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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련 Apr 08. 2021

내 사랑 영화처럼
[9장] 사랑의 위기

9. 사랑의 위기


  1) 어리석은 과실

       1-1) "광식이 동생 광태

       - 초코릿 전달의 실수로 바뀐 운명 

       1-2) 지하철에서 외모지적

       1-3) 실수로 보낸 사진 전송     


   2) 잘못된 판단

       2-1) "오만과 편견

       - 오해의 투성으로 가득되어

       2-2) 사회적 판단으로 생긴 캐릭터 

       - 우리 시대의 잰틀맨?

       2-3) 소개팅에서 색안경으로 판단 

       - 그녀의 스타일     


   3) 또 다른 이성

        3-1) "야수와 미녀

        - 다른 이성으로부터 유혹되는 것

        3-2) 치사한 쟁취 

        - 프로들의 STEEL AWAY

        3-3) 이성에 대한 집착 

        - 대학가의 3각관계     

  




9장사랑의 위기


사랑의 위기 : 어리석은 과실, 섣부른 판단, 또 다른 이성

(광식이 동생 광태, 오만과 편견, 야수와 미녀) 



여태  사랑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되는 것에만 치중해왔다. 물론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친한 친구에도 싸우기  마련이며, 부모와도 갈등이 없는 자녀란 없다. 그렇게 친하고 소중할수록 너무 편해서 막대하는 경우도 있다. 제 아무리 잘하려 해도  인간관계상에서 반드시 불화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때 풀지 않고 지속적으로 둔다면, 그거야 말로 더 문제다. 문제는 불화를 안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랑도 그러하다.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찰떡궁합이며,  천생연분이라고 할 지언정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는 서로가 너무 싫어서가 아니라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만큼 믿고 신뢰하고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에 반해서 맞춰주지 못하니 갈등의 요소가 생기기 마련인 셈이다.  사랑은 위기를 가지면서 더 큰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서툰  사랑은 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할 것이다. 아직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거니와 원래 사랑은 싸우고 위기 속에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없다. 영화 속에서도 해피엔딩을 더 감칠맛 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장치를 하는 것이 바로  '위기'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의 재미와 감동을 따르게 된다. 만일에 위기감이 없다면 기승전결이  없이 그저 평이하게 끝나기에 그 내용은 무미건조할 뿐더러 재미와 감동이 없을 것이다. 당사자에게도 그렇다. 사랑의 위기가 찾아오면  주저하지 말고 진정 그와 평생 함께 하고싶다면 이를 극복해야 한다.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모든 사랑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어찌 위기가 없는 사랑이 어딨으랴? 만일에 없다면, 이제 막 시작한 커플이라던지, 아니면  애정이 덜 전달이 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사랑을 하면 애착이 실리기에 그만큼 티격태격하면서 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 이프온니 (자신밖에 모르는 남자친구의 대한 설움가득한 여자 /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gihK8in8vUQ


어차피  겪어야할 계단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딛고 걸어가야 할 것이다. 위기가 왔는데 어쩌면 너무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태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위기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나 이 것이 누구나 다 극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위기는 어떠한 루트로 찾아오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이를 잘 대처하는  방법도 배워보도록 하자. 


* 사랑의 위기를 갖게 되는 계기

1) 어리석은 과실

2) 잘못된 판단

3) 또 다른 이성 


아쉽지만,  꼭 알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에게 사랑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 받기 위해서 필요한 숙제이기도 하다. 사랑의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될 당면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미리 알아야 미연의 방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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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리석은 과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실수가 인간적이면서 때로는 재미나게 이끌게 하는 휴먼니즘이기도 하다. 예전에 '아! 나의  실수'라는 타이틀의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소소한 내용도 재미나게 풀었기에 누구나 한 번쯤 해봤기에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은 대 히트를 쳤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작은 과실로 그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사랑에서도 실수를 있기마련이며 그  실수로 인해서 하나씩 배워나간다. 


* 어리석은 과실 = 더 나은 사랑을 위한 과정 


하지만  어떠한 실수냐에 따라서 그 것이 상대가 받아줄 수 있으면 다시 화해를 해서 나아갈 수 있지만, 정도를 벗어난 실수가 아니라  상처가 크게 입힐만한 과실은 어떠할까? 그러한 과실로 인해서 서로의 금이 금이 가다 못해서 산산 조각이 날 수가 있다. 그만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실수는 금물이다. 그렇기에 늘 위해주고 아껴줘야 하며 조심스레 다뤄야 할 것이다. 실수로 인하여 삶의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기 마련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말  한마디에 문자나 메일 한 통으로도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친한 이성에게 대할 때도 조심스레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사랑을 지켜내는 일이다. 제 아무리 과실을 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 말  실수로 인해서 사랑의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가 그러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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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광식이 동생 광태 (2005) - 초코릿 전달의 실수로 바뀐 운명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중에서 - 이요원은 김주혁 서툰모습이 그저 답답해서 지친다


여기  과실로 인해서 커다란 변화를 준 운명이 있다. 그 관련된 사연이 담긴 영화가 바로 '광식이 동생 광태'다. 영화에서 광식는  어리숙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로멘틱하지도 않다. 그저 마음속의 심정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행여나 들킬까봐 혹은 그 게  거절이 될까봐 노심초사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이에 반해 동생은 아주 쿨하다. 프리섹스 주의자인 광태는 제대로 된 여자의  사랑보다는 그 여러 기웃거리는 만남을 즐기는 사람이다. 감정적이긴 보단 감각적인 사람이다. 본능에 충실해서 아직까지 이렇다할  사랑을 너무 모른다. 쉽게 상대를 여기고 쉽게 대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상대방의 배려보다는 자기 이기주의적  사랑방식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다. 이 둘은 형제라는 게 더 아이러니컬하다. 바로 이 서로 다른 사랑방식의 모습으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다.






* 광식이 동생 광태 (바비킴 - 사랑 그놈) 

https://www.youtube.com/watch?v=nggLV-QSTE0


광식이에게는  오랫동안 좋아하던 후배가 있었다. 늘 그녀를 주시했었다. 대학교 MT에서도 바라만 봐야 했다. 심지어 그녀가 다른 이성과  사귄다는 소리에 그저 물끄럼이 축하만 해줘야 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마음은 광식이가 적극적으로 다가서기를 원하지만 그 게 확실하지  않기에, 그렇다고 여자가 다가설 수 없기에 멍하니 기다려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둘은 다시 만났는데 예전 이야기를 했었다.  광식이가 그녀를 분당까지 바래다 준 적이 있는 것이다. 광식이 보다 그녀가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광식이만큼 그녀  또한 그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서 잊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버스 번호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근데 집 방향도 반대인데 멀리서 바래다 준 것인데 왜 버스정류장에서 그렇게 뻘줌하게 헤어져야  했는데 의아하면서 그녀가 광식이에게 묻는다. 이왕 그렇게 바라다 준 것은 집 앞까지 가줘도 되는 상황인데 광식이는 용기가  없어선지 혹은 자기의 마음이 들통이 날런지 그저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헤어진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광식이가 당시  어렸다면 이제는 그렇게 주저말고 다가와도 된다는 그녀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이미 시간이 흐른 광식이에겐 그 때와 별반차이가  없는 듯 하다. 그저 쑥스럽고 용기마저 없는 순수한 사람으로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여자보다는  남자는 첫 사랑을 잊을 수 없는 거 같다. 마치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가장 커다랗고 아름다운 방 안에 주인을 기다리는 거 같다.  언제든지 찾아오면 반길 그 방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게 바로 남자의 첫사랑이다. 반면에 여자는 과거의 추억보다는 현재의  사랑을 더 선호한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방이 여러개 있을 필요성이 없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르나 대체적인 성향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기억 속 가슴에 묻고 여자는 남자를 품안에 있으려는 거 같다.


