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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련 Apr 08. 2021

내 사랑 영화처럼
[10장] 이별이 된 계기

10. 이별이 된 계기    

    

 1) 이별통보

        1-1) "봄날은 간다
         사랑이 어찌 변하는가?

        1-2) 만나서 헤어지기 직전의 남녀

        1-3) 연락으로 헤어진 남녀     


   2) 커다란 장벽

        2-1) "로마의 휴일
        신분이 엄연히 다르기에

        2-2) 장벽이 높은 사랑 
        동성동본CC

        2-3) 그런 신분의 차이를 극복  
       왕위를 버린 왕자    

 

   3) 또 다른 이성

        3-1) "8월의 크리스마스
        가슴아프지만 끝내야 하는 가해자

        3-2) 5년만에 찾아온 옛 사랑 
        사랑이 끊겨 억울했던 피해자

        3-3) 서로가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 연락 두절되는 현상




 10이별이 된 계기

이별이 된 계기 이별통보커다란 장벽연락이 끊김

(봄날은 간다로마의 휴일, 8월의 크리스마스)     



 우리는  보통 사람을 사귈 때, 그 끝을 생각하면서 이별을 맞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영원하고 오래갈 거 같을 예상을  기대하면서 사귈 것이다. 만일 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아마도 이미 이별의 아픔을 크게 당해본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쓰라림을 다시금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잠시 쉬어야 할 것이다. 그 게 1년 혹은 그 몇 년이라도... 하지만  이성은 또 다른 이성으로 인해서 치유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위의  내용에 반해서 대부분 이별의 끝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잘 사귀고 있는 중간에서 잠시 이별을 생각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감성적으로 만났으나 지내다 보면서 이성으로 더 생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6개월이 지나면 감성적인 도파민이 끊기어질 때  시점이라서 그런지 생체학적으로도 그렇게 발생된다. 그렇게 서서히 이별을 생각하다보면 상대의 장점보다는 조금씩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깊게 사랑하지 않게 어느 정도의 선을 긋게 될 것이다. 이별의 끝이 조금씩 보이게 되는 걸 인식한다면  그 사랑은 차갑다. 그 사랑은  그야 말로 시한부 삶과 같은 슬픈 만남인 셈이다. 오늘의 만남을 우리의 헤어질 거 같은  만남이기에 서로 상처를 최대한 주지 않기에 헤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나마 다행이다. 둘이 합의하에 헤어지기 때문이다.       


* 아는여자 (지겹다는 여자와 속은 타들어가도 참는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oPCX2VUWiaY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별이 되는 경우는 가슴아프게 한 쪽에서 일방적인 통보가 내려진다. 그래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매몰찬  경우로 끝맺음을 맺는다. 이 어찌나 허망한 사랑의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한 때, 사랑을 위한 말로 '너나 할 거 없이 같이  살자.' 혹은 '너 없이는 살 수 없다.' 또한, '인생의 너 밖에 없다.' 이런 말들은 어쩌면 그 순간의 유지를 하기 위한  멘트였을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다 당시는 진짜 사랑했던 것이다. 근데 어떻게 감정기복이 변한 것인지, 혹은 둘 사이의 앙금이  생기는 지 그것은 사랑하는 당사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그렇게 상처 받지 않는 경우로 인식이 될 수 있다. 만남은 이별이자 이는 또 다른 만남을 위한 길이다. 어쩌면  서로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더 현명한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이기도 하다. 그간 서로간의 나눈 사랑의 시간이 그리 허망하지  않다. 그 속에서 상대를 대하는 점을 배우기도 한 것이며, 그 동안 서로 지켜주고 부등켜 힘이 되준 버팀목의 시간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만남이 다소 아쉽지만 이별의 끝자락으로 마무리 되는 것. 어쩌면 환송회같은 기분으로 헤어짐도 멀찌감치 받아들이면  혹시 훗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막 대하는 것으로 다시금 보기 싫은 정도의 마무리를 한다면, 정말 서로는 다시 보기 싫을  수도 있기 마련이다.      


 이별은  어쩌면 재회를 준비하는 기나긴 여정이기도 하다. '정말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겠다.' 개인적으로 그 집념은 좋으나 훗날 집착으로  번지다 지쳐서 나중에 체념이 되어 허탈할 수가 있다. 사랑은 자연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별의 아픔을 억지로 거슬려 오를 수  없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에 1장부터 설레이고 달콤해서 마치 사랑은 즐거운 것마냥 포장했지만, 실제적으로 살펴보면 그리  화려함만 가득히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추하고,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운 면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랑이 어찌 행복만  가득할까? 고진감래를 동반해야 비로소 꽃이 핀다. 꽃을 생각하면 햇빛의 영양분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모진 칼 바람과 소나기  빗물을 머금고 참고 견디어 낸 생명이 더 강인하고 멋지다. 사랑과 이처럼 꽃과 같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버티었으며 그렇게 사랑으로 가족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큰 의미로 볼 때 인류사의 한  카테고리를 형성하는 소형 네트워크의 근원이기도 하다. 남녀 간의 애정은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인류사의 생명의 의미를 동반하는 그 에너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한 것이며 사랑은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조물주가 섭리로 인해서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을 자연스럽지 않게 억누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들어 주신 그 자연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어찌 인간의 감정으로 한 번의 이별을 지을까? 이 자체가 참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사랑은 고귀하고 영원할 듯 하지만 왜 우리는 이별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더 나은 사랑을 찾기  위한 연습이다. 또한 이타적으로 봤을 때는 상대에게도 더 나은 이성을 만날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이별을 하는 이유 더 나은 사랑을 찾기 위한 연습

                   1) 지금 보다 다른 이성 찾기

                   2) 지금 보다 나아진 자신이 되어가는 상태

                   3) 상대에게도 더 나은 사랑을 찾기 위해 기회를 주기     


 아마도  현재 이별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더는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가는 알아야 할 상황이니 미리  알아야 할 것도 중요하다. 아마 그러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  받아들이는 시점이 아니기에 중단하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 때 읽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막 헤어진 상황은 패닉상태이기에  글도 말도 그 어떠한 위로나 격려나 충고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이러한 상황의 적으면서 수 많은 상처를 다시  되내이면서 글을 쓰기에 가슴이 아픈 것은 독자보다 이상일 것이다. 이토록 사람에게 비수를 꽂듯이 가슴 아프게 다가선 이별. 물론  이별의 종류는 수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3가지 유형으로 분석하면 아래와 같다.      


