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모두 한 편의 잔혹동화가 아닐까?
누구나에게 아픔과 고통이 있고 그 원인이 가정일 수도 있고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나쁜 인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정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인 부모, 그 부모로 인해 처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 때문 일 수도 있다.
고문영은 아버지가 엄마를 끔직히 살인하는 장면을 본 후 인격장애를 갖는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규범이나 법 따위는 다 무시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나 고통 등을 아랑곳 하지 않으며 자신의 잔혹한 인생을 그림책이라는 공간에 울부짖고 소리치며 화려한 옷이라는 허울속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다.
강태는 자신의 잔혹한 인생을 마음속에 묻고 아닌척하며 감정 없이 산다. 항상 무표정한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상태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무의식 속 이미지에 고통이 들어 있다. 무의식이 표출되는 꿈속에서 나온다. 문영이 그린 잔혹한 그림책에 투사하고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림으로 승화한다.
"과거 속에 계속 갇혀있으면 안 돼. 나처럼 돼. 못 열어. 문이 안보이거든"
우리가 얼마나 과거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과거라는 것은 트라우마로, 또는 상처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야 한다. 상처와 마주함으로 나비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치유가 된 상태. 동생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매섭게 몰아쳐서 직면시킨 강태때문이다.
무섭고 힘들더라도 마주하자.
세 엄마가 나온다. 문영의 엄마. 자신이 불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도 빼앗으려는 엄마. 또한 자식에게 절대적으로 굴림하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은 잔혹한 엄마. 자신의 욕구 실현을 위해 비뚤어진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엄마들과 다를 바 없다.
또 한 명의 강태 엄마. 죽기까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엄마,
주리 엄마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살뜰히 매끼 밥을 챙기는 따뜻한 엄마. 하지만 힘든 시절을 보내 역경에서도 의연하고 강하다. 자신이 고생했기에 아픔을 더 많이 이해한다.
문영이는 엄마 때문에 아픔과 큰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비록 친구 엄마이지만 또 다른 엄마에게 치유를 받는다. 또 다른 엄마가 문을 열어준 것이다. 엄마라는 허상과 이상적인 이미지에 우리는 너무 메이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다. 꼭 우리 엄마 아니어도 되고 신이어도 되며 다른 대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받은 상처는 평생을 지배하므로 너무나 중요한 자리인 건 틀림없다.
자녀는 엄마의 분신이 될 수 없고 복제품이 아니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엄마의 그림자에 갇혀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강태는 엄마에게 갇힌 어린 문영에게 엄마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모든 것을 끊어내게 한다. 엄마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엄마의 죽음 이후에 성장하지 않은 어린 문영의 아픔을 그대로 받아준다. 비로소 문영이 자란다.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강태도 과거의 엄마라는 그림자에서 해방된다. 엄마를 죽인 원수의 딸인 문영을 받아들인 건 성숙된 사랑으로 무의식의 그림자와 완전히 분리된 것. 비로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의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됐다. 바로 평생 엄마에게 의존이라는 목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인지적 오류라는 말이 있다.
(인지적 오류 중 선택적 추상화: 다른 중요한 요소들은 무시한 채 사소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근거하여 전체를 이해)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왕자를 만나야 한다. 아니 나와 또 다른 연약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해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왕자님을 만나다는 것은 부자와 잘생긴 사람이 아니라 나의 상처를 받아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내 그림자를 해방시켜줄 유일한 사람. 비록 가진 것 별로 없고 배가 볼록하며 완전 현실에 흔한 아저씨 비주얼이지만.(이 사실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세월을 돌아서 왔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한다. 아니 알아야 한다. 내가 힘든 건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인 것을.
나 자신이 어쩌면 사이코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만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래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