그런  애처롭게 바라만 보는 바보같은 광식이를 위해서 그녀가 미리 2월 14일 기점의 발렌타인데이를 선물을 하려 한다. 그 선물을 고이  싸들고 광식이가 일하는 사진관에서 서 있었다. 이 때에 약간 술 취한 광태가 이 선물을 그녀에게 받는다. 그리고는 광식이에게  주라는 것을 잘못이해하고 자기 형 보조로 일하는 친구에게 그 발렌타인 선물을 건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광태는 그 선물의  참된 주인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광태가 머리의 충격을 받다가 그만 생각이 난 것이다. 그 선물은 바로 광식이었던 것이다. 광태는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고 형에게  고백하게 된다. 이 때에 광식이도 알게 된 것이다. 그녀 또한 자신을 호감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해서일까? 말 한마디에 인생의 짝이 바뀔 말을 그만 놓치고는 만다.

둘이 따로 만나 카페에서 광식이가 그녀에게 묻는다.





"네가 저번에 00에게 준 그 초코릿..."

그녀 또한 이 말이 나오기를 바랬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거 나에게 주려는 것이었어?"

"그럼요. 전 선배를 사랑하니깐"

이렇게 이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용기를 필요로 한 대사가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네가 저번에 일웅이에게 준 초코렛.. 그게 원래는 .... "

뭔가 나올 법한, 아니 말만 잘하면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그 단어를 몇 초만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 나라 꺼였지?"


사실  이 말이 아니라 '나한테 주려고 한 거 였니?'라고 했다면 광식의 인생은 폈을지도 모른다. 운명을 놓친 이 쑥스럼 많아서  바보처럼 놓친 사랑. 그렇게 그는 한심하고 애처롭게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사랑을 놓치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동생의 실수라고  해도 그 실수를 알아채고 다시 온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실수로 인해서 사랑을 놓치게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이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무 조급해서 혹은 너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  나타난 실수도 투성일 것이다. 어쩌면 가만히 있으면 이어질 것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녀서 그 소문에 그만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문자를 상대에게 잘못 전달해줘서 금이 가는 경우도 있고, 혹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사랑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제  아무리 메시지가 있어도 잘못 되어서 사랑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하며, 잘  대해줘야 할 것이다. 신경을 더 쓰고, 심혈을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너무 오래 사귄 커플들은 이 점에 대해서 소홀한  경우가 많다. 어차피 자신의 소유물이냥 오해하기에 너무 경시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이 쌓이면 헤어질 수도 있다. 뒤 늦은 실수를  아무리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위기. 어쩌면 별 거 아닌 실수로 인해서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잘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서 배우게 될 것이다. 첫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툴기에 흠이 많고 실수가 투성이며, 감정전달도 흐지부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어렸던 첫 사랑,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빛 바랜 풋사랑을 되짚어 보자. 아마도 어찌해야 할 방법을 몰라서 가슴앓이하다가 두려워서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청춘들이  고스란히 있을 것이다. 그 추억에 다시 돌아간다면 그토록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실수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사랑의 실수는 필수 

제대로 된 사랑의 배우는 첫 단계 => 같은 실수 번복 x


사랑의  진실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숨겨서 오해의 마찰로 생기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표현의 잘못된 방식으로 상대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매한 이 야릇한 사랑의 감정. 상대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 지 못하는 이 심금. 어디서 제대로  판명을 받아야 할 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 마음.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실수를 해도 다 인간적인 사랑의 계단이다. 어느 사람이나 첨부터 두 발로 멀쩡히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스텝 바이  스텝이다. 사랑도 실수 투성이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한 경험이 여러번이 되어야 제대로 걸을 수 있고, 훗날 발전  되어서 뛰어다닐 수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점프도 할 수가 있다. 사랑도 그렇다. 실수가 있어서 다시금  다른 이성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데, 참 잘 모르는 소리다. 누구나 다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계속 시도를 해야 한다.  사랑의 무엇인지 점점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하나씩은 배우지 않는가? 이렇게 대하면 안된다는 점을.....


 다시  영화 속에서 남자는 여자의 대한 용기를 갖고 그녀의 결혼식장을 향해 달려온다. 과연 그는 결혼식을 엎어버리는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소심남의 내용을 담은 ‘광식이 동생 광태’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오죽했으면 영화 속 내용으로  들어가서 광식이 인생을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어릴 적 필자의 가슴앓이하던 소심남의 모습이 더 오버랩되어서 그런지 더 애절하다.  소심한 남자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의 왜 적극적이어야 하는 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랑... 그 놈은 참으로 서울대학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다. 영화 속 OST 바비킴의 ‘사랑 .. 그 놈’이 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우리 삶에서도 용기내지 못하여 평생 그리워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은 곧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실패해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평생 고백 못해서 후회하는 것보단, 고백(너무 이르면 안되지만)했지만 이루지 못해 아쉬워 하는 게  바람직하다.

* 고백의 용기는 해야 한다.

: 고백 못한 가슴앓이 < 고백했지만 실패

=> 평생 한(恨)으로 기억되지 않기에...


* 광식이 동생 광태 (세월이 가면 - 김주혁) 

https://www.youtube.com/watch?v=t7RnvCat-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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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하철에서 외모지적 



사랑을  하다보면 누구나 괜스레 장난을 치고 싶기 마련이다. 상대와 그만큼 친하다는 의미인데 때론 이 장난으로 인해서 상대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제 아무리 당사자는 그리 심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각자 다르게 작용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스게 소리로 야한 농담도 잘 모르는 사이에서 하면 괜히 변태로 오해받기 쉽상이다. 어느 정도 친숙해야 할  것이다. 어디 장난 뿐이랴? 예를들어 스킵쉽 정도도 다르다. 만난지 처음에 키스를 해도 용납이 되는 사람이 있으며, 또 어떠한  이에게는 손도 못잡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람마다 저마다 받아들이기가 다르다. 이 점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같은  장난이나 경우도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서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장난의 정도가 지나치거나 많을수록 가벼워  보이기 쉽상이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아껴야 할 것이다.


* 사랑의 장난의 유의점

: 받아들이는 상대마다 다르게 인식이 됨

: 아직 잘 친하지 않는 사이에서는 금물

: 정도가 지나치거나 많을수록 가벼워 보임


물론,  깜짝쇼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추억이다. 하지만 그 것이 상대가 절대로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하는 정도를 지켜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로마의 휴일에서 어느 석상에다가 손을 넣으니 손가락이 짤려서 아파하는 남자 그레고리 펙. 이 모습에  오드리헵번은 너무나도 놀란다. 사실상 너무 놀라서 연기처럼 보이는데 이는 연기가 아니다. 실제로 순박한 오드리를 놀리기 위해서  그레고리가 감독과 짜고 연출한 것이다. 오드리가 잠시 깜짝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연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레 영화 속에서  담겨져 있다. 누구나 한 번쯔음, 저런 장난을 치기 마련이다. 이는 해도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상처가 빨리 회복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진짜로 손이 짤리거나 아니면 한 며칠동안 짤린 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만큼 같은 장난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드리였으니 저정도 장난을 웃으면서 반겼을텐데, 다른 시니컬한 여자였더라면 짜증나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장난은 그 상대의 스타일마다 다르게 적용이 될 것이다.


