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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02. 2020

쫄보 오리

내가 쫄보인 이유

오늘이라는 일상의 날에는  

대지보다 더 광활하게 펼쳐진 푸르고 차디찬 하늘이 수평선 너머까지

쫙 펼쳐져 있다.

거기에 더해진 구름은 꿀 타래과 같은 희뿌연 한 설탕 가루가 반짝이며,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이 하늘을 지배했던 고대 시조새의 순백의 영혼 같다.

나풀거리며 무대 위를 가볍게 춤추는 댄서 같기도 하다.

 때론 독무대로, 때론 손을 맞잡고.


구름의 기운이 내 몸을 살랑거리게 만들어 내 몸도 가벼워진다.

대지와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코로나와 찬바람용 마스크며, 목도리를 두르고 두툼한 니트에 기모 청바지를 입고

눈이 오지 않는 탓에 부츠까지는 무리여서 사계절용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걷는다.


산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있는 저수지에서

오리들을 만났다.

오리들은 완전 쫄보다.

내가 가만가만 가도 화들짝 놀래서 도망간다.

그 꼴이 너무 우스워 죽겠다.

꼭 내 뒷담 화했던  누구 같기도 했고. 소심하고 얄미웠던 내 어릴 쩍 상사 앞에 선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쫄보이다.

코로나가 무섭고, 사람이 무섭고, 아픈 게 무섭다.

겁이 많고 산책 가다 개가 짖으면 의연한 척 하지만

눈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리만큼은 아닌 것 같다.


오리들 천적 매우 많다.

며칠 전에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저수지를 향해 군침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는 청둥오리도 잡아먹었는데. 맛이 닭고기 같아"며 이제는  먹어 아쉬워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고양이들과 개들, 족제비등 등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입맛 다시는 동물들이 사방에 널렸다.

봄이도 저수지로 산책을 가면 오리들 골리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로 사납게 마구 짖어댄다.


그러니 쫄보가 될 수 밖에는 없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짠하다.

하지만 나를 뒷담 한 사람과 어릴 쩍 상사는 아직은 용서할 수가 없다.

역시 나도 쫄보임에 틀림없다.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쫄보 오리가 가엾은 생각과

코로나로 마음이 힘든 분들이 겹쳐진다.

불안이 높은 분들은 더 불안해지고,

우울감이 높은 분들은 더 우울해질 것이다.


그럴 때는 마스크 단단히 하고

햇빛을 보며 가볍게 걷는 것이 도움이 된다.

푸른 하늘을 보고 크게 숨을 토해보고, 깊게 들이마셔본다.


누구나 다 쫄보이다.

누구나 다 무서움을 알고 느낀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심지여 아기들도,

하지만 아른들이 조금 더 낫다.

아이들도 연약한 마음 붙들고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다.

나만 제일 힘들 것 같지만 오리들이 수많은 천적들 가운데서 처절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반 고흐가 울고 갈 아름다운 날을 그린 오늘.

이제까지 사느라 애쓴 나를 꼭 안아주자.

쫄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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