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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15. 2020

치킨 닭다리 열외

코로나의 일상의 풍경

오늘도 남편이 늦는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내 마음이 일순간 복잡해졌다.

왜 이렇게 늦는지 알 수가 없다.

삐삐 비.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잠깐.

남편이다. 하루의 힘듬과 술기운에 붉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하얀 비닐봉지가 들려져 있다.

코로나로 9시면 문이 닫는 상황이 아닌가?

밤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 나는 상황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하얀 봉투의 정체는

다 식어버린 치킨이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술 먹기 전에 샀고 술자리 내내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남편은 술을 먹다가 안주를 잘 싸오곤 한다.

얼마 전에는 나의 입 속에 갑오징어 다리 하나가 물려있었고

지난주에는 비릿한 육회가 식탁에 놓여 있었다.


"요즘 코로나가 무서운데 일찍 오면 안 돼?""그러게"

"근데 식당이 다 9시면 문을 닫지 않아?"

"안 닫아" "헐. 이러다 전 국민이 다 걸리겠다."

"그런데 어쩌냐 일 때문에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고"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며 사람을 안 만나면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오라면 와야 하고 가라면 가야 한다고 한다.


술도 먹고 대리운전도 하고 치킨도 사고,

남편은 경제활동을 위해 사람을 만나지만

사람을 만나므로 다른 사람들이 또 살아간다.

술집도, 대리기사도, 음식점도,

코로나로 걱정이지만 생계가 우선이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차가워진 치킨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2주일째 비대면 수업으로 게임을 하는 건지 수업을 듣고 있는 건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는 사춘기 아들은

오늘은 불금이라며 잠도 안 자고 웹툰을 보고 있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치킨 먹으라 해도 미동도 없다.

그래도 건성으로 인사는 한다.


지 방에서 하루 종일 수업과 과제를 하다가 아빠의 호출에

대학생 큰 아들이 식탁에 앉았다. 부스스한 머리와 눈이 퀭하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고 친구들 만나기도 쉽지 않고

낭만적인 대학생활과 꽃다운 청춘 라이프는 애당초 물 건너 간지 오래되었고

졸리면 자라는 듯한 교수의 너무나 재미없는 강의와 실습을 못해서 수업을 안 한다는 교수는 과제만 엄청 내준다고 한바탕 푸념을 식탁 가득 내려놓는다.

착한 큰아들은 아빠 생각해서 차가운 닭을 한 입 베어 물더니  끝내야  과제 때문에 내일 먹겠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이런 풍경이 어느순간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가 일상을 많이 바꿔 놓긴 한 것 같다.

부쩍 일이 줄어든 내 마음도 답답함이 밀려왔다.

어버린 치킨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치킨 다리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온다.

남편의 늦은 저녁 닭다리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삶의 빈 잔을 채우라며 술과 먹거리를 원하는 것이였다.

남편을 위한 닭다리는 열외이다.

이미지출처:bhc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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