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Nov 03. 2020

더부살이 20년

가끔 만나는 엄마가 좋다.

                                                       

오랜만에 엄마와 시장 나들이를 갔다.

엄마는 시장을 좋아한다. 사야 할 것이 딱히 없어도 구경하러 가신다. 함께 갈 사람이 나뿐 이어서 가끔 함께 가자고 한다. 말끝에는 “너 바쁜데. 엄마 때문에” “아니야 엄마 덕분에 바람도 쐬고 이야기도 하고 나도 너무 좋아” 엄마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엄마와 나는 친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미워한 적이 많았다.     


나는 친정에서 살았다. 오랫동안.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혼자 있는 내 걱정에 남편은 거의 매일 친정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거의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와서 살면 어떻겠냐는 아빠의 제안에 우리는 흔쾌히 응수하였다.

그렇게 친정에서 나온 지 3개월 만에 다시 들어갔다. 언니와 동생이 모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들어가 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이미 임신을 한 상태였고 출산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첫아이를 낳고 둘째, 셋째까지 낳고 20년을 넘게 살리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함께 살면 좋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렸지만 사는 내내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나시면 감정조절이 어려웠고 나와 엄마를 함부로 대하셨다. 엄마와 나에게 화풀이하는 아버지는 항상 위태로웠으며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아버지의 감정의 그릇으로 그 감정을 담은 우리는 어찌할 줄 몰랐고 엄마는 나에게 예민하게 대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했었다.     


엄마의 살림의 방식도 늘 맞지 않았다. 우리는 좁은 부엌에만 들어가면 싸울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꼭 부딪혔다. 그 원인은 아마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감정의 쓰레기들이 있고 그것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 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사건건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엄마는 나에게 화를 냈다. 어느 날은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운 적도 있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들이 가슴속에서 터질 것 같은데 그냥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는 정말 내 마음을 몰라주는 5살 먹은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엄마가 너무 미운 어린아이.


하루는 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일하러 가자고 하는 것을 하기 싫은 표정을 지었더니 화를 내셨고 욕을 하셨다. 안 되겠다 싶어 가겠다고 했더니 냉정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혼자 가버리셨다. 나는 차가 떠난  도로 한가운데서 울었고 또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괜찮아?” “엄마 울지 마”

나는 아이들보다 더 어린아이였다. 아이들을 안고 한동안 그렇게 울었다. 아빠가 웠고 또 미웠다.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친정에 사는 동안 좋은 일,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다. 또한 부모님이란 큰 나무에 많이 기대었으며 의존했었다. 남편이 일 때문에 늦는 날이 많았는데 엄마와 아빠 덕에 아이들과 외롭지 않았고 많은 힘이 되어 주셨으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 가운데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부모님도 자신의 과거 부모님과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 때문에 쉽지 않으셨다. 나를 성인으로,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내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의 딸로만 대했던 것. 그건 할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아버지가 결혼했지만 존중하지도 믿음도 없었던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성장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나도 성장할 수 없었고 어른이기보다는 부모님의 칭찬받기 위한 어린아이였던 것이었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한다. 독립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기회를 잃고 만다. 어른들도 아이들이 독립을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분가한 지 3년이 되었다. 나는 비로소 독립이 되었고 독립이 되니 부모님의 아픔도 이해하게 되었으며 진짜 어른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나의 그림자를 물려주지 말고 어른으로 대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엄마랑 손을 꼭 잡고 시장에서 구경도 하고 생선도 사고 엄마 속옷도 샀다. 가끔 만나는 엄마가 좋다. 함께 살 때에는 이렇게 엄마가 좋은지 몰랐다. 엄마도 더 이상 딸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고 마음대로 사실 수 있다. 여전히 아빠와 싸우시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엄마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엄마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도 성인이니깐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렇다. 나는 화를 내는 인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