*이별의 대표적인 유형 3가지

1) 이별통보

2) 커다란 장벽

3) 연락 두절     


 어쩌면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이별을 하기 마련이다. 원해서 선택한 이별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보고싶은데 서로 엇갈려  연락되지 않아서 헤어짐은 억울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또한 연락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특정 상황에  있어서 더는 사랑할 수가 업다. 왜 일까? 그것은 정말로 사랑해서라는데, 과연 어떠한 경우가 있을 지 영화 속 내용과 함께 이를  조명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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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별통보     

 


사랑의  일련의 과정 중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이 무엇이랴? 바로 이별이 아닌가 싶다. 이 이별하는 방법은 여러행태가 있겠으나 갑작스레  연락을 두절하거나 커다란 장벽으로 인해도 아니라 갑작스레 헤어짐을 얘기 들을 때곤 가슴이 아프다. 어쩌면 자신의 잘못이 커서  이별을 맞게 될 수 있고 딱히 커다란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통보를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와  달리 상대가 잘못을 했기에 미리 자신이 이별을 고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잘못을 했기에 미리 상대에게 이별을  들어야 하거나 먼저 이유없이 헤어지자고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 이별 통보의 의미 = 확실하게 관계를 정리 


 이렇게  누가 누군에게서 먼저 '이별'을 말하냐는 중요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상대가 잘못하거나  자신이 잘못도 중요하지만 이를 왜 극복하지 못하는 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건축학개론 (수지에게 꺼져달라는 이재훈 : 4분 16초)

https://www.youtube.com/watch?v=9raf2qyoY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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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봄날은 간다 (2001) - 사랑이 어찌 변하는가?



상큼한  이영애와 풋풋한 유지태가 주연으로 더 감수성 깊은 영화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 봄날은 간다. 둘은 일적으로 알게 된 사이다.  둘이 처음 만난 장소는 강원도 춘천이다. 그래서 더 시각적으로 자연을 벗 삼아 그린 풍경이 많이 그려지고 있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와 지방 라디오 방송PD인 은수(이영애)가 담고 있는 소박하면서 잔잔한 사랑이야기다. 자연스럽게 친해지려고 상우는 은수의 곁에 바래다 줬는데 이건 왠 일. 여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 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보통,  '차나 한잔하고 가요'라고 하면 그럴 법도 한데, 아니 한 밤 중에 웬 라면인가? 그렇게 은수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가서 라면을  끓이다가 또 다시 여자의 적극적 멘트가 나타난다. 아마 이런 멘트는 모든 뭇 남자가 꿈에 그리는 대화가 아닐까? 살면서 이러한  프로포즈 이상의 의미를 받아 본 적이 있으랴?       


"자고 갈래요?!"     


 국내  정서에 다소 파격적인 대화다. 그렇다. 아직 사랑에 어리숙한 상우보다 사랑에 이미 능청스러운 은수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사랑의 촛불을 킨 은수. 마지막 촛불을 끄는 것도 은수다. 둘이 결혼을 목표로 만나려 하지만 이미 이혼의  아픔이 있는 은수는 그러한 사랑이 두렵기만 하다.   

    

 둘은 그렇게 지내다가 그만 서서히 이별을 예감했다. 버스에서 내린 은수는 커다란 결심을 하며 기다린 상우를 보면서 다짜고짜 이야기를 한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잘 할게"

"헤어져"     


잠잠하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다. 모든 연인들에게 이러한 통보! 싸우다가 홧김에 내 뱉을 수도 있지만, 첨이 아니라 두 번 연이어서 말한다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지 않았을까?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하"     


여자도 남자도 말이 없다. 그렇게 얼굴 굳게 서 있는 은수. 그러한 은수는 정말 차갑게 변해버렸고, 이에 가슴아프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상우는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헤어지자."     



 그렇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사람도 취향이 변하고 입맛도 변하기에 사랑도 변하는 것이다. 마치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인  자연환경도 때에 따라서 시시각각 날씨가 다르고 강산도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도 오죽하랴? 사랑도 변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지겹고  지치면 그만큼 매너리즘에 빠져서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막상 그럴 수 없음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사실상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마지못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현대인의 삶이기도 하다. 매너리즘이 이렇게 지친 사람에게  사랑마저 위안이 되어야 하는데, 그마저 지치게 한다면 싫증이 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숱한 이벤트로 한다하여도 어쩌면 그때  뿐이다. 지겹고 매번 같은 사랑은 그 사람이 누구냐를 넘어서 사랑이 아니라 일처럼 느끼진다면 꽤나 슬프지만 봉사처럼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만 할 수 없고 일만 할수도 없다. 사랑과 일은 동시에 공존한다. 너무 한 쪽에만 치우치면 살아갈 수 없다. 어쩌면  사랑하기에 그 형편적으로 안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사랑 때문에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랑이 너무 지겨워 일처럼 느껴진다면 사랑이 아니라 일하고 난 뒤 다시 일을 하는 식이다. 이러니 아마 이별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일과 다르다.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같이 극복하고 안위함을 찾아야 한다. 어떠한 댓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금전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상대가 어떠한 댓가를 원하거나 짙은  구속과 자신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사랑이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 마치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로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성인 현대인에게 어쩌면 사랑만이 유일한 즐거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랑마저 지치게 한다면 이별을 선포하기  마련이다.      


 '봄날은  간다' 영화에서도 유지태는 이영애를 서서히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이영애는 오랜 생각 끝에 축적되어서 한 말이  '그만하자'는 것이다. 모든 게 함축적으로 담겨진 말이다. 남자가 봤을 때, 여자의 이 한마디가 현재의 상황에 있어서 비롯된 말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여자의 말 한 마디는 단순히 지금의 상황의 대한 결말이 아니라 그 동안 지내면서 서서히 여기었던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그 절정에 이르게 되어서 폭발이 된 것이다. 더 재미난 것은 여자는 차분히 그리고 겸허히 이 현실에  슬퍼하고 있으며, 남자는 이와 다르게 흥분하면서 보채고 있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그저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여기고 있다.  참으로 평범해 보이게 그리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렇게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혹시 길거리다가 말싸움으로 두 연인이 헤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커피숍에서 두 연인이 헤어져 각자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경우를 봤는가? 아마 '봄날은 간다'와 같은 심정을  많이 목격해 봤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도 끝난 적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위대해 보이지만, 그 이별은 처량해 보인다. 쓸쓸한 뒤  안길에서 우는 비둘기의 노랫소리와도 같다. 구슬프게 울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 봄날은 간다 (이별하자는 이영애와 사랑이 어덯게 변하냐는 유지태)

https://www.youtube.com/watch?v=c5Vr6vMpcvk


 저자가  커피숍에서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가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걸 봤다. 남자가 헤어지자는 소리에 여자가 광분한 듯  했다. 그리고 지갑안에 카드를 내팽기치면서 남자 얼굴에 던진다. 그리고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테이블에 두면서 하는 말을 잊지  못한다.      