저자에게는  이에 커다란 사실을 너무나도 몰랐던 것이다. 커다란 과실로 잊지 못할 상황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으로 되 돌아가서  순간적인 그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 당시 알게 된 여자가 있었다. 몸매도 좋고 무엇보다 성격도 차분해서  끌렸다. 다만 집안이 그리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없어서 그녀는 아버지같이 자신을 품에 안겨줄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이 점을 잘 캐취하지 못하고 후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아버지 대신해서 일을 무리하게 많이 한다. 그러는 중  나에게 시간을 내서 평일에 잠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의 쌩쌩한 체력에 비래서 그녀는 조금 피곤한지 매우 몸이 좋지 않았다.  모처럼 만났는데 눈에는 피로가 가득 차 있었다.


그녀와  나는 영화를 봤었고, 식사를 가볍게 즐겼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돌아오는 이번 주 토요일 불꽃놀이를 보자고 했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근데, 지하철 조명아래 그녀가 앉았고 나는 서서 그녀를 아래로 바라봤다.  귀엽지만 그녀의 눈가 밑에 퉁퉁 부은 다크서클이 걸렸다. 이쁘장하지만 그 모습이 여간 옥의 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어떻게든 덮어두려 했어야 했다. 제 아무리 재미난 얘기도 자신의 여자에게 할 소리가 그렇지 않아야 할 소리가 있는데, 그리  친하게 지나지도 않는데 그만 장난끼가 발동한 듯 했다.

그렇게 무심결에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그녀의 다크서클보고 그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다크서클 있으니깐 귀엽다! 팬더같애"

"그만해.."


사실상 여기서 관두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상황판단도 못하고 바로 이어서 콤보로 상처를 좋다.


"아니 왜? 난 진짜 팬더 좋아하는데? 넌 팬더 싫어?"

"치.."


그렇게  내가 팬더라고 놀리며 웃었고 옆에 들었던 사람들도 약간 재미난 지 키득키득 거렸다. 역시 난 웃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게다가 그날은 더군다나 다소 심각해 보였했다. 내가 급하게 사과를 했지만,  괜찮다던 그녀의 문자 한 통을 받고 그 후로는 연락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 이후로 난 불꽃놀이를 같이 갈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외모를  떠나서 자신을 깎아버린 상황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으로 받아 들였을 거 같다. 그 이후로는 난 팬더곰조차 보지도 않고,  심지어 팬더인형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 트라우마일까? 여자의 다크서클은 물론이거니와 잡티까지도 대꾸하지 않는다. 당시는 충분히  웃음의 소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무 속이 좁은 여자가 아닌가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내 스스로가 인격모독을 한 어리석은  남자였음을 시인한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 있어서 때때로 별 거 아닌 과실로 인해서 사랑의 뒤틀리게 되는 현상들이 많다. 그 후로는 상대가 민감하게 작용될만한 말은 많이 삼가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녀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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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수로 보낸 사진 전송 


사랑에  있어서 말도 말이지만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나의 친한 형이 있는데 그는 행동에 있어서 좀 신중하지 못한 편이다. 말도 잘하고  능력도 좋고 재밌지만 간간히 어리광스러운 행동에 다들 깜짝놀라기도 한다. 물론 그 특유의 캐릭터라서 젊은 여인들이 꼬여들기도 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여자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잘해준다. 실제로 봐도 하나같이 다 미녀들이다. 제 아무리 성격이 좋지 않는 여자라 해도 이해해주면서  잘 이끌어 준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게 너무나도 자랑을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렇지 않으면 참지를 못한다. 그래서  늘 새로 생긴 여자가 이쁠수록 MMS문자로 사진과 함께 보낸다. 그렇게 휴대폰으로 전송한 사진이 그에게는 늘 자신감이며, 삶의  질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한 번은 나에게 보여주려고 한 게 있다. 바로 그녀의 야한 수영복 사진이다. 그는 그녀의 미니홈피에서 그 사진을 얻은 셈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여자가 몸매가 좋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려고 나에게 사진과 함께 


"이 여자 죽이지? 내가 왜 이 여자랑 사귀는 지 알겠어?" 


라고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하면서 분주했는지 나에게 보내야 할 것을 신중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보낸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 때, 그녀의 사진을 보니 당연히 그녀의 이름이 떠올려서 그렇게 눌렸다고 한다. 이미 보낸 사진을 발송취소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몰랐는데, 추후 이 얘기를 들었다. 그 후로는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서 틀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수영복 사진을 몰래 퍼간 것에 대해서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자의 마음도  아니라 몸매보고 사귄다고 하면, 그 누가 좋아할까? 야릇한 조건으로 좋아하게 되는 게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게 아닌가?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틀어질 수준의 과한 실수는 사랑의 끈이 끊어질 수도 있다. 현재 잘 사귀는 커플들.  그렇다 해도 잡아놓은 물고기마냥 뜨문뜨문 밥을 주지 않는 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귀는 것도 대단하지만, 오래 사귀어 가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만큼 서로에게 대하여 실수없이 잘 대해주는 것이며, 또한 상대의 실수 또한 이해하면서 덮어주면서 이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 오래 사귀는 커플의 특징

1) 서로가 커다란 실수를 하지 않기에

2)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용서해주기에 


그렇다.  사람은 일부러가 아니기에 누구나 결과가 좋지 않게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수를  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그러한 부분마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지속적으로 연인관계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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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못된 판단


사랑을  하다보면는 우리는 숱한 오해의 거짓 속에서 얼룩진 경우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것은 연애가 시작된 초반에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기가 쉽다. 또한, 연애의 경험이 없기에 다른 이성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관점에서만 너무나 집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되기 쉽다. 그래서 그 상대와 전혀 다른  자신만의 허상의 이미지로 바라볼 수가 있다.

예컨데  짧은 치마를 입으면 다 바람끼가 다분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혹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외모에 포기한 사람으로 보는 남자. 또한,  길거리에서 침을 함부러 뱉으면 매너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또한,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면 돈이 없는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 판단 = 좋은 사람의 단면만 보고 놓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통념 속에서 그 안에서 시각으로 비추어 보기 마련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판단은 확률적으로 맞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정답이 아니올시다. 너무 섣부른 판단으로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사랑에서도 그렇다. 될 법도 할  사랑이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사랑이 달아날 것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이러한 부분에서 커다란  소재로 담은 내용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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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오만과 편견 (2005) - 오해의 투성으로 가득되어

사람은  저마다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하다. 수 많은 회의를 해도 뒤에 나와서 상대방의 입장이 뭔지 이해하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확실하게 뜻을 전달하는데 사람들은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해 왔다. 옛 선조의 얼을 그대로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문자라는 커다란 혁명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언어라는 것이 발달해 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휴대폰이라는 연애사의 절대적인  필요수단이 탄생이 되었고, 그 속에서 통화와 문자로 많은 오해와 조급함. 그리고 급한 감정기복이 바로 나타나게 되어서 진실된  그리고 오래참는 사랑과 거리가 멀게 되었다. 게다가 발달 된 메신저가 우리의 삶을 더 묶어 놓고 있다. 조금 연인이라면 떨어져서  자신과 상대의 필요성을 생각해봐야 할 것인데, 요즘은 이러한 장치가 많기에 바로 바로 감정을 표출되어야 하기에 때 아닌 실수가  투성이며, 오해의 소지도 많이 나타나게 되어버렸다. 


