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밀고 당기는 기술 / 1) 미묘한 감정
아마도 필자에게 있어서 풋사랑이 너무나도 길었다. 중학교 때 1번, 고등학교 때 1번씩 있었는데 딱히 사귀는 것은 아니고 홀로 좋아한 것이다. 물론 상대도 나를 좋아했다. 훗날 알았지만 그 게 아마 이성으로써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중,고교시절에는 한 없이 인기가 없었다. 얼굴은 그냥 저냥 생겼지만 무엇보다 키가 너무 작아서 나는 장애발달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 학생들은 어찌나 큰 지 모른다. 당시 기억으로는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그 수치를 외울 정도다. 중학교 3학년 때가 148cm였으며 고 2때가 되어서 163cm가 되어서 꿈에 그리던 160대에 올라서 기뻐했던 게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에게 축하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알아봤는데 그 속도가 줄어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군대 가서 키를 재보니 166cm였고 그 후로 1년에 한 0.6cm자란 듯하다. 지금 키가 170cm 약간 넘는데 전체적으로 다소 늦게 성장하였기에 다들 주변에서 놀라기 그지없다.
키 얘기를 하자면 가슴 아픈 게 너무 많은데 지금은 나보다 작은 사람들도 많으니 위안을 삼는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중, 고등학교 시절 내게 여자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로 늘 여겼다. 또래는 커녕 나보다 3학년 밑에 학우들보다 작았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게도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같은 반 여학우였는데 그녀는 말쑤가 없이 조용했다. 무엇보다 친구였고 만만했던 그 반 여학생인데 어느 덧 눈길이 갔다. 특히나 우리 학교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지역이라서 너무나 작은 동네였기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줄 곧 지낸 아이가 수두룩하다. 그렇게 알고 지낸 걸로 친다면 무려 11년 넘게 다른 반으로써 지낸 아이였는데 고2 말이 되어서 이렇게 이뻐지게 보이는 것에 너무나 놀라웠다. 무엇보다 내가 그녀보다 키가 더 컸기에 이제는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딱히 그녀에게 잘해주려해도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내가 할 줄 아는 건 없었다. 주변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 행여나 소문이라도 나면 아이들이 놀릴까봐 걱정이다. 남들이 다 고3 때 수능이다 뭐다 정신없었는데 난 사춘기가 그제서야 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도진 개진이라서 별 도움도 안되었다. 그저 연필 한 자루 빌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어필할 게 없었다. 근데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장난을 치면서 놀았다.
그녀는 내 뒷자리에 앉았는데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뒤 돌아서 얘기하는 게 꿀맛같았다. 하지만 늘 그녀는 도중에 미술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서울의 교통편을 이용하면서 오고 갔다. 그 와중에 나는 틈틈이 나름 공부해서 그녀가 모르는 부분을 채워주도록 노렸했다. 당시 98년도라 막 핸드폰이 서서히 생길 무렵이라서 우리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둘 다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기말고사 중간고사는 조금 도움이 되었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 늦게 까지 공부하던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줄 게 있다면서 '돌맹이'를 주는 바보였다. 그러다가 미안해서 다음날 떡을 주며는 그녀는 화해를 받아줬다. 서로 좋아하는 듯 했다. 사귀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조금씩 그 느낌을 알았다. 무엇보다 대학교가서 서로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난 수능끝나고 졸업식날 고백을 하려고 준비했다. 그렇게 되면 멋진 캠퍼스를 다닐 거라고 봤다. 우리는 서로 문과였고 단, 그녀는 예체능 부분을 시험을 봤다. 시험성적도 도진 개진이라서 지방대를 함께 가거나 전문대를 같이 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시험을 봤고, 서로 잘 못 봐서 울상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잠시 뒤로하고 우선 어느 대학을 갈 지가 바빴다. 우선 이게 급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있어서 그녀와 상담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녀가 내가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을 붙고 그녀는 붙지 못했다. 우리가 고3때 마지막 만남은 내가 잠시 치과를 갈 때 버스에서 봤다. 우연히 버스에 만나서 옆 좌석에 앉아서 30분만 대화하고 마쳤는데 그녀가 내 대학에 붙은 걸 축하해줬다. 나 또한 그녀의 소식을 묻자 그녀는 재수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미술실력도 배우고 수능공부도 하면서 더 열심히 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고백하기 좀 그러니 나중에 졸업식날 조용히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대학낙방에 그녀에게 고백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도 과연 내 맘을 알았을까?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녀의 대학을 붙여줄 수 없음이 그저 처량했다.
이윽고 졸업식. 나는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대학 낙방한 그녀가 올 리가 없다. 다 모여서 하는 얘기가 어디 대학을 갔냐, 무슨 과냐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애석하게 오지 못함을 알고 있다. 한 없이 졸업식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끼리 밀가루와 계란세례를 하는 동안 내내 울었다. 그건 이러한 거추장한 형식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 후로 대학을 다니면서 그녀를 잊었는데 아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봤다. 상황도 상황인지라 별 얘기는 못했다. 이미 그녀는 남자가 생긴 듯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이미 놓쳤고 그렇게 5년이 지나서 미니홈피로 다시 알게되었고 약간 추하지만 동네에서 부시시한 내 모습을 그녀가 봤다. 그 후로는 다시 보자고 하면서 보지 못했다. 만일 내가 그녀와 사귀었으면 어떠했을까? 내심 생각을 하기도 한다. 미묘한 감정이 상황에 따라서 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럽다. 그만큼 어렸던 거 같았고, 괜한 고백이 두려움으로 올까봐 걱정한 듯하다. 후에 미니홈피로 얘기를 했는데 그녀는 당연히 알았고, 왜 이제서야 이야기 하냐며 위로해줬다.
* 사랑 = 타이밍
미묘한 감정시기 -> 때가 된 것이니 고백해야 함 (훗날 후회하기 마련)
내 인생에 있어서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기게 해 준 그녀. 내가 힘들고 지친 그 고3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녀와 함께 한 모든 것. 지금 미니홈피도 없는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모른다. 아마 좋은 가정을 꾸렸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 수많은 방 중에서 아직도 추억 한 켠에 아름다운 빈 방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