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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21. 2020

아름답게 가을이 성숙되듯이 나도 성숙해진다.

고통의 날들.

가을이 왔다.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내 코끝을 간질이며 가을이 왔다.

걷는 내 길 앞에도 , 내 볼에도, 가만가만 내 등 뒤에도

힘껏 뛰어오르는 봄이의 콧등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사춘기 아들의 에취! 하는 재채기 소리에

장성한 아들의 한껏 멋 부린 옷에도 가을이 묻어있다.


싱그러운 코스모스는 하늘을 향해 한 껏 피어올랐으며

노랗고 연분홍 잎이 바람에 간들거리는 숨결에는 까르르 소리가 난다.

무당벌레 꽃잎에 다정히 앉았다가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달아나는 그 우스운 광경은 가을의 소리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줄기처럼

가을은 내 마음도 흔든다.

뾰족 뾰족 밤 가시는 더 한껏 부풀어 올랐고

이제는 어른 손 보다 조금 더 커졌다.

짙은 초록으로 새침했던 가시는 점점 연두빛과 갈색으로 다정하고 순해졌으며

천둥 번개 힘껏 한번 더 내리친 날에 비로소

빈틈없이 굵어진다.

벌어진  사이로 굵 알밤이 반짝인다.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은

추수의 때를 기다리며 번호표 받아 줄을 선 모양새다.

알곡이 튼튼해졌지만 그 무게가 무거워

자꾸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처량하다.

하지만 곧 따뜻한 밥이 되어 나의 생명이 되며

다음 해의 땅을 일굴

피가 되고 에너지가 될 것이다.




고개 숙인 벼는

가장의 무게를 닮았다.


이 세상 모든 을들의 무게를 닮았다.

한없이 을이 돼야 하, 무례한 상사 앞에서, 무거운 택배의 무게에서, 주민의 무참한 욕설 앞에서 고개 숙인 머리가 센 경비원의 어깨에서 , 학부모의 다짜고짜 쏟아진 욕설앞에 선 젊은 교사의 뒷모습에 . 던져진 커피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 버린 알바생의 고통속에서 알곡의 무게가 가늠된다.


아이들을 닮았다.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 엄마 앞에서, 작고 숨막히는 가방 안에서, 무서운 아버지앞에서,

형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이려는 아이의 작은 어깨에서 그 무게는 어른들이 짊어준 어린 희생양이다.


가을은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계절이지만

그 계절과 상관없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날들이다.


아름다운 면들만 보려 하지 말고 아름답지 않은 고통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아름답게 가을이 성숙하듯이 나도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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