* 오만과 편견 (예고편 - 오만한 남성와 편견을 갖는 여성)

https://www.youtube.com/watch?v=wckKQArekaI

사랑의  있어서 기계혁명이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에 반해서 제대로 된 사람을 놓치는 경우, 그리고  오래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급변하는 방식의 사랑이 많아져서 이제는 사랑을 느끼는 게 아니라 바로 확인하려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 오해로 인해서 수 많은 연인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랑으로 다시 자리잡을 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생각도  많이해보지만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때 아닌 멀어짐일 것이다. 좀처럼 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사랑의 감정이 오해를 사기 마련일까?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바로 그 것은 사람들마다 살아온 환경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게다가  좋아하는 대상은 성별이 다르다. 남녀 자체는 이미 생각하는 뇌 구조가 너무나도 다른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고, 남자 또한 여자가 아리송한 대상이다.


* 오만과 편견으로 여기게 되는 이유

1) 오만 : 남자의 강한 자존심을 세움 => 상대 여성에겐 오만하게 보임

2) 편견 : 넘자의 사랑 표현 숨기기 => 상대 여성에겐 사랑하지 않게 여기게 됨 


남자의  강한 자존심은 어떠한가? 이는 통상적으로 남자들 사이에서 의레 힘을 주기 위해서 위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교육의  실태로 비롯된 차가운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우직하고 신뢰감있고 가벼워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이러한 면이 너무나도 따스한 면이  없기 때문에 자칫 도를 넘어서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적당한 자존심에서 따스한 배려가 아마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남자의 무뚝뚝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자는 때로는 간지로운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해서 너무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남자답지 못하기에 어려서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남자는 남자답게, 그래서 잘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고,  신나게 놀고싶어도 때로는 절제를 해야 하며, 비가 와도 걸어야 하는 신사다움을 교육받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을  여자로써는 남자의 그러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자신을 실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안다. 즉, 표현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오해로 인해서  잘못된 편견으로 자리잡기 그지 없다. 


* 오만과 편견 (뒤늦게 사과하는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1R-Zg5es7mg


그게  영화 속 '오만과 편견'은 더 그렇다. 이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모티브로 내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인 영국의  신사라면 어떠할까? 당연히 현재보다 더 엄격한 시대상을 반영한다. 아마도 진정한 남자라면 자존심을 더 꿋꿋히 세워야 하는  때이다. 

아마도  이 시대상의 남자라면 지금보다 더 표현력을 숨겨야 될 상황이다. 이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자에게  애절복구한 사랑은 어쩌면 그 시대에 맞지 않는 구걸이자 신사답지 못한 행위이다 그렇기에 가문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느낄 수  있다. 사랑보다는 어쩌면 격식과 소양을 더 중요시 여기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가문의 정해진  약혼자와 결혼을 하는 풍습이 말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 감정이 있었으나, 절제를 했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라는 무서운 존재들이 주변을 애워쌓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숨기며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여자가 남자의 표현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니 바로 급한 어조로 'I LOVE YOU'라고 말해버린다. 너무나도 무드  없이... 그렇게 던지면서 표현하고 있다. 그 절제의 미가 없는 남성. 그러한 여성에게는 엄청난 오만함으로 보이는 편견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당시의 문화상에서 빚어낸 오해의 소지가 바로 이 사회적인 문제다. 정말 사랑하는 이가 있어도 표현을 자제해야  하기에 놓치게 되는 많은 사례가 있었을 것이다. 


* 격식을 중시했던 남녀간의 사랑관

1) 남자

  : 남자의 위엄을 인정해주면서 여자의 애교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

2) 여자

  : 남자의 위엄 속에서 작은 배려와 섬세한 로멘틱으로 표현주길 바라는 것 


이는  마치 조신시대의 사대부의 선비와 비슷한 입장과 같다. 여자의 뒷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은 치욕으로 여기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로멘틱이 물론 존재했겠지만, 주변에게 입소문나게 돌면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시대이기에 감춰야만 했다. 아마도 지금시대의  불륜이라도 일어나면 완전히 매장당하는 문화라서 더 위험한 사랑이기도 했다. 또한 신분의 격차가 있기에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랑을  이어진다면 무엇으로 막을 수가 있을까? 사랑을 과연 나이와 국경, 문화와 언어로 막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시대상으로 들어가  조용히 관찰하는 듯 하다. 영화 '오만과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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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회적 판단으로 생긴 캐릭터 - 우리시대의 '잰틀맨'? 

  

 


우리시대의 대한민국 남성들이 어떠한가? 여기에서 대해서도 '오만과 편견'과 같은 사회상이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기자가 요목조목 분석한 내용이 있다. 살펴보도록 하자. 



소통 중심의 평등적 사고, 타인에 대한 배려, 교양, 세련된 외양… 

중년의  연예인들이 모여 101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2011년 새해 첫 도전한 미션은  '젠틀맨 되기'였다. 제작진이 밝힌 기획 의도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먹고,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관람했고, 발레공연을 보았다. 이런 것이 젠틀맨 되기의  필요충분조건이냐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젠틀맨의 조건을 논할 때, 문화예술 소양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유행한 '따뜻한 카리스마'란 말과 함께, 젠틀맨은 이 시대가 바라는 남성의 모델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젠틀맨의 정의나 조건을 콕 찍어 말하기란 애매하다. 

우리 시대 젠틀맨의 조건은 무엇일까? 젠틀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갖춰야 할까? 

젠틀맨: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남자 

젠틀맨(Gentleman).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신사(紳士)로 번역돼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다. 젠틀맨의 어원은 젠트리(gentry)다. 중세 후기  영국에서 귀족은 아니지만 실력과 재산을 가진 존경받는 사람들을 젠트리(좋은 가문의 사람이란 뜻)로 불렀다. 

국어사전에서  신사는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로 정의된다. 교양과 예의의 기준이 시대와 사회마다 달라지듯,  신사의 의미와 조건도 시대마다 달랐다. 일례로 동아일보 1964년 7월 28일자 칼럼 '신사의 자격'이란 칼럼에 이런 말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이 함레트(햄릿)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이상적 영국 신사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레트가 갖춘 자질과 능력이란 용기,  관용, 학식, 기지, 세련된 몸가짐, 검술, 음악과 극(劇)에 대한 취미 등이었다. 당시 신사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고,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완인을 뜻하는 것 같다.' 

이어  '한층 완화된' 1960년대 신사의 조건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전문직에 종사하는 계층이어야 하고, 둘째 등산 스포츠 명화감상  등을 취미생활로 하고 <타임즈>지와 <판취>지를 옆구리에 끼는 등 교양미를 갖춰야 한다. 셋째 인격 면에서  말이 적고 예의에 바르고 정직하고 약속을 지키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져야 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와 비교해 얼마나 완화된 건지 모르겠지만, 1960년대 신사 역시 완인이 돼야 할 듯하다. 20년이 지나 신사의 자격은 이렇게 바뀐다. 

