 13. 2022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다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사람은 언젠가 양심이라는 재판관과 만나게 된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2007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던 러시아의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Leopol'dovich Rostropovich, 1927~2007)가 80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전 세계는 위대한 음악가의 사망에 깊은 탄식과 애도를 보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한 음악가를 넘어서 위대한 인간이었고 음악을 통해 자유와 박애를 노래하며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서베를린 장벽 한 편에 홀로 첼로를 들고 나타나 바흐의 무반주 조곡을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될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내한 공연 당시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다시 나왔을 때 무대 뒤편 합창석을 향해 돌아 앉아 연주를 하기도 하였는데 연주회 내내 자신의 뒷모습만을 보아야 했던 합창석 관객들을 위한 그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또한 로스트로포비치는 한국의 어린 첼리스트 장한나를 발굴해 키워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는 1927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첼리스트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설적인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인 로스트로포비치는 가족이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첼로와 피아노를 공부하였고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 관현악법, 셰발린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 후 피아니스트 리히터, 길레스, 바이올리니스트 코간, 오이스트라흐 등과의 함께 연주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이름을 알렸으며 그 후 여러 국제 콩쿠르를 석권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있었다면 지금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첼리스트로서의 존재감은 독보적인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구 소련 정부로부터 인민예술가의 칭호와 함께 예술분야의 최고 권위의 상인 레닌상과 스탈린상을 받은 로스트로포비치였지만 반 체제 작가인 솔제니친을 옹호하면서 소련 정부와 대립하기 시작하였고 박해가 심해지자 결국 1974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미국을 건너간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리스트 활동과 더불어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활약하는데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악단을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결국 1978년 소련 정부는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지만 1990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의해 복권됩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필요하거나 불의가 있는 곳에 그는 어김없이 음악으로 항거했고 어려운 이들의 친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2월 27일 파리 살 플레이엘에서는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으며 1991년 군부 쿠데타 시도를 막기 위한 크렘린 광장 시위대와 함께 하기 위해 입국 비자도 없이 모스크바에 들어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99년 러시아에 설립한 로스트로포비치 재단은 지금까지 많은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음악 앞에서는 항상 겸손하였는데 그가 남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녹음은 그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만약 한 인간이 그의 일생에 꼭 한 번만 ‘완전’이라는 말을 쓴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흐의 작품을 말한다. 나는 아직 그의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을 녹음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나의 속에서 아직 기회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15살부터 수도 없이 연주했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음반을 그의 나이 64세 때인 1991년에 비로소 세상에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삶은 진정한 음악의 가치와 힘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많은 음악가들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 로스트로포비치

https://youtu.be/Ml14kGHCB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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