"이걸로 끝이야. 전화하거나 다시 만나자 그따위 소리 하기만 해! 지긋지긋하니깐"     


아마도  둘은 오랫동안 사귄 듯 하다. 지긋지긋한 단어가 나오다니. 너무 오래사귀고 그 속에서 발전이 없으면 사랑이 지치기 마련이다.  하도 둘의 목소리가 커서 두 커플의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을 듣자하면 남자는 공부하는 학생인데 너무 여자친구를 챙겨줄  수 없는 걸 이해해달라는 것이었고, 그래도 여자는 우리도 커플인데 좀 자주 만나자는 거였다. 또래 친구에 비해서 너무 솔로처럼  지내는 게 싫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남자에게 차라리 가는 게 더 낫다고 말을 하니 남자가 헤어지자고 한 것이었다. 둘은 어차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듯 하다.     

 

 이별통보.  직접 만나서 하면 화끈하게 끝장이 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마 다시 연락하지 말고 서로 각자 잘살자는 뜻에서 결정을 짓는  마지막 만남이 아닐까? 그나마 마지막 만남으로 이별통보는 서로의 인격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좀 아쉽게 헤어지는 것은 물론 용기가  나지 않아서지만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는 좀 억울할 정도다. 요즘 10대는 문자로 이별통보를 한다는 상황도  있는데, 어찌 몇마디 말로 이렇게 사이가 남이 될 수 있을까? 혹은 미니홈피 방명록으로 이별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별통보의  방식마다 저 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모두 다 끝을 위한 결정적인 마무리 방식이다. 싫던 좋던 더는 연인사이를 지낼 수 없다면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정말 두 사이를 발전을 위해서 더 잘 맞는 짝을 찾아서 떠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분위기가  환송회가 될 수 없지만, 더 버티는 가슴아픈 슬픔보다는 한 시름 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둘이 합의하에서 헤어지지 않기에 이 한 쪽이 가슴이 아픈 것이다. 그저,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통보는 주는 자 받는 자 모두 다 가슴이 아플 것이다. 다만, 그 이별통보가 가식적으로 대하고 뒤에서 바로 또 다른 이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에 대한 반칙이다.      


*  이별의 대한 순서  

1) 이별통보 => 2) 서로 여운을 정리 => 3) 각자의 또 다른 사랑찾기     

 사랑은 때로는 함께 한 사람과 작별을 해도 그 여운을 간직하면서 슬퍼해야 하는 게 도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서로에 대한 여운을 정리하지도 않는 채 건너뛰게 된다면 전의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아니 "움직이는 거야~"라는 cf가 당시 파장을 일으켰다. 20세기말 신세대의 특징이도 한것이다.


* 휴대폰 광고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남기고, 그 휴대폰 회사는 떠나고~

https://www.youtube.com/watch?v=0GsJpuPUEVo

한솔pcs광고 중에서 (차태현 / 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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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만나서 헤어지는 직전의 남녀     



 한  때, 커피샵에서 사무적인 이야기로 거래처와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였다. 그렇게 공적인 일이 마무리되면서 서로의 사적이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얘기가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한자락 놓여졌다. 그러면서 서로의 사랑에 대하여 얘기를 논하는 중 뒷 편에서  남녀의 실갱이가 거슬렸다. 보지 않으려해도 워낙에 소리가 커서 힐끔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이내 남자는 화를 내고 여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마도 남자가 이별 통보를 하는 듯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는 지는 그리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이 두 남녀의 상황을 어떻게 진행할 지 오히려 주변 인들이 관심거리였을 법했다. 여자가 이내 소리를 치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 사이는 어떻게 하라고?!""잊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럼. 카드는..."

"해지해야지..."     


 울던  여자가 남자에게 지갑의 카드를 꺼내서 넘겼다. 남자는 그 카드를 받자마자 카페에 황급히 나갔다. 울던 여자는 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또 하나의 사랑이 빚겨가듯이 가슴 한 켠 쏴하게 전해졌다. 보는 이로 하여금 냉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울고  있는 여자의 마음이 전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거래처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이 상황의 아픔을 같이 했다. 이 때 두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연결되어야 할 그 카드. 카드를 전해지면서 완전한 이별을 이야기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인지 전화나 문자가 아니라  만나서 통보를 했어야만 하는 상황인 듯 하다.


 이와  다르게 길거리에 싸우면서 헤이지는 경우도 봤다. 여자는 울분해서 울고 남자는 그녀의 하이힐을 빼앗으면서 도망치지 말라면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머리카락을 쥐어 잡으면서 욕도 퍼부었다. 힘이 못 당한 여자는 그저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내  슬금슬금 구경하다가 몇명이 이 모습을 보다가 이내 도와줬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모르긴해도 다시금 재회하고 싶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아마도 남자는 자신의 분에 못 이겨서 여자에게 화풀이로 해고지 하려는 속셈으로 만났을 것이다. 정말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남들이 보는 길거리에서 망신주면서 보내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와  비슷하지만 남녀가 정 반대로 카페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뺨을 때리면서 헤어지는 경우도 봤다. 아마도 그녀는 그에게 뺨을  날려야겠다는 일로 만나서 해결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 남자가 어떠한 잘못은 한 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비참하게 만들고 떠났다.  드라마에서 보던 광경을 맞 대하면서 보고 있다는 게 서글프다.     

  

만나서 이별을 해야하는 상황

-> 말로만 끊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까지 해결하기 위해서      


 만나서  헤어지는 것은 확실히 매듭을 정리하려는 목적이 크다. 심지어 커플링도 합의 하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건내줬다고 한다. 아 헤어짐도  아쉽지만 금은방에서 환전받았을 때는 그 만나서 헤어짐이 때로는 고맙다는 사람도 있다. 만일에 전화로 헤어졌다면 그 커플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치사할정도로 헤어짐이 자신이 줬던 선물을 이별하면서 받으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의 줬던 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조금 유치하지만 때로는 이해는 갈 것이다. 예를들어서 커다란 선물마져 줬는데 상대가 양다리일 경우는 다시 되찾아도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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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락으로 헤어진 남녀     



 만나서  헤어지는 것에 비해서 헤어짐을 전화나 문자. 때론 방명록 혹은 메일로 헤어지게 되는 상황도 있다. 이는 만나서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미안하기에 또한, 마주보면서 이별을 통보하기에 여간 자신이 없기 때문에 발생을 하는 경우다. 아마도 만나서 상대가  징징대면서 질질짜거나 폭발하여서 투정부리면서 끝내는 게 싫어서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저자도  만나지 않고 이렇게 전화로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는 지 모른다. 왜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훗날 생각하면 전화로 헤어지는 게 더 나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만났더라면 폭발해서 추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는 것이 그러한 전화로 이별을 통보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우리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커다란 선물을 정리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굳이 만나서 같이 쓰던 카드를 정리하거나 귀중품을 돌려 받는 일은 없었다.  

