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Op.61
'바이올린 독주가 포함된 교향곡'
베토벤은 작곡과 동시에 피아노 연주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그가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17곡의 현악사중주 작품은 베토벤이 현악기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그가 현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단 한 곡만 남겼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베토벤이 현을 위해 쓴 유일한 협주곡은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61번으로 서양음악사 최고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평가받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부르는데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포함하여 4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작곡가가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던 당시는 ‘교향곡 5번’, ‘피아노 협주곡 4번’ 등을 쓰며 창작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는데 이 위대한 작품의 초연은 아이러니하게 그리 준비된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1806년 12월 23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란츠 클레멘트의 협연으로 첫 선을 보이는데 연주 당일 오전까지 악보가 완성되지 못하여 클레멘트는 연습 없이 초견으로 무대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토벤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바로 클레멘트 때문이었고 클레멘트도 작곡 과정에서 베토벤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연습 없이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했던 클레멘트에게는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겠지요. 더군다나 베토벤의 자필보에는 클레멘트에게 이 작품을 헌정한다고 적혀있는데 1908년 출판본에는 슈테판 폰 브로이닝에게 헌정한다고 바뀌어있어 초연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점을 남깁니다.
아슬아슬했던 클레멘트의 초연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자주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낭만주의로 변화해가고 있던 시대 흐름에 비추어 독주자가 화려한 기교를 자랑할 수 있는 요소가 별로 없는 고전적 스타일이었고, 작품의 음악적 깊이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독주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이 곡의 카덴짜를 작곡하지 않아 독주자 스스로 카덴짜를 연주해야 했는데 이것은 독주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전체 연주시간이 45분에 달하는 (1악장의 길이만 보통 협주곡의 전악장 연주시간과 맞먹는 24분여) 장대한 규모도 독주자들이 이곡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곡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지다가 1844년 당시 13세였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이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 작품을 연주한 후 그 진가를 인정받으며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비로소 협주곡의 왕좌에 오르게 됩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파격적인 규모와 형식은 그의 협주곡 개혁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전까지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단순한 반주의 역할에 그쳤지만 ‘바이올린 독주가 포함된 교향곡’이라는 이 곡의 별명처럼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를 동등하게 취급하여 서로 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완벽한 관현악적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장중한 표현과 격조 있는 서정성, 내면의 온화한 느낌이 완벽하게 조화된 이 작품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피해 갈 수 없는 숙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바이올린 협주곡의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Op.61
정경화 바이올린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 클라우스 텐슈텐트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