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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식사당번

가파도에는 해녀가 산다_120화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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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선 한 달에 한 번, 경로당에서 노인회원들에게 점심을 해드린다.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이 한 조가 되어 식사당번을 맡는데, 이번엔 나와 옥자 삼촌, 영자 씨로 이루어진 1조였다. ‘삼촌’이란 호칭은 나보다 연장자, ‘씨’는 나보다 어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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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회 명단을 보면 여성 40명, 남성 20명이다. 대부분 해녀이거나 해녀의 남편들이다. 터미널에서 배표를 끊는 인원이 160명인데, 노인이 60명이다. 40퍼센트다. 초고령사회를 실감할 수 있는 숫자다. 지방이거나 섬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제는 회원 30여 명이 식사에 참석했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삼촌들의 옷은 며칠 전에 비해 길어지고 두꺼워졌다. 얼굴엔 오소소 한기가 달린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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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철따라 바뀐다. 새해가 밝으면 떡국, 봄엔 멸치국수, 여름엔 냉멸치국수, 가을과 겨울엔 전복죽이다. 찬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은 전복죽이 어른들에겐 보양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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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씨는 전복죽에만 신경을 쓴다. 효율적인 일처리를 항상 생각하는데다 손놀림이 빠르다. 옥자 삼촌은 당일 참석자를 헤아려 분량을 정하고, 언제쯤 완성된 식사가 상 위에 놓여야 하는지를 살피는 등 전체적인 지휘를 맡는다. 나는? 물론 두 사람의 보조다. 자잘하게 몸 쓰는 일, 홀에 앉은 삼촌들의 요구를 주방에 전달하는 일 등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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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죽이 다 되었다. 얄팍얄팍 썬 전복에 내장을 몽땅 다져 넣어 짙은 녹색을 띤다. 육지의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세련된 색깔은 아니지만 해녀들의 굵은 손마디가 빚어낸 투박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는 한 끼다. 쌀알은 푸욱 잘 익었고, 전복은 꼬들꼬들하다. 김장김치가 찬의 전부이지만 정말 맛있어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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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마치니 식사당번의 하루가 끝났다. 휴~. 앞치마를 벗으며 한숨을 쉬었다. 두 선참자에게 일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필요하다 싶으면 달려와 얼른 얼른 해치우고, 몸을 재게 놀려 어른들 필요한 곳으로 달려간다고.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상을 물리자 삼촌들은 노래방기기를 틀어놓고 트롯을 불렀다. 내게도 자꾸 권했지만 다음 달 마지막 자리에서 열창을 하려고 사양했다. 4월의 첫 당번 날 조용필의 ‘큐’를 불렀는데, 이번엔 어떤 노래를.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연습이라도 해볼까나?

가파도의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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