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1827년 9월 11일,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이 공연 중인 파리 오데옹 극장, 많은 관객들이 이 유명한 비극에 빠져있는 동안 관객석 한 구석에 앉아있는, 마치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한 청년의 눈은 오필리아 역을 맡은 미모의 여배우에게만 고정되어있습니다. 그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느꼈던 자신의 격정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24세의 청년은 곧 가엾은 사랑의 포로가 되어 여배우를 향해 자신의 모든 감정과 열정들을 분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에게 무명의 젊은 음악가는 아무런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청년의 사랑의 아픔은 커져만 가고 그의 육체와 영혼은 사랑의 방황으로 망가져갑니다. 이제 무대에서 그녀가 상대역 남자 배우에게 안기는 날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 청년은 자신의 사랑과 아픔, 증오와 격정을 음악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녀들의 밤의 향연의 꿈”이라고 이름 붙인 마지막 악장에 그녀를 투영시키며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를 남겨놓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바로 프랑스 낭만파의 거장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의 실제 경험담으로 그의 대표작인 <환상교향곡>이 쓰이게 된 배경입니다. 에피소드 속 여배우 ‘해리엣 스미드슨’은 6년 동안 이어진 베를리오즈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그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베를리오즈는 1803년 12월 11일, 프랑스 리옹 근교의 라 코트 생 앙드레 (La Côte-Saint-André)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바람으로 17세에 파리 의과대학에 진학하지만 해부학 실습시간에 시체를 보고 기겁을 하며 뛰쳐나온 뒤로는 다시는 의대로 돌아가지 않았죠. 이미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려는 그와, 의학공부를 시키려는 부모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던 터라 그는 이 사건이 있은 후 작곡가가 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그 후 1823년부터 2년 동안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1830년 로마상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후 로마에서 유학을 합니다.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몇 안 되는 클래식 작곡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 동네에 피아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만져본 악기라고는 기타와 플루트 정도였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삶은 투쟁과 격정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보수적인 프랑스 악단과 대립해야 했고, 사랑에 방황해야 했지요. 그리고 극심한 경제적 궁핍도 그의 고난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애타게 구애하던 해리엣과 결혼하지만 이미 사랑이 식은 그에게는 이제 아내가 싸움의 대상이 됩니다. 베를리오즈는 우산을 뒤집어쓴 듯한 머리털, 절벽 같은 이마, 매부리코,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 같은 푹 패인 매서운 눈, 꼭 다문 얄팍한 입술, 앙상한 볼 등 어느 곳 하나 온화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 없는 외모였다고 하며 성격도 매우 괴팍하여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항상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베를리오즈는 해리엣과 결혼 전 카미에 모크라는 피아니스트와 연인관계였는데 그가 이탈리아에 가 있는 사이 카미에가 피아노 제조업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카미에와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으로 권총과 아편, 그리고 극약을 챙기고 파리로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른 새벽 마차가 프랑스 니스에 다다르고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에 마음을 진정한 그는 니스에서 그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다고 할 수 있는 3주간의 여행을 즐겼다고 합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