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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미용실과 시어머니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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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미용실 장은 춘희 삼촌의 며느리다. 모슬포에 머리를 자르러 나가면 왕미용실에 들른다. 둘 사이를 알고 나서는 여기에만 간다. 배 하나를 놓치고 다음 배를 타야 할 정도로 단골이 많다. 커트는 마음에 들고, 마무리로 ‘후까시’를 살짝 넣어주니 하루나 이틀은 정장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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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은 아이를 낳고 쉰 적이 있는데, 그때 가파도에서 일 년을 살았다. 일생을 통틀어 그때 딱 한 번 쉬었다. 해녀인 시어머니와 한 동네에서 오순도순 지내며 추억을 쌓았다. 우영팟에서 같이 송키(푸성귀)를 심고, 어머니가 숨비어 온 해산물을 같이 손질하고, 첫 아이의 재롱을 보는 귀한 시간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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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실장은 시어머니가 참 좋다.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에다, 몸피는 자그마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너르고, 누구든 모난 점을 동글동글하게 빚어낼 수 있는 특이한 솜씨를 가졌기에. 바닷것을 잡으면 제일 좋은 것은 언제든 며느리가 첫째였다. 내 아들하고 사니 얼마나 이뻐, 내 손자를 낳아주었으니 얼마나 이뻐,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대접 받아야 하는 여자이니 얼마나 이뻐, 하며 그릇을 디밀었다. 지금은 따로 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며느리를 대하는 품새는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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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삼촌은 가파도에 막 