    

만나지 않고 이별을 전해야하는 상황

1) 상대에게 마주보면서 이별을 통보할 자신이 없거나 미안해서

2) 상대가 징징대거나 폭발하는 경우를 예상해서

3)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매개체가 없기에      

 

 이렇게  만나지 않고 헤어졌다면 이별을 한 뒤에 하던 행동이 미니홈피 1촌 정와 사진 정리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커플요금제'일 경우는 통신사를 찾아거나 전화로 해제를 한다. 우울한 기분을 조금 해소하기 위해서 그동안 눈치보여서 못했던 클럽을  가거나 스타일을 변신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만나서 헤어지지 않고 연락으로 헤어졌다면 그 상황을 조금 잊기 쉽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기억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충격이 조금 덜하다. 만나서 헤어졌다면 만일에 그 충격으로 오래 앓아 누웠을  것이다. 그리고 헤어졌을 때의 그 말투는 물론 표정까지 살아있어서 머리 속에서 맴 돌 것이다. 이에 비해서 만나지 않고 헤어짐은  당시에 나를 이렇게 무시하나 생각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될 수 있게 마련해준 이별이다.   

   

만나지 않고 이별을 고함

-> 만나서 헤어진 것에 비해서 상처가 덜 함 -> 바로 상처 극복에 들어 서게 됨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위해서 굳이 만나지 않고 연락으로만 헤어져야 하는 상황은 옳지 못하다. 때로는 그 상대에게 편안한 안녕을  위해서 마지막 멋진 헤어짐을 위해서 격려와 다른 이성을 위해 만남을 빌어주는 것도 좋은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 물론 서로  그러한 마음으로 헤어지기란 쉽지 않다. 애써 굳이 쿨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랑은 이처럼 무섭다. 사랑 할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좋아 죽었는데, 헤어질 무렵에서 있어서는 그동안 쌓은 정을 끊기엔 너무나도 냉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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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커다란 장벽      



사랑의  무슨 조건이 있을까? 생각을 하지만 실상 조건이 있다. 소위 말해서 남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등급이라는 게 있다.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짝을 이루고 있다. 물론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면을 극복을 했기에 간간히  뉴스에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결혼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는 다소  현실적이지만 맞는 얘기이기도 하다.      


* 클래식 (어쩔수없는 이별 - 군대 떠나는 조승우의 이별열차)

https://www.youtube.com/watch?v=9LEiOMAzbTk


 그래서  조금 귀티나게 보이는 아나운서는 대부분 재력자 집안의 며느리가 되기도 한다. 그 분류에서는 당연한 루트로 가는 길이다.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상대가 고작 이러한 사람만 있다고 불평을 하는 이들이 있을텐데, 그것은 자신의 등급이 그 정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등급적인 시각으로 볼 때, 떳떳하게 자신의 높은 등급으로 생각하는 이는 과연 몇 %일까? 대체적으로 20%안에만  떳떳할 것라고 본다. 이러한 사람의 등급. 기분 나쁘지만 그 등급에 맞게 결혼을 하게 도와주는 결혼 정보업체도 사람의 등급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어찌 사람을 외적인 학력, 외모, 신체, 나이, 재력으로 인해서 급수가 맺겨진 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어느 정도 외모를 보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물론 20대에 비해서 그 비중이  다소 낮아졌지만 결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무언의 등급이 존재한다. 이러한 등급으로 인해서  우리 사랑에도 다소 이어져야 할 상황도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론 이겨낼 수 없는 신분이 다르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법규 규정상에서 그 사랑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별의 별 상황으로 당사자들은 좋아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같은 학과에서 과CC가 나오는 것을 규정위배라고 하는 교수도 있었다. 워낙에 연애로 인해서 그  후폭풍으로 학과에 지장이 되기 때문에 이를 억누르려고 하는 이가 있다. 더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이성교제가 민감하기에 나이를 25세  이하는 사귈 수 없게 규정하는 곳도 있다. 이도 역시 문란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미연의 방지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과연 그 법규가 효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때로는 순기능이 많기에 그러한 과정을 참고 이겨내면서 잘 버티고 있다. 그렇기에 그  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법적으로는 다행히 풀어졌지만 예전에는 동성동본일 경우는 나라에서 혼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7년 7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 1월부터 그 효력을 상실되어서 8촌 이내의 근치혼이 아니면 혼인신고가 가능해졌다.  2005년 3월 31일로 공포하여 개정된 민법에서도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완전히 폐지하게 되었다. 물론 근친혼으로 인해서 타국은  4촌지간도 결혼을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는 그렇게 되었을 경우 그 자식으로 인해서 열성인자가 발생활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부분을 과도하게 막기 위해서 근친혼만큼은 결혼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비도덕인 부분임으로 방지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동성동본 금혼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은 보수적인 나라임을 다시금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서 많은 부부들이 자식의 호적을 올리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좀 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커다란 장벽

1) 사랑의 등급이 있기에

2) 그 공동체의 법규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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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로마의 휴일 (1953) - 신분이 엄연히 다르기에   


사랑하지만  현실의 일이나 상황 때문에 멀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때로는 그 상황이 신분이나 국적이 달라서 자기만의 생활로 되 돌아가야 하기에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면 어떠할까? 이런 커다란 장벽이 사랑이란 때로는 이렇듯 가슴아프지만, 슬픈 유종의 미를 멋지게 그려내야 할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서도 이러한 유종의 미를 담고 있다. 아니 어떻게 1953년 작품이 이러한  탄탄한 시나리오가 담겨져 있는지 대단할 만한 영화다.   

한  명은 이 시대에 주목받는 앤 공주(오드리 햅번). 또 한 명은 그 주목을 취재하는 이탈리아 온 미국기자 존 브레들리(그레고리  팩)의 만남이다. 고전만의 묘미인 흑백영화로 우선 초대하게 된다. 앤 공주는 유럽 각지를 친선방문 중이어서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다. 그렇게 이탈리아 왕녀 앤(헵번)은 로마대사관에 체재가 싫증 그 자체였다. 너무 짜증날 정도의 스케줄에 몰래 대사관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앤은 진정제의 과음으로 그만 공원에서 잠이들고 만 것이다. 이 때 미국 신문기자 조는 그녀를 발견하고  자기 하숙집에서 하룻밤을 재워 준다. 다음날 조는 신문사에 출근하여 왕녀의 실종으로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을 보고 놀란다. 신문을  들고 방에 와서 자기 침실에 자고 있는 앤공주와 비교하니 즉, 그녀가 공주임을 알게 되어 놀라웠다. 우선 사랑할 생각이 없고  그저 특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녀를 취재하려고 한다. 그렇게 그녀의 뒷 꽁무니를 쫓으며 파파라치의 생활하면서 곁에서 맴돌게  되다 그만 둘은 어느 덧 로마 한 가운데에서 사랑의 추억을 만들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싹트고  조는 그녀의 본국에서 파견된 비밀탐정과 싸움을 일어나며 그만 앤을 놓치게 된다. 오드리 햅번은 이 영화로 인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 로마의 휴일 (햅번에게 장난을 치는 그레고리 팩의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XU5uULdWxPw



이  영화의 상황을 잘 따져보자. 우선 두 명은 잠시 생활에 있어서 일탈적이고 둘 만의 야릇한 사랑을 남기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현실에 묶여 재미없고 피곤한 공주님에게는 더군다나 잊지 못할 자유와 사랑의 추억을 준 로마. 그리고 기자로써도 서민의  생활로 전혀 이뤄지지 못할 판타지적인 공주와의 사랑. 이 두 계층간의 만남이 더 긴장감을 고조하면서 이끄는 구조를 담고 있다.  상황에 있어서 더 만나면 핍박을 받거나 사회적인 조롱도 있을 수 있다. 어찌되든 이 쯔음에서 두 사람의 추억은 가슴에 묻은 채  떠나야 했어야 할 것이다. 싫증나서 헤어지는 이별이 아니라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이쯤에서 헤어져야 하는 이별인 셈이다.    

