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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Oct 07. 2020

가을은 아름답지만 나의 일상은 아름답지만 않다.

일중독에 대한 생각

"모두 잘 지내시나요?"

카톡에서의 한마디.

"벌써 가을이 왔어요." 누군가 안부를 가을로 전한다.

나는 무언의 이야기로 자연에 말을 건다.

"빛은 따스하고 바람은 정든 님의 손길처럼 부드럽네요. 황금빛 들녘에는 빼곡한 알맹이가 터질 듯 추수를 기다리고 하늘은 푸른 그대의 눈동자처럼 맑아요. 그 안에 검은 새가 뛰어놀고 있으며 잠잠한 들녘에는 떠돌이 개들이 뛰어다니는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네요."

가을은 우리를 모두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다.


아름다움은 상상의 끝으로 날아가버리고 나는 현실 속에 갇혀버렸다. 산책길에 만난 자연은 그 은혜로 충만했지만 나의 맑고 고운 호숫물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신 차리라고.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고.


남편과 싸웠다. 화가 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불과 몇 시간까지만 해도 상냥한 목소리로

"여보, 오늘 많이 힘들었지? 힘든 거 다 이해해."라는 나의 목소리를 분명 들었는데.

이제는 " 왜 이렇게 늦어.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하고 가정은 중요하지 않아? 일 밖에 모르고."

짜증 냈다. 아홉 시가 넘고 열 시, 열두 시를 가리키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건설회사에서 하청을 맡아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이른 아침에 나가야 한다. 어느 날을 얼굴도 못 보는 날이 많다. 일찍 나가고 늦게 다. 주말에도 쉬는 날이 없다. 쉬는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명절에만 쉬는 것 같다. 대화다운 대화는 전화 상으로만 나눈다. 일찍 오지 않는 날이 항상 많다.


 왜 그렇게 일에 매달리는지 알 수가 없다. 거의 일 중독 수준이다. 과잉 적응 증후군 일명 워커홀릭.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는 상태. 사회생활 적응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려 불안과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더욱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물었다."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해? 쉬는 날도 없이?

"당신 새 차 사주려고, 그리고 우리 잘 살려고 하는 거지." "새 차 없어도 돼. 그리고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 밥 안 굶고 생활할 수만 있으면 되잖아."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나 때문에 쉬면 안 되잖아. 내가 일을 많이 해야 해. 여러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잖아."

맞는 말이지만 일이 남편의 존재를 대변하는것 같아 참 슬프게 느껴진다.

남편은 일이 없으면 너무 불안해한다. 일은 바로 남편의 가치이자 삶의 목적인 것이다. 


어쩌면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에 앉아 있는 나도 일중독이 아닐까? 집에서조차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내 모습이 바로 남편의 모습이다. 나도 몰랐다. 나는 아닌 것처럼 생각했지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하다.
글을 쓰는 의미를 나를 위한 것이라 했지만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유용할 것 같은 글을 쓰고 있다.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일이 사람보다, 가장 중요한 나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흙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 또한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수많은 것들을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듯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많은 것들은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을 수 있다. 이제는 내려놓고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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