'신사라 함은 남자의 내면의 격을 표현하는 기본 덕목이다.' (동아일보 1984년 3월 3일자 칼럼 '신사의 현대적 조건') 

왜 한국에는 젠틀맨이 없을까? 

'점잖고  교양이 있고 예의 바른 남자'라는 사전적 정의든, '내면의 격을 갖춘 남자'란 80년대 식 변형이든, 한국사회에서 젠틀맨  찾기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완전고용 달성하기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왜, 한국사회에는 진정한 신사가 없을까? 

대기업 CEO와 임직원들을 상담하는 컨설턴트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중년남성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라고. 

홍순아 삼성CS아카데미 본부장은 '상명하복의 수직관계'를 지적한다. 

"일례로 기업체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남성들은 직급에 따라 앉을 자리를 찾아요. 실무진들이 앞좌석에 많이 앉습니다. 여성 직원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성격이 급하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도 한국 남성들의 공통된 태도 중 하나다. 

"한국 남성들의 특징은 타인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일단 '예의 바른 남자'란 신사의 조건에서 대다수 중년 남성들은 우수수 탈락한다.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는 2009년 출간한 책 <씩씩한 남자 만들기>에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는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의 표준은 '국가를 개인의 우위에 두고, 애국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신체 단련이라는 육체적인  힘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라고 말한다. 이런 마초적인 남자가 아무리 프랑스 요리를 코스별로 먹어 치운다고 해도  젠틀맨이 될 리 만무하지 않을까? 

노르웨이에 있는 박노자 교수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2000년대 한국적 남성성'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박 교수는 위계서열이 강하는 점을 꼽았다. 

"유교적  가족관과 근대적 학력주의, 학벌주의가 겹쳐져 있어서 한국 남성들에게는 주로 후배와 선배가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학벌 서열이나  연령 서열에서 '동기', '동갑'도 있지만, 그 사이에서도 성공의 정도, 신분 등에 따라서 꼭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잡힙니다. 한국  남성 사이에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 대해 가장 잘 쓰는 외래어가 '카리스마'와 '리더십'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만큼 한국 남성은 강함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틀에서 보면, 서열이 낮은 가족 구성원(아내, 자녀 등)의 의사를 존중하는 젠틀맨은  '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일단 소통 중심의 수평적인 가족이 되면 남성 가장의 '체면'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뿌리부터 박힌 불평등 의식을 고치지 않고서 젠틀맨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2011 한국형 젠틀맨을 찾아서 

현실에서 젠틀맨을 찾기 어렵다면, 젠틀맨의 정의를 새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2011년 젠틀맨은 어떻게 정의될까? 

박노자 교수는 같은 책에서 '미래의 남성성'을 언급한 바 있다. 배려와 돌봄을 갖춘 남자다. 그에게 2011년 젠틀맨의 조건을 물었다. "경쟁을 상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신자유주의적 한국 사회의 핵심어는 경쟁인데, 경쟁을 강요당해도 옆에 있는 사람을 배려부터 해주고, 경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신사겠지요." 

누에이미지 김은진 대표는 2011년 젠틀맨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경제적 여유, 타인에 대한 배려, 교양, 클래식 수트에 대한 애정이다. 

젠틀맨의  어원이 젠트리(좋은 가문의 사람)에서 왔듯, 일단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타인과 대립이 있어도 자신의  말로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배려와 교양미를 갖춰야 한다. 수트를 입은 직장인은 많지만, 정석대로 입는 한국 남자는 거의 없다.  '칼질'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세련된 언행까지 갖춰야 젠틀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젠틀맨을 마다할 상사와 부하, 직원과 아내가 있을까? 

담배 끊고, 다이어트하고, 밥을 사도 당신 곁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당신이 젠틀맨답지 않게 행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젠틀맨'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 자료참조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위의  뉴스를 보면 한국은 사회적으로 친절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의 '오만과 편견'도 어쩌면 우리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너무 사회적인 남성상을 강요하다보니 은연 중에 더 강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로 남하당과  여당당이 싸우면서 '소는 누가 키워!'라고 할 정도로 얘기가 나온 다. 아마 다 이러한 문화가 짙게 깔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지역적 특성상 경상도 사람들이 다소 보수적이기에 사랑에 있어서 표현력이 부족한데, 사랑을 위해서는 그러한 부분을 내세워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우리시대의 개선되어야 할 편견

1) 사랑의 표현방식 (남자는 보다 적극적, 여자는 보다 자제해야 할 것)

2) 남녀의 다른 가치관 (남녀간의 서로 다른 자세히 공부)

3) 각 경험한 문화적 시대적 상황


싸이 '젠틀맨' 뮤직비디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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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소개팅에서 색안경으로 판단 - 그녀의 스타일 




 


필자는  군대를 막 제대한 뒤에 제대로 된 연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한 때가 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과 후배가 제대로 진전이 없는더라  다른 과 학생을 소개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헌데 그녀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착한 심성을 바라봤을텐데, 너무 외모적으로 우선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나라 정서와 다르게 그녀는 코의 코찌를  했었다. 그리고 머리가 샤기컷에다가 노란색 커트머리로 해서 얼핏보면 남자답게 보였다. 당시로써 보수적인 내 자신에게는 그녀는  그저 날라리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스타일이었다. 이윽고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마음이 따뜻하다는 걸 느꼈지만, 삶 자체가 다소  게으른 패턴을 하는 것을 보고 어쩜 이렇게 나와 다른 것일까? 


그녀는  대략 어림잡아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지 않아서 더 그러할 것이다. 나는 그날 그렇게 전화번호만 주고 왔었다.  일반적으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 게 예의인데 당시 그런 걸 몰랐기 때문이다. 의례 남자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는 게 매너임을  후에나 알게 되었다. 마치 그녀는 '너의 전화는 필요가 없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다음날 주선자에게 호되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녀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굳이 사귀고 싶지 않는 여자였다. 그래서 아마도 전화번호를 묻지 않는  이유였을 것이다. 적어도 3번정도는 만나서 사람을 알아봐야 할 게 정상인데 그럴만한 관록도 되지 못했다. 어린낭에 쉽게 사귀여서  사랑을 알아볼만한 때였는데 그렇게 인연을 우연으로 여겼기에 접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후회스럽다. 그깟 코에 코찌를  하고 커트머리 게 무슨 교감이 안될만한 일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당시 시대를 앞선 그녀의 패션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마인드가 잘못된 거 같다. 


모르긴  해도 지금 만일에 그 당시에 돌아간다면 좋아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까운 인연인 듯 하다. 그 후로 몇 번 학교에서  지나쳐서 목고개 인사만 하다가 헤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조금 있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만나서 용서를 빌어  친구라도 되고 싶다. 아쉽게도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녀는 어린나이에도 상대적으로 나와 다르게 오픈마인드였고 이해심도  많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글을 보고 있다면 이해해줬으면 한다. 


