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증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멈춰있는 느낌으로 긴장이 풀렸다. 또 한 고개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기부터 다르다는 법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딱딱하고 조금은 사무적인 등기 사무실은 따뜻했다. 그 안에는 몇몇 직원들이 모여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섞여 동료들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약간 예민해 보이는 사람이 담당이다. 지난주에 만나고 또 만났는데 이번에는 조금 부드럽게 얘기를 해주었다.
여러 가지 서류들. 설립 등기 신청서와 정관, 공증받은 총회 의사록과 설립 신고 확인증, 임원취임 승낙서, 임원 전부 인감 증명서, 주민등록 등본이나 초본, 출자금 총액 납입서, 등록면허세 영수증 필 확인서이다. 이 서류들을 한 대 묶어서 제출하였다. 하지만 설립 등기 신청서가 잘못 작성되었다. 직원은 다녀오면서 법원 바로 앞에 있는 신한은행에 등기료 20.000원을 내고 오라고 했다. 급히 근처 시청에 가서 보완한 서류를 들고 법원 앞에 있는 신한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아무리 뒤져봐도 안 보였다. 네비를 켰더니 법원을 가리켰다. 그제야 신한 은행이 법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원 안에는 등기 민원실과 반대 길로 바닥에는 형형색색 갈림길 표시가 되어 있는 길들을 돌아 돌아 들어가면 우체국과 좀 더 지나가면 신한 은행이 보였다. 은행을 마주하고 법원 민원실이 있었다. 코로나로 민원실 옆 후문을 폐쇄하는 바람에 더 복잡해진 것 같았다. 등잔 밑이 어두웠고 등에 업은 아기 삼 년 동안 찾은 격이었다.
어쨌든 질서 정연하고 다소 미로 같은 법원을 돌아 돌아 등기소에서 등기가 신청이 되었고 카드가 발급되었다. 민원실에서 등기본 등본을 신청할 수 있고 출입구에 있는 무인발급기에서도 출력이 가능하다. 이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 법원에 들어왔을 때 뭣도 모르고 법원 등기 서류 출력하는 곳이 신청하는 곳인 줄 알고 한참을 그 기계와 씨름을 하였다. 카드를 찍으라는 곳에 내 현금카드를 계속 찍었다. 기계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내 뒤편에 서 있던 다른 민원인이 속으로 웃었을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스쳤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생각할수록 언젠가 짝사랑했던 동네 오빠 앞에 지날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며칠 후 연애는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현금카드가 아닌 법원 카드로 멋지게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 시각은 5시 30분, 마지막 관문이 30여분밖에는 남지 않았다. 마지막 인 곳은 바로 세무서.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하면 협동조합이 되는 것이다. "회현 너나들이 마을학교 협동조합" 오늘 하루도 이 동네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을 멋지게 통과할 것이고 내 손에는 사업자등록이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미 마음은 행복했다. 지나간 피로가 다 씻어 난 것 같았다. 서둘러 세무서를 들어갔고 미리 준비한 서류들. 설립신고서와 사업자등록 신청서와 정관 사본, 법원 등기본 등본, 임대차 계약서, 출자자 명세서를 들고 당당히 서류를 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서류에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하지만 간단한 것이니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에 일단 가벼운 마음이었다.
해가 졌고 차에 시동을 켜니 6시 정각, 말쑥하게 차려입은 세무서 직원들이 삼삼오오 나오기 시작했다.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약속 장소로,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것이다. 직장인들은 하루 종일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 까? 생각하니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 나와는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잘 되리라는 희망과 고단한 나의 마음 사이와 세무서 직원들의 마음은 같은 순 없지만 완전히 다를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직원들도 그 직함을 내려놓으면 똑같은 민원인이 될 것이며 그들도 똑같이 하루를 희망과 고단함 사이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 하루 종일 민원인으로 참 많이 애썼다. 다음에는 진짜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협동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복병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