이렇듯,  때로는 우리 삶에 있어서 피치못하게 더 꽃을 만발하게 피기도 전에 시들어야 할 사랑이 많다. 알고보니 정약 결혼할 상대가  있다던지, 90년대 전 국내에서 동성동본이 그러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에서도 이를 간절히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유학을 가서 멀리 떨어진다던지, 한 명이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돈에 팔려 결혼을 한다던지, 사랑하던  사람이 원수의 자식이라고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너무 드라마의 억지가 많지만, 어쨌거나 피치 못할 사랑이 이어갈 수 없게  되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사랑의 척도나 그 깊이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극복하고 사랑으로 골인한  경우가 있다. 실제 있었던 어느 왕자가 왕위를 버리고 평범한 여인과 결혼한 사례가 있다. 참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가  아닐 수 없다.


* 로마의 휴일 (서로가 모른 척하면서 인사하며 굿바이)

https://www.youtube.com/watch?v=kIxNV9DSE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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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벽이 높은 사랑 동성동본CC     



80년대의  이야기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인연이 되어서 결혼을 하려는 한 여자가 있었다. 둘은 그렇게 연애 끝에서 결혼을  하려고 남자는 여자의 부모를 찾아 뵈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성(成)이 뭐냐 묻다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호적상 같은  동성동분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장인될 사람은 고개를 저으면서 보수적인 입장에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조상보기 부끄러워서  도저히 결혼을 진행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두 남녀는 떨어져서 애가 타게 상대를 그리워야만 했다. 그러다가  남자는 여자집에 몰래 찾아와 야반도주를 하자고 했고, 그렇게 둘은 커다란 장벽을 뛰어 넘으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을  치려다가 결국 여자의 아버지에게 걸려서 결국 여자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 딱히 집전화 혹은 우편이  아니면 연락할 방법이 없기에 갇힌 것과 다름이 없다.      


 너무나도  허망할 따름이다. 근친상간도 아닌데 이러한 말도 안되는 법으로 인해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게 기가 막히는 일인 것이다.  한국이라는 이 유교적인 보수적인 나라에 태어나서 더 원망했을 것이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몇 번의 선을 봤고 이에 그녀의 아버지  강압적으로 다른 이와 결혼을 일사천리 이루려고 했다. 그러다가 남자가 신문을 보다가 기가 막힌 뉴스에 신이나서 그녀의 아버지를  찾은 것이다. 바로 동성동본으로 결혼하고도 혼인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에 일정기간에 혼인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남자에게는  작은 희망을 안고 찾아갔다. 헌데 여자의 아버지는 이미 마음이 굳어진 것이었다. 그런식으로 나라에서 결혼을 승인할 수 있지만,  자신의 조상 내력에 먹칠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끝내 반대하게 되었다. 이에 남자는 실의를 참지 못했으며 여자또한 식음을  전폐하면서 생을 보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 남자가 선택했던 길은 세상을 마치는 것이었으며 조용히 다음 생애를 찾았고, 여자는  끝내 그 소식을 듣고 슬퍼했다고 한다.    


 커다란  장벽. 동성동본이라는 커다란 장애물. 아마 시간이 지나 지금 들으면 다소 엉뚱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한반도에서 불과 몇  십년전에 일어났던 가슴이 아픈 사연이다. 그래서 나 또한 일찍이 어머니께서도 같은 성씨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심지어  94년에 판매가 된 음반중에서 DJ.DOC의 '머피의 법칙'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형친구 애인, 내 친구애인 혹은  동성동본'이라고 가사가 나온다. 그 정도로 얼마 되지도 않는 얘기이기도 한다. 다행히 그 동성동본 금혼법이 없어졌지만 지금 생각만  해도 당시 그로 인해서 많은 연인들이 커다란 장벽에 이기지 못하고 갈라서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사회가 보는 그 고정관념과  눈총들. 이러한 것들이 두 남녀의 인생을 갈라서게 되기도 한다.      


사랑에 부딪히는 커다른 장벽

 1) 극복할 경우 두 남녀가 이겨낼 수 있지만 그만한 댓가를 치루면 살아야 함

 2) 극복하지 못할 경우 사회의 벽과 화해를 하면서 사랑없이 평생 살아야 함     


 이외에도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 있는데 자신의 기업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다른 재벌집 딸과 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두 남녀의 종교가 달라서 각 부모끼리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으로 부모세대들은  지역감정으로 인해서 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의 갈등도 여기에 포함이 될 것이다.       


 사랑에  극복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 그 벽에 부딪히가 너무 두려워 혹은 그 조건이 아쉬워서 포기해야 할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 선택 둘 다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가장 BEST는 사랑을 하면서 주변에서 모든 장벽없이 축하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 꼭 그렇게 해피엔딩하지가 않다. 삶은 복잡하기 뒤틀려 있기에 우리가 그것을 일일이 해치워야 할 상황도 있다.  사랑과 장벽 사이에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커다란 장벽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사랑하기에 그 벽을 넘기에 서로가 피해를 본다면, 진정 사랑하기에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것도 사랑이다. 사랑하지만  놓아줘야 할 때가 바로 이러한 때다.      


사랑하기에 놓아줘야 하는 상황

 커다란 장벽을 함께 넘기에 고통이 많음 -> 때로는 놓아줘야 하는 게 필요함     


tvN- '응답하라 1988' - '동성동본'으로 고생한 보라와 선우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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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런 신분의 차이를 극복 왕위를 버린 왕자                                              


왕자인 한 남자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해서 왕위를 버릴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천하를 가진 이가 그깟 여자 하나에 과연 그럴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이가 있어서 커다란 이슈가 된 1930년대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베시  윌리스 워필드(Bessie Wallis Werfild)는 1896년 6월 19일에 미국 펜실베니아의 태어난 여인이 있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폐결핵으로 인해서 돌아가시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게 된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1916년 한 해군 대위이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결혼하자마자 위기였다. 그 남자는 사실상  알코올 중독이며, 의처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무려 10년을 참다 못해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이혼을 한 뒤  새롭게 만난 또 다른 남자가 바로 선박업을 하는 영국 계 미국인이었다.  이에 반면, 아버지 1894년 태어난 에드워드 왕자가  있다. 그는 아버지 부왕 조지 5세와 메리와 어머니 메리 여왕 사이에 태어났으며, 17세에 황태자로 임명이 되었다. 심지어 세계  1차대전까지 참여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그 였다.