* 스타일

 : 표면적 하드웨어만으로 판단 (X) -> 내면적 소프트웨어 인격체 (O) 


아직  30살이 되지 않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만일에 상대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는 듯 하다. 그 자체가 교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렇게 시각적인 판단으로 사람을 분별하는 거 자체가 많은 인적  네트워킹을 끊게 되는 셈이다. 사람은 시각이 아니라 심성으로 분별하면 확실한 인맥의 정립이 될 것이다. 지금도 당신과 잘 어울리는  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면적인 면을 중시해서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을 것이다. 


보다  더 마음을 열어서 자신과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스타일의 사림과 어울려 대화를 하는 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분류의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며, 유연한 사고를 키울 수 있게  된다.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머릿속에서 이미 판단을 한다는 것. 물론 어느 정도 통념적으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확률상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너무 믿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젊은이들의 스타일에 이해하지 못하는  중장년층이 있을 법한데, 그들의 20대를 잠시 떠올려 봤으면 한다. 자신의 외모는 어떠했는지? 사회적으로 진짜 문제가  없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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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 다른 이성




사랑을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위기가 나타나게 된다. 많은 변수가 작용이 되지만 가장 질투심을 일으켜서 갑작스런 커플 사이에 불청객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것이 바로 '또 다른 이성'이 들어서면서 더 복잡하게 만들기에 그러하다.


 또  다른 이성이 낀 다는 거 자체가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절대로일부다체제 혹은 다부일체제가 아니고서야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또 다른 이성에게 유혹의 눈길이 오기 마련이다. 현재 사귀고 있는 이성과 다른 면이  끌리는 점에서 흔들릴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화려할 뿐. 소중한 사람인 누군인지를 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혼한  부부들 사이에서도 남의 유혹으로 인해서 불륜이 가게 되는 사례가 여기에 있다.


* 또 다른 이성 = 애인의 이성친구는 그냥(의심쩍) 적과 같다.


 그만큼  또 다른 이성의 등장한 상당한 사랑의 금이 갈 수 밖에 없는 형태이다. 또한, 거기에 따른 치열한 아픔과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고 이 모든 것들이 3각관계에 비롯되어서 나타난 결과가 많다. 늘 행복한 연인이라고 해도 이러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남녀 사이에서는 약간의 틈이 보이면, 또 다른 이성이 그 사이를 들어 올 수 있다. 이 때에,  순간적인 심리적인 느낌으로 받아서야 할 것인가? 이 장에서는 이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전에  '5장. 밀고 당기는 기술'에서 '1)미묘한 감정' 중 다른 썸씽남에 대해서 더 끌리는 것을 잠시 비추었는데 이번 테마에서는 더  면밀하게 이러한 점을 비추도록 할 것이다. 왜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이 갑작스레 나타난 '또 다른 이성'에게 쉽사리 사랑을  놓치게 되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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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야수와 미녀 (2005) - 다른 이성으로부터 유혹되는 것


영화 '야수와 미녀' 중에서 - 김강우, 신민아


앞을  보지 못하는 장해주(신민아)과 그를 도와주는 구동건(류승범)이 그리는 코믹 멜로 영화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약간의 억지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나 이 영화에 있어서는 사랑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눈이 먼  해주에게는 늘 지켜주는 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건이다. 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눈 먼 해주를 속였으나,  그래도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한 이 마음씨는 잘생긴 남자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그녀에 커다란 소망이 있으니 바로  앞을 보는 것이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왔기에 그녀에게 기증할 수 있는 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기뻐서 해주의  가족들은 좋아서 난리지만, 실제로 동건은 기쁨 안에 한가지 두려움이 자리잡았다. 바로 동건의 모습을 그녀가 알면 놀랄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 야수와 미녀 (OST- 그대 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euaADw5-Q9E


결국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해주는 그렇게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뜬 눈. 아마도 무엇보다 남자친구인 동건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외모 컴플렉스를 속이면서 그녀에게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기대하던터라 노심초사다. 그렇다고 마냥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짠~! 하고 나타났고 비록 초라한 야수같은 외모지만 무엇보다 그간 잘해준 남자친구가 아닌가? 하지만 해주 눈  앞에 나타난 동건을 보자마자 눈치를 채지 못한 그녀의 말 한마디가 동건이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게 되었다. 


'누구세요?!!' 


그렇다.  그녀의 말은 곧, 당신은 내 남자친구의 외모에 따라오지도 못할 거 보면 동건씨는 아닌데 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순간 당황한 그는  여태 사용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깊게 깔면서 저음으로 친구라고 둘러대었다. 그리고 동건이는 추후에 올 거라며 순간적인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렇게해서 일단 위기를 넘겼으나, 이 위기를 다시 어찌 정리할 지가 고민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동건이 때에 맞춰서 나타날 그 자리에 우연히 나타난 인물로 엇갈리게 되었다. 해주 곁에 나타난 검사가 있으나 다름이 아닌  탁준하(김강우)였다. 워낙에 멋지고 잘생긴 외모라서 해주는 그를 동건씨로 순간 착각한 것이다. 너무나도 불리한 동건은 그저 이  상황을 바라만 봐야 했다. 둘은 멀리서 봐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며, 누가봐도 선남선녀이다. 다만 부족한 동건은 이러한  모습에서 자기 마음을 추스리기 그지 없다. 명색이 그래도 남자친구인데, 이를 지켜만 본다는 것은 그간 잘해준 성의가 아쉬울  것이다. 아니 아마도 동건의 삶 속에서 이렇게 위대한 해주를 놓쳐서는 아마도 이 정도의 사랑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 속 한을 스스로 위안을 삼아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엇다. 이대로 끝날 수 없어서 동건은 다른  방법을 시도하며 서서히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두 사이의 문제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로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남자친구 혹은 그의  연인이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이상형을 만났더라고 해도 알고보니 짝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제 아무리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이라고 해도 더 나은 상대에게 말없이 훌쩍 떠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빼앗긴 사람에겐 이 상황을 표현하자면 홈런 맞은 투수마냥  멍하니 공을 바라만 봐야 할 것이다. 미국에 엽기 TV 쇼라고 불리는 <제리 스프링쇼>가 그러한 3각관계 4각관계의  싸움을 부축이기에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쾌감을 얻기에 성공했다. 물론 내용 자체적으로는 참으로 막장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연인들의 싸움을 부축이는 쇼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거 자체가 사랑을 아는건지? 혹은 남들이 잘 되는 꼴이 아쉬운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이러한 3각관계, 4각관계는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  영화 뿐이랴? 드라마는 더 하다. 4각은 기본 5각 6각까지 발생되는 스토리로 애매한 상황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매회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끼리 누가 누가 짝이 되는지가 화두거리에 속하고 있다. 게다가 코믹요소를 많이  내포하는 '시트콤'에서도 이 사랑의 부분만큼은 코믹이 아니라 일반 드라마처럼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바로 사랑의 가치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함이다. 시트콤까지 4, 5각관계를 형성하여 매회 보게 하는 장치를 뒀기 때문에 늘 보는 이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든다. 우리 삶도 그렇다. 솔직히 좀 특출난 사람은 한 사람만이 좋아하질 않는다. 제 아무리 짝이 있더 하더라도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다. 심지어 퀸카를 사귀는 남자는 늘 다른 남자가 낚아 채지 않을까 불안해 떨게 하며, 반대로  킹카를 사귀는 남자는 이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 눈길을 흘리지는 않는 지, 두려울 것이다. 


