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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만국기가 펄럭인다. 북풍은 알맞은 기세로 남쪽을 향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쨍하다. 운동회를 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새소리, 풀벌레소리만 간간이 들리던 교정은 사람 소리로 왁자하다. 금요일의 운동회는 왠지 더 여유롭다. 운동장 전면에 의자가 놓이고, 초록 잔디 위에선 학생들의 시범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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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딱 4명이다. 올해 2명이 졸업하고, 1명이 전학예정이라 내년엔 1명만 남는다. 그래도 수업은 진행된단다. 교문엔 ‘대정초등학교 가파분교’라는 문패를 달고서. 오늘의 꽃은 아이들이다. 연습량이 드러나는 갖가지 시범으로 삼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이구, 요망진(예쁜) 것덜!” 나이 지긋한 삼촌들은 무룩무룩(쑥쑥) 크는 아이들을 두 눈에 담아 두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3
오늘만큼은 선주민·외지인 가리지 않고 다 모였다. 젊은 축에 속하는 50·60대가 주류다. 간간이 반짝이는 40대가 섞였다. 해녀 중에서는 뱃물질을 하는 상군해녀들이 주로 눈에 띈다. 심한 몸놀림은 아니어도 명색이 ‘운동회’니까. 어린이와 어른들이 청군·홍군으로 나뉘어 게임을 했다. 럭비공을 긴 주걱으로 밀어 반환점을 도는 게임에서 내가 홍군의 첫 주자였는데, 너무 속력을 내는 바람에 반환점에서 그만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차차, 관성의 법칙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픈 것도 잊고 어찌어찌 돌아왔으나 결과는 청군의 승리. 과욕은 화를 부를지니.
4
두어 시간 동안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웃음을 담장 밖으로 던진 하루였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묵은 체증도 쑥 내려갔다. 무리 지어 돌아가는 발걸음엔 기쁨을 함께 나눈 도타움이 묻어 있었다. 아, 언제 다시 이추룩(이처럼)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서 달려볼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