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은 푸르고, 옷깃에 머무는 바람은 선선하다. 가을은 이렇듯 선선히 우리 곁으로 찾아와주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토록 멋진 계절에 나를 낳아준 엄마를 그린다.
2
어제는 베프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내일 아침 먹으러 오라게.” 우린 전화번호를 주고받을 때 서로 귀가 빠진 날을 확인했다. 나는 탁상달력에 적고, 그는 머릿속에 적었다. 그리하여 가파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녀 삼촌’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았다.
3
베프는 아이들이 성화를 부리면 손사래를 친단다. “생일상이 다 머꼬, 그만 두라. 나 어릴 땐이 부모한티 욕 안 먹으면 그날이 생일이엇저. 나 챙기지 말고 너이들이나 잘 살라.” 그런 삼촌이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렸다. 깜깜한 새벽, 잠이라도 일찍 깨는 날이면 오늘의 차림을 염두에 두어 냉장고 속 재료를 곰곰 떠올리고, 반찬 가짓수를 챙겨 보고, 손에 익은 조리법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끝엔 이런 물음이 덧붙었으려나. ‘가인(그애는) 무얼 잘도 먹더라?’
4
참돔미역국이다. 우영팟에서 뽑아 올린 채소를 어부와 맞바꾼 참돔, 모슬포 바당에서 끊어 올린 미역, 오일장에서 뽑아온 참기름으로 돌롱돌롱(보글보글) 끓여낸 미역국이다. 무늬오징어숙회와 벵에돔구이, 고사리볶음과 호박가지볶음, 김장김치가 찬이다. “삼촌, 잘 먹을게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5
오늘 따라 소반 곁으로 햇살이 밝고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겸상을 하고 앉아 있으니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린 이렇게 다정했던 듯도 싶다. 긴 세월의 강을 건너온 두 사람이 자매처럼 마주 앉아 미역국을 후루룩 떠먹는 아침. 오래도록 기억될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