더  재미난 것은 당사자는 이러한 상황이 소위 피말리는 접전에 치를 떠는데 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내용이 너무나도 재미난  소일거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CC나 회사 커플들의 3각 그 이상의 4각관계를 알고 있다면, 주변인들로 하여금 이  진행중인 러브스토리가 어디로 흘러 가는지가 삶의 이슈거리이자 술과함께 먹는 안주거리 소재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치열하며 애타는 남녀의 삼각관계. 솔직히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남들 사랑 사이가 과연 얼마나 탄탄한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두 연인간의 싸우다가 지쳤을텐데 이 때에 나타난 독보이는 이성의 유혹은 참으로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뱀과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 텁텁한 밀가루 음식만 마냥 먹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싱싱하고 더 새콤한 과일향이 코를 짓누르면서 유혹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때, 실리를 추구할 지, 의리를 추구할 지는 상황이 되어야 알 거 같다. 누구나 이렇게 또 다른 이성으로 인해서 위기를 가지게  된다. 어저쩌면 너무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사귄 커플에게는 이러한 위기가 더 필요로 한다. 이를 극복하면 둘의 사이는 전보다 더  각별하고 애틋함으로 다가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자체가 꼭 굳이 둘 사이의 행복만 있지는 않다. 어쩌면 파멸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유혹한 상대에게 다시금 가느냐? 그렇지도 않다. 알고보니 유혹한 상대는 이미 유명한  선수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레 유혹한 상대는 그 다가온 목적이 이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의 상대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지 테스트를 하는 경우로 소위 '질투심 유발' 작전을 쓰는데 그것은 상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거 자체가 이미 믿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역할을 자신이 받는다면 어떠할까? 


* 3각관계 문제의 대상

커플을 유혹한 자 : 이미 잘 되고 있는 커플의 사이에서 쟁취욕으로 떼어버린 죄

유혹에 넘어간 자 : 여태 잘 지내고 있는 이성을 접고 다른 상대에게 달아난 죄

커플을 빼앗긴 자 : 그저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이성이 한 눈 팔게 만들어 버린 죄 


위의  내용으로 봐서 우리는 대체적으로 유혹한 자와 유혹에 넘어간 자를 욕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대부분 내용을 1번째와 2번째,  특히나 2번째는 사랑하는 이였는데 그렇게 간다면 더 할 나위없이 욕을 할 것이다. 만일에 1번째 대상이 모르는 사라이라면 그나마 덜  나쁠 것이다. 하지만 1번째 대상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친구나 지인이나 가족이라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아니 있을 수 없는 현실이 일어났다면 개탄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3번째 커플을 빼앗긴 자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사랑을 더  배워가면서 이해하려면 3번째 문제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3번째 역할도 크게 자리잡을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3각관계의 파멸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해서 오죽하면 상대가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렸을까? 이 포인트에서 심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스스로  내적치유를 하면서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외모만 믿고 이기적이고 받기만 한 사람인데  갑작스레 이성이 떠난다는 사실을 듣고 슬퍼서 욕하면서 술을 퍼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여기저기하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그들을 함께 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체를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른  이성이 떠난 그 원동력이 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파렴치하게 매정함으로 돌아선 이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의  3가지 요소가 다 함께 작용이 될 때 비로소 기존 사랑이 깨지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셈이 된다. 또한 이렇게 시작한  커플은 꽤나 위험한 상황을 안고 가야 하기에 유지하기도 힘든 과정이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현재 만나는 상대가 너무 싫어서 막바로 다른 이성에게 바로 갈아타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좀 텀을 두고 쉬면서 자신을 돌아볼 채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한 참을 생각한 뒤 그제서야 결론을 내려도 된다.  왜냐하면 갑자기 유혹한 이성이 그 새를 참지를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기존 사랑하던 상대는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또 다른 이성이 접근에 대해서 다시금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존  사랑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사랑의 대상을 바뀌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귀는 것에  대해서 신중한 사람이 있는 반면, 우선 사귀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키스가 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 반해서  키스는 그냥 손 잡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여기냐에 따라서 상대의 가치가 달라지며, 그 사랑의  가치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하게 상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헤어져도 감정에 북 바쳐 쉽사리 내  뱉어도 안 된다. 이는 신중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이다. 다른 이성이 생겨도, 또한 자신의 대상이 다른 이성에게 넘어간다 해도  감정적이지 않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영화 '야수와 미녀'에서는 특별히 커플을 깨는 프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더 면밀하게 아래 테마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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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치사한 쟁취 - 프로들의 steel away  



99년도  박지윤의 노래 중 'Steel Away'라는 곡이 있다. 다소 치사할 정도의 연애방법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자본주의 사회에  치열한 공방전에서 사랑도 해당이 된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이는 아시다시피 악녀의 본능. 남자보다 더 질투가 강한 여자는 남자처럼  겉으로 들여 보이려 하지 않는다. 보다 내적으로 강력함을 발산하는데 주 무기가 바로 여성프로에게는 남자의 녹이는 애교와 섹시미.  그리고 외모와 능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에 비해서 남성프로에게는 무엇보다 깔끔한 외모. 재력적인 안정감. 화려한 입담.  그리고 멋진 매너와 무드로 여자를 녹이는데 일조를 한다.


그  무서운 남성프로의 성취욕과 여성프로의 쟁취욕을 무시할 수 없다. 남성프로는 보다 많은 이성들의 양적으로 자기의 애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 성취욕이 강하기 때문에 발동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따라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이에  반해서 여성프로의 쟁취욕은 이와 좀 다르다. 아무나 다 애인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의 어떠한 이성을 사귀냐에 따라서 그  레벨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시기하는 여자가 있다면, 보란듯이 그 여자의 남자를 유혹하여 그 여자보다의  월등함을 선보여려는 질투심도 따른다.


* 프로들이 여러 이성을 유혹하는 이유

1) 남성프로 : 성취욕 (보다 많은 이성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만족감)

2) 여성프로 : 쟁취욕 (자기보다 나은 여자의 남자를 차지하려는 데 우월감)


이러한  프로들이 있기에 많은 커플들이 서서히 깨지게 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연애를 하는 숱한 프로들이 있는 한 많은 교통질서 혼잡처럼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1:1사랑만은 결코 아니다. 결혼 하기전 여러명을 사귀기 전 단계로 구성이 되어서  그렇게 애매한 이성들이 주변을 휩싸일 것이다. 프로들은 그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에 비해서 아마추어에게 숱한 이성의 둘러쌓임이  때로는 당장은 그 게 지겨울 수도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다 인기가 있었을 때 누렸어야 하는 것임을 후회하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그러한 다른 이성들로 인해서 골머리 쓰는 게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그 숱한 썸씽의 연애 속에서 자체가 바로 풍요속의  빈곤임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양이 아니라 질이기 때문이다.


