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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17. 2020

산이라는 고통과 집중의 선물

선물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하여 기쁨이 주어진다.

'야호'하고 싶지만 동네 산이라 참았다.

아니. 야호라고 마스크를 내리고 외치는 순간 나의 몸을 누군가 밀지도 모르는 상황 파악이 먼저일 것이다.

다음에 코로나가 사라지면 지리산 천왕봉이라든가, 설악산의 대청봉 꼭대기에서 하기로 미뤄야겠다.

거친 숨만 훅하고 토해낸 후 다시 하행하였다.

우리는 산봉우리를 5개나 넘었다.

한 고개 넘어 호랑이가 살까?

한 고개 넘어 떡 파는 할머니를 만날까?

산고개는 옛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지나야 하는 생존의 길이였다.

낮에는 우거진 숲에 호랑이를 만날까봐, 밤에는 수많은 귀신이 나타날까 불안과 공포의 장소였다. 누구의 아들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말이 수없이 나돌았던 시절이 정말 있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하지만 가끔 어둑해질 때나 이른 아침 안개가 낀 날에는 호랑이가 아니라 멧돼지가 나올까 무섭다. 실제로 앞집 시후 아빠는 새벽산을 많이 다니는데 멧돼지와 여러 번 조우하셨고, 정말로 나무 위로 피하였던 적도, 개를 데리고 가시는 데 개가 쫒아버리기도 하는 등 멧돼지로 혼비백산하였다고 들었다.

그 뒤로 나도 가끔 불안하다. 정말로 멧돼지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까지 답은 없다.


코로나로 갑갑한 마음에 산으로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는 것 같다.하지만 이제는 산 중간쯤에 있는 막걸리 가게도 없어졌고 산을 오르내리며 인사하던 일들도 사라졌다. 사람들을 만날라치면 더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진다. 또한 예전에는 알록달록 각종 등산 장비를 장착하고 뽐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 마스크에 가려

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옷에 그다지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


코로나로 얼굴이 사라졌다. 거친 숨으로 마스크 안쪽에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혀도 벗을 수가 없다.

마스크가 입에 붙어 있는 것 마냥 굴었다.

상담을 해도 내담자가 코앞에 있지만 눈으로만 얘기해야 한다.

표정이 당최 보이지 않으니 그 마음이 알 수가 없을 때도 있지만 다행인 건

얼굴을 볼 수 있었을 때부터 상담을 이어져 왔기에 대충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쓴 새로운 내담자가 방문한다면 얼굴을 상상하며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더 많이 집중하여 말과 행동을 관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놀라운 감각이 있으니

얼굴의 표정이 없어도 목소리의 긴장감과  걸음걸이. 손의 작은 떨림. 긴장된 어깨 등으로 유추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얼마 전에 만난 청소년은 말하진 않았지만 열 손가락 모두 손을 뜯어 피부가 다 벗겨져 있었다, 한 내담자의 발이 자꾸 떠는 모습에서 또한 불안의 목소리에서 가늠할 수 있다. 상담에서 상담내용도 중요하지만 행동 하나하나 관찰되는 것이 더 중요한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오늘의 산은 특별한 동행이었다.

함께 동행한 언니는 아픔을 지나고 있고

치유의 하나로 산을 선택하였다. 그 길을 함께 하고자 동행하였고 힘든 길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음료도 챙겨주고, 콜라겐에 커피까지 내가 더 과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외롭고 외롭다는 말 한마디에 나의 외로움이 소환되어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들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힘들다는 건 우리 모두의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힘든 사람을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다 맞지는 않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힘든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상담실에서 나는 완전히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담자와 나똑같이 연약한 사람이다. 내담자를 통하여 내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건강하다는 건 오류이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모두 아프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고, 아프기 때문에 건강해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언니도 몸을 단련하는 것처럼 마음을 단련하고 있다.

하지만 산은 말이 없다. 홀로 가야 하는 인생과 같다.

어려운 시기에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이 길이 맞는지 알 수가 없지만 산을 오르내리면 정말 알수있을까? 몸이 단련되듯이 마음의 근육이 생길까?


힘든 삶을 움켜잡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면서 수많은 산들을 맞아야 하는데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아야 하며

내려오는 산길은 미끄러져 병원행이 되지 않으려면 발에 온 힘을 주고 잘 내딛어야 한다.

언니는 그렇게 높은 산에서는 숨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내려오는 산에서는 두 발에 힘을 줘야 하는 집중력을 통하여 인생을 산을 통하여 다시 배우고 있을지 모른다. 고통의 과정을 집중하여 오롯이 내 발로 산을 오르내리듯이.


나도 언니를 통하여 배웠다.

인생에서 감사함이 얼마나 중요하고,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또한 인생의 후회가 없이는 성장이 안되

더 많이 아파한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외로움이 가끔 밀려와 힘들었지만 아픔은 당연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언니와 동행은

함께는 했지만 높은 산을 내 발로 고통과 집중을 통하여 내 스스로 나아가야하는길임을 알게 해 준 시간이였다.

인생은 아마 현재가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 고통을 집중하면 마음의 근육이 생겨 아무리 높은 산이 내게 다시 온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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