그런  그가 1931년 6월에 어느 날. 한 파티장에서 푸른색 드레스를 곱게 차린 그 심프슨 부인을 본 에드워드가 그만 반하게 된 것이  아닌가? 너무 한 여인에 끌렸기에,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자신의 주말 별장에 초대를 한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 황태자가 될 사람은 한 여인 때문에 매일 그녀와 우정을 가장하게 저녁을 매번 먹었으며, 이를  눈치 챈 심프슨은 신사답게 그녀를 놓아 준 것이다.


1936년  2월 20일 조지 5세가 서거를 하며, 에드워드 황태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보수적인 영국왕실에서 이혼경력이 있는  미국의 한 여자를 왕비로 맞이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왕실은 물론 국민조차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 영국 전체의  반대와 싸워야 했던 에드워드는 결국 왕위를 물러날 결심을 한 것이다.

 1936년 12월 11일.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전세계 이들에게 발표를 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없이는 국왕으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라고  하며, 결국 왕위를 버리고 그녀를 선택하며, 결국 평범하게 살기로 한 것이다 . 그런 그들은 프랑스의 '샤토드캉데'에서  결혼식으로 올리며 소박하게 살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1972년 에드워드가 죽기까지 35년을 살게 된 부부였다.


과연 이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니 더욱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여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한 남자. 사랑보다 더 한 가치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앞에서는 신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즘 시대에는 결혼은 비슷한 등급끼리 결혼하기 일쑤다. 일종의 가정 M&A로 여기는 듯 하다. 결혼정보업체는 집안, 재산정도, 학벌, 외모수준으로 소위 등급을 주며, 해당 등급끼리 연결을 성사시키는 데 익숙한 현대사회이다.


* 현실적인 사랑과 이상적인 사랑

현실적 사랑 : 등급끼리 만남 (외모수준, 신분, 집안, 재산정도, 학벌 등)

                  -> 가정 M&A 느낌 -> 사랑은 조건 중 일부로 느끼어짐

이상적 사랑 : 등급은 의미가 없음

                  -> 사랑이 최고의 조건이 되는 것


이에,  반해서 사랑앞에서 아무런 신분이나 집안 등은 별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 에드워드 황태자의 결단력에 사랑의 의미가 뭔지. 한  평생의 인생에서 모든 걸 다 가졌어도 진정 사랑을 가졌는지 한번 우리 삶을 비춰서 봐야 하지 않을까?


*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_TZDtZH4d_c

유튜브 참조 : 현이의 이바구 Hyeon's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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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락 두절      


연락이  두절된 상황. 아마도 크게 2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 째는 서로가 만나고 싶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헤어지는 경우, 또 하나는  한명이 일방적으로 소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로 볼 때, 헤어지기 위함인데 왜 만나서 이별통보하는 것과 왜 연락  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바로 그것은 끝 마무리를 보고 싶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마주 대할 수 없기에  혹은 조용히 끝내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21세기 연인의 필수품 핸드폰이 없다면 직접 집이나 회사 혹은 학교를 찾아가거나 주변 지인을 통해서 알아 내 만날 수 있지만,  그것조차 될 수 없는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상황은 좀 다르지만 짧게 만난 사랑일수록 연락 끊기는 쉽다. 하지만  오랫동안 만난 사이에서는 그간의 정이 있기에 함부러 끊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얽혀진 핏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연락끊기 쉬운 경우

 오래만난 사이 짧게 만난 사이      


 제  아무리 핸드폰을 울려도 받지 않기에 메신저를 추가해보지만, 차단하거나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통신수단의 여부가 아니라 이미 그 상대의 마음이 닫혀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와의 이별을 몰래 숨으려고 잠적을 감추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이럴까 싶은데 막상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모든 주변 삶을 뒤로 한 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이별을 할 다음, 혼자서 제주도 올렛길을 걷는 여인도 있었다. 나 또한 혼자 그 동안의 업무를 마치고 퇴사를 하여  기분 좀 내려고 6월에 제주도 홀로 여행을 했다. 그 속에서 여러 게스트 하우스 사람과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 여인은 실연당해서 그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아무런 생각없이 올렛길을 걸어보니 한 나절이 갔다고 한다. 그만큼 실연의 상처는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다. 실연의 상처를 받은 사람도 그렇지만 주는 사람은 오죽할까? 아니, 얼마나 미안하면 연락을 하지 않고 이별통보를  자연스레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이것은 어쩌면 그리 좋은 예의는 아니다. 문자 한 통 '우리는 더는 만나지 말자! 미안해'  이렇게 일방적인 글과 함께 전화기가 꺼져있거나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마치 또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뜻으로 핸드폰 번호를 바뀌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기존의 스타일을 바꿔서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고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짜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별통보 없이 조용히 연락두절 하는 이들은 어떻게 생활을 할까? 그 유형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연락두절에 따른 입장  

1) 연락을 끊은 가해자 이쯤에서 정리하기에 너무 미안해서 숨어버리는 마음

2) 연락이 끊긴 피해자 재회보다는 우선 소식이라도 알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3) 외부로 연락 끊긴것 그 어떠한 장애물로 인해서 서로가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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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 가슴아프지만 끝내야 하는 가해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서서히 시한부의 삶을 사는 한석규에게 이제 막 성인이 된 앳띤 주차단속  심은하를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늘 밝고 웃음을 잃지 않고 앞으로 사랑을 할 많은 나날이 넘쳐날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 이 남자는 자신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시한부다. 그래서 '마지막 잎새'처럼 힘 없지만 힘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잘 모르지만, 아픈 사람만이 그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고, 또한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생명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무엇가를 하나를 얻어도 귀한 것이다.      