* 박지윤 (뮤직비디오 - STEAL AWAY)

https://www.youtube.com/watch?v=Dhh4H24v_QU&list=RDDhh4H24v_QU&start_radio=1


희한한  것은 누구는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면서 많은 연애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못했다는 사람이 있다. 이들을 소위 연애의  선수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면에 누구에는 평생 제대로 연애 조차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하다가 결혼 적령기를 놓치는 이도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 둘의 대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바로 이는 연애공략의 수준 차이인데 연애는 소위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 프로는 아무런 사랑 감정도 없이도 쉽게 상대를 유혹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늘 거짓말을 하면서도  걸리지 않고, 다른 이성을 몰래 만나도 전혀 티가 냐지 않는다. 그리고 연인과 헤어져도 아픔이 그리 오래가지 않으면 금새 다른  이성을 만날 수 있기 마련이다. 어느정도의 외모와 능력을 동반하면 가능한 사람들이다. 반면 아마추어는 이와 다르다. 그들은 연애에  대해서 문외안이라서 프로에게 당하기 일쑤이다. 조금만 잘해주면 설레이고 마인드 컨트롤도 잘 못한다. 상대에게 빠져있어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모든 감정을 거기에 맞춰서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애의 대해서 배우고 아마추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1) 프로(선수)

   : 다른 이성을 쉽게 유혹이 가능하다. 많은 이성들 사이를 즐긴다.

     사랑에 대해서 감정이 별로 없기에 상처도 받지 않아서 쿨 하다.

2) 아마추어

   : 다른 이성을 어렵게 만날 수 있다. 둘 이상의 이성에서 고뇌한다.

     사랑에 대해서 감정이 크기에 상처도 심해서 컨트롤이 안 된다.


실제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의 경험이 축적되고 쌓여야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러한 자기 만의 노하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가 된다는 것은 비단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 안에서 감정의 진실성이 담겨져 상대에게 보여야 하는데 프로가 되면  감정의 진실성을 담는 푠현이 너무나 익숙한지라 가석적으로 행한다. 그러한 면에서 제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상대가 알 수가 있다.  프로는 쉽게 상대를 현혹시킬 수 있겠지만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기란 힘들다. 상대가 그런 프로와는 평생을 함께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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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성의 대한 집착 - 대학가의 3각관계   



mbc드라마 - '환상의 짝꿍' 포스터


 

대학교에서도  이러한 3각관계의 일이 많이나도 일어난다. 아니 모르긴 해도 남녀가 헤어지는데 있어서 '또 다른 이성'이 끼어들어서 더 애가  타고 흔들리고 깨지는 조건이 아닌가 싶다. 이에 관해서 2002년에 있었던 다른 대학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군대에  있었기에 이러한 내용을 1년 뒤에 알게 되었다. 듣는 나로 하여금 기가 찰 정도의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과cc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었으며 한 남성프로의 대한 교통혼잡이 얼마나 많은 이들로 피해가 가는 지 배우게 된 내용이다. 


한  프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성취욕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같은 학과 각 학년 마다 가장 예쁜 후배들에게 연정을  품으려고 노력하는 사내였다. 일종의 과시적인 성향이 다분한 그런 사람이기에 주변에서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들 조차  그에게 제발 같은 과는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지만 스스로의 성적인 욕구를 잘 억제하지 못하기에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애니멀즘이 아닌가 싶다. 스타일도 좋고 얼굴도 핸섬하기에 더 유리하였다. 게다가 말도  일추월장하다. 


군대에  제대한 그는 자신과 사귀는 00학번 여자학우가 있었다. 그녀는 그가 프로근성이 있음을 알고도 헌신적으로 품에 앉으면서 사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많은 고충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늘 이겨냈다. 그러한 그가 MT를 가서 02학번 중 제일 나은 여자와 썸씽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당시 02학번은 신입생이기에 그가 00학번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몰랐다. 게다가 당사자  프로였던 그는 당연히 여자친구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결국엔 둘 또한 사귀게 된 것이었다. 왜 그러한 일을 자초 했을까?  당연히 그 남자는 동시에 뒷감당을 어찌할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 학년별로 썸씽을 일으키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써 최고의 성취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건의 실마리. 같은 과에서 생긴 일이니 금새 이 사건이 들통이 난 것이었다. 00학번 여자는 이 사실에 분노했다. 자신의  남자가 얼마나 프로근성이 심한지 다시한번 애닳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같은 학교는 물론 같은 과에서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될 줄이야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었을까? 이름도 잘 모르는 그 후배와 그 남자를 서로  증오하지만, 사실 죄로 따지자면 모든 걸 알고 있는 그 남자보단 그 02학번 여자를 따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만나서 짧은  얘기를 했다. 00학번 여자는 02에게 쓴 소리를 했다. 


"그와 나는 CC니깐 네가 알아서 정리해라" 


즉,  00 학번 여자는 그 와중에서 그를 선택한 것이다. 그도 역시 미안한 감을 가지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그 후로 재수강으로 인해서 02학번 모든 학우들과 같은 과 수업을 들을 때곤 얼굴도 못 들정도였다. 제 아무리 선배이지만  후배들에게 인사 한 번 제대로 받지도 못한 사람이 되었다. 워낙에 이미지가 안 좋으면 소문이 금새 돌기에 왠만하면 다들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그가 03학번 최고 미녀에게도 접근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만료로 다행이 그 03미녀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접근 방식도 노트필기를 빌려달라는 식으로 했다고 한다. 재수강을 들으면서 후배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참으로 치사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학교에서도 그 사건 이 후 1년 뒤 다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같은 과는 물론 그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교수들도 점수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죄를 반성하면서 00학번  여인이 지켜준 것에 깊은 감사를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 프로의 후 폭풍

: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벌을 치루는 것은 당연한 '인과응보' 결과다.

: 과욕은 불급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는 여러 상대를 피해를 주는 것이다) 


그런  그가 사람이 변한 것으로 오해했다. 물론 그 오해는 03학번에게 접근한 것으로 다시 그 본성이 일어난 것으로 예상을 했다.  하지만 더 쇼킹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가 졸업후에 기상천외한 얘기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바로 그 학과의 사귀고 있던  00학번과 헤어지게 된 것이며, 01학번 최고 미녀와 사귀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01학번 후배역시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와 이 프로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선수가 처음엔 00학번 여자보다 그 01학번을 눈을  찍어뒀는데 남자 후배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 후로 4년이 지나서야 쟁취를 한 것이다. 뭐 이미 졸업 후에 만났는데 그걸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프로의 근성이 얼마나 위대한 지 알게 되었고, 그 후폭풍도 위험함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프로라는 것은 참으로도 대단한 사람이며, 나와 완전히 다른 개체임을 인식했다. 어찌 사람으로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그 후로 나로 하여금 많은 친구들도 그 얘기를 들었다. 그 중 프로근성을 가진 한 친구는 그 얘기를 듣고서야 만일에  그러한 일이 있어도 한 어장에 2개의 낚시대를 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여러 어장의 문어발보다 더  나쁜 것이 바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얽히게 되어서 그 어장을 진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제  아무리 사랑을 잘 한다고 해도 뒷감당을 다 정리를 제대로 하는 이는 없다. 그만큼 피와 고통을 안고 해야 한다. 사랑은 1:1이  가장 아름다운 구성체다. 이를 벗어나게 된다면 그 자체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면 사랑할 자격이 없는  일이다. 운전으로 따진다면 음주운전으로 인해서 운전면허 취소를 줘야하는 격과 다를 바 없다. 


* 가장 아름다운 사랑 구성원

: 남과 녀의 1:1 사랑 -> 이를 벗어나게 된다면 사랑할 자격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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