 그런  그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작은 가게 사장이다. 마치 자신의 영정사진이나 찍어야 하는 신세인데 갑작스레 싱그러운 그녀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사진관의 손님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생애 얼마 남지 않는 삶에 있어서 아마도 평생 마지막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온 것이다. 그렇게 둘은 사건의 발달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해서는 아픔만 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애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서서히 그녀에게 끌리는 그다. 그의 자상한 표정은 늘 그녀를 대할 때마다 웃는다. 그런 그녀는  그러한 자상함에 끌려선지 왜 늘 자신을 보고 웃냐며 좋아한다. 그렇게 서서히 사진관 손님으로 시작되어서 친해진 둘은 놀이동산도  가며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재미없는 군대이야기나 하는 아저씨인 그에게 팔짱을 자연스레 끼면서 애틋한 사이로 발전해 나가는 듯  싶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추억의 부스러기_KBS)

https://www.youtube.com/watch?v=p1boVfO5qR8

 하지만,  더 깊이 사랑한다면 아마도 그녀의 가슴이 아파질 것을 알아선지, 조용히 연락없이 사진관을 정리하고 심지어 어리숙한 식구들에게  자신이 떠나면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일일이 기록한다. 특히나 아직도 리모컨 작동이 서툰 아버지를 위해서 그 기록을 하면서 진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아프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사진관은 문을  닫는다.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사진관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어떠할까? 제발 소식이라도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클 것이다.  혹시나 간간히 와서 사진관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틈에 편지를 써서 적어 놓는 그녀. 그러나 그의 대답은 없다. 어느덧  편지가 하나하나 쌓여만 가고 너무나 분한 그녀는 사진관 유리창에 돌을 던졌 깨뜨린다. 결국 그렇게 그는 갔고 그녀도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그 추억을 깊이 간직하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한석규는  그렇게 소리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게 된다. 그 어떠한 소식도 남기지 않는 채. 그저 그녀의 머리속에서 추억으로 기억되면서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마지막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수도 혹은 너무나도 미안해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할 용기가 없어서 그러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아픔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도 있다. 그저 미움으로 번질  지언정 자신의 병걸린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기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말로 만나서 설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더  그러하다.    


 아마도 그의 마음 속은 너무나도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행동하자면 그녀와 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사랑하기에 하지 않아야 될 상황이 아닐까?      


연락을 끊은 입장 (가해자 입장)

1)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2) 그저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기에

3) 만나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사랑해서  헤어져야만 하는 그 말. 예전에 90년대 김종서의 '지금은 알 수 없어 에서 그 가사가 기억이 난다. 당시에 소년이었던 나는  멜로디가 좋아서 그저 따라불렀으나, 성인이 되어서 다시 가사를 읊어보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은 알수 없어 김종서     

이젠 깨달아야해 이것이 운명인 것을

진정 사랑하기에 체념도 필요했음을

영문도 모른 체 그댄 울고 있지만

지금은 알 수 없어 그댈 떠나는 내 진심을

My Love 부디 나를 잊어줘 나는 그대의 짐이 될 뿐이야

My Love 벅찬 사랑의 기억도 이제는 잊기로 해요

먼 아주 먼훗날 마지막 순간 눈 감을 때

난 그대 없음을 후회하겠지

My Love 영문도 모른 체 그댄 울고있지만

지금은 알 수 없어 흐르는 시간이 말해줄 뿐     


 이  가사처럼 연락을 조용히 끊으려고 하는 입장이다. 사랑하기에 헤어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몰래 조용히 연락을 두절해야만 하는 이  가슴아픈 현실이 그저 애처롭다. 이별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둘 다 아프다. 아마도 모르긴 해도 주는 이가 받는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사랑했지만 헤어졌어야만 했는가? 그간 사랑은 거짓이 아니다. 진심이었으나 계속 영위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의 있었던 추억이 다 사기처럼 보이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사랑을 그동안 했다면 이러한 연락두절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엇가의 입장. 어쩌면 가해자이지만 마음만큼은 피해자보다 더 할 수도 있다.    


연락을 끊은 가해자 심정

 이별의 가해자이지만 피해자보다 더 가슴이 아플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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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5년만에 찾아온 옛 사랑 사랑이 끊겨 억울했던 피해자      


 연락이  뚝~!! 끊겨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왠지 불안하다. 이게 정말 끝인가? 잠시 말다툼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는 것일까?  위의 말했듯이 짧게 만날 수록 더 불길하다. 상대의 마음이 갈대같아서 감정기복에 따라서 휙휙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사랑의 점수판과 같다.      



 즉,  알고 지낸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잘 모르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을 보고 바로 바로 점수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본  사이는 그렇지 않다. 제 아무리 잘한 일을 해도 평상시 점수가 워낙에 낮으면 그저 평균에서 0.1점 오르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제 아무리 범죄행동을 해도 자기가 생각하는 점수가 워낙에 높았더라하면 94점에서 무려 10점이 깎여도 84점이기에  좋은 관계로 지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락두절을 오랫동안 본 사이와는 함부러 끊을 수 없다. 진짜 오래 본 사이지만 심각한  데미지를 입는다면 끊길 수 있다. 여기서 데미지는 가해가의 느낌이 아니라 피해자의 느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상대의 이미지 점수

1) 짧게 만난 사이 상황에 따라서 바로 이미지 점수판이 크게 바뀌게 된다

2) 오래 만난 사이 기존 이미지 점수에 워낙 강해서 평균값을 크게 두고 있다.

                    -> 이에 상황에 따라서 이미지 점수가 약간 변동된다.  


 그렇다면,  연락두절은 거의 짧게 만난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즉, 오랫동안 보왔다면 확실한 선으로 이별통보를 했을 것이다.  솔직히 짧게 만난 사이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둘이 당장 보지 않아도 그동안 추억거리도 별로 없을 뿐더러 서로  연결적인 요소가 적으면 더 그렇다. 서로 주고 받은 선물도 없는 것은 물론 서로의 관련되어서 알고 있는 지인이 적다면 더  그렇다. 끊기가 쉽다. 그렇기에 굳이 연락을 주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이는 상대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때로는 그게 너무  미안하기에 하는 예의라고 여기지만 일방적으로 끊겨진 피해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신을 무시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은  고사하고 소식이라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서 너무나 연락이 끊겨서 한동안 너무 궁금해 온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저자가  잠시 잡지기자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 너무나도 어렸고 출판매체가 서서히 시들어는 시점에서 여러가지 고충을 겪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프리랜서 편집을 하는 형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 형은 적잖히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우선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돈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힘써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사실상 이상에 빠져 사는  낭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너무나도 순진한 나를 나무라면서 제대로된 사랑을 이야기 해줬다. 그가 담배 한 개비를 피면서  살면서 너무나도 어의없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녀를 생각하면 나는 그 연락두절이 너무나도  고맙다고 한다. 내용은 이러하다.      


 20대  중반의 남녀가 있었다. 여기서 남자는 그 프리랜서 형이며 여자는 일반 보통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 둘이 서서히 일을 하다가  자연스레 알게 된 사이이며 그렇게 친해지게 된 것이 사랑으로 번졌고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겹게 돈을 모으는 그가  사랑만큼은 가치 있는 투자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올인을 하며 평생을 함께 할 사이임을 심어주기로 한 것이다. 일찍이 결혼을 하여  목돈을 서로 같이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한 둘의 사이는 돈독했다. 그런 중 어느 데이트 하는  날짜를 잡았다. 근데 그녀가 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형은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를 하니 그녀가 지금  다른 사람과 차에 있다고 하며, 곧 갈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알았으니 기다리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은 생각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은 썸씽이 걸린 남자라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했다.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카페에서 물로만 배를 채우고 그녀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형은 되게 고단했다. 그렇게 연락을 야속하게 끊은  그녀가 그저 싫었다. 그렇게 사랑은 미움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그 미움이 지속되자 어쩌면 불쌍한 연민의 정을 들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만나지 않게 될 만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지나보다 어느 덧 서서히 무관심으로 잊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 덧 하나의 좋은 혹은 아쉽기도 한 아려한 추억이 되어진 것이다.      


잊혀진 사람의 대한 심정

 : 사랑 -> 미움 -> 연민 -> 무관심 -> 아려한 추억     


그렇게  그녀는 어디서 잘 사는지 이젠 관심조차없이 바삐 보냈고 그저 한 켠의 좋은 추억의 소재로 생각햇다. 형은 그 후로 다른 이성을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 편집관련된 일을 잘해서 이제는 일거리도 많았고 서서히 입지를 굳혀갔다. 그러다가 불현듯 통화가 왔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전에 데이트 장소에서 나오지 않았던 그녀인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된건지 모르지만 형도 역시 너무나 소식이  궁금한더라 우리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둘은 5년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근데,  무슨일이었을까? 저만치 한 여인이 등장했다. 얼굴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나 발걸음인 온전치 아니했다. 절룩거리는 그 발걸음에 형은  당황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그동안 잘 지냈는지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왜 나오지 못했냐도 얘기할 수 없었다.  끝내 그녀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다리가 다친 얘기만큼은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화도 낼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날 차에서 커다란 사고가 났을 것으로 예상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약간의 신체적인 결합이 생겼기에 미안해서 연락을 끊었을  법하다가 얘기를 한 것이다. 이 부분을 어디서 한탄을 하랴? 형 역시도 신체적인 결합을 지닌 것을 무릎쓰고 사랑할 정도의 사랑이  아님을 시인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의 연락두절이 지금 이렇게나마 일에만 치중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한다. 만일에 그 소식을  들었다면 지금쯤 정서직으로 혼란하여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이렇게 연락을 끊어줘야 더 상대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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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서로가 어떤 상황으로 인한 두절 - 전쟁 속 이산가족     



가장 연락두절이 불기피한 상황이 뭘까? 극단적인 것중에 하나가 요즘, 파견이나 해외출장, 유학 정도일텐데, 설령 여기 나오는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 마음과 같을까? 그들의 얘기를 뉴스로 들어보자. 



사진 - 공동취재단

지난달 26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회차 작별상봉에서 남쪽 최고령인 구상연(98) 할아버지 볼에 북쪽 딸 구송옥씨가 입맞춤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이산가족 상봉, 남북 교류·협력 확대로 이어져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대북 강경 기조를 확인한 한-미 정상회담 등 여러 변수가 있었으나 북쪽도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8·25 합의가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곧 교류·협력 확대 등 남북관계 진전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뒷받침할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삼  실감하는 것은 이산가족의 고령화다. 80대 이상이 절반을 넘으면서 직계가족 사이의 상봉이 갈수록 줄고 있다. 2박3일씩 두 차례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서도 상봉자들의 건강 문제가 신경이 쓰일 정도다. 60년 이상 떨어져 있던 상봉자들이 바로 알아보고  부둥켜안을 정도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시간은 이산가족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1988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 13만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미 숨졌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이산가족  문제의 진전과 남북 교류·협력 확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남쪽이 아무리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하더라도 북쪽이 호응하지  않으면 제동이 걸린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서신 교환, 상봉 정례화, 고향방문, 자유왕래 등은 각각 남북관계의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교류·협력 확대의 핵심은 경협 활성화다.  그중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가 출발점이다. 금강산 관광은 이산가족 상봉과 경협을 더 원활하게 해줄 받침판이 된다. 이산가족면회소가  금강산에 마련된 것도 금강산 관광 사업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이  이번 행사에 동행한 남쪽 기자단의 노트북 컴퓨터를 무리하게 검열한 것은 옥에 티다. 이런 방식은 상호 존중이 요구되는 남북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 북쪽도 곁가지 문제로 남쪽 여론이 나빠지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한민족 전체의 아픔이다. 과거처럼 상봉이 중단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이제 지난 7년여 동안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북 모두 난관이 있더라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른 시일 안에 당국회담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이산의 슬픔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20일 오후 북한의 금강산호텔 이산가족단체면회소에서 남측에서 간 96가족 389명은 북측의  141명과 상봉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1년8개월 만에 이뤄진 이번 상봉은 극적인 8·25 남북합의에 따라 가까스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이번  만남은 2000년 8·15를 시작으로 20회를 맞았다는 점에서 뜻깊다. 그동안 연평균 1.3회꼴로 열려 지금까지 4500여  가족, 2만2700여 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화상상봉까지 포함하고 남북한을 합친 숫자다. 문제는 통일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남측 상봉 신청자(9월 말 기준) 13만409명 중 49%인 6만392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  6만6488명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생존자 중 70세 이상이 81.4%에 이른다. 사망자 숫자가 생존자 숫자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식의 찔끔찔끔 만남으로는 상당수 신청자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항상 미흡한 이산가족 상봉 숫자가 온 국민의 가슴을 타들어 가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북한에 전체 이산가족 명단 교환과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한 수시 만남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봉 희망자 명단을 일괄 교환한 뒤 남북이 대대적으로 상봉 가능자를 찾아 금강산에서 수시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것이다. 이산이라는 비인도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산가족 명단 교환과 수시 만남은 아직 남북 간 의제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가족의 끈을  이어줄 최소한의 인도주의 조치인 서신교환과 생사확인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8월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다고 해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도 “8·25 합의를 소중히 가꾸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자”고 한 바 있다. 이런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발언이 결코 공수표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당국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서로 만나야 믿음이 쌓이고, 신뢰가 쌓여야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우리가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현안  가운데 가장 인도적이며 최고로 엄중한 과제라는 점이다. 북한은 더 이상 이산가족 상봉을 대남 협상카드로 여겨선 안 된다. 남한  당국 역시 상봉 규모와 빈도를 확 늘리기 위해 북한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남북이  정치·군사적 긴장과 별도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이제 이산가족들에겐 시간도, 흘릴 눈물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 자료참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27861.html 



이처럼  전쟁 속에서 피치 못하게 헤어져야만 했던,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입장만 고려하지 실제론 이산가족 상봉은 점차  어렵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서 저렇게 만나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이다.대게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재회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제 아무리 사랑해도, 전쟁이나 커다란 재해로 인해서 사랑을 갈라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너무나 천하태평의 시절이라서 그런지 외부적인 헤어짐 조건이 아닌, 개개인의 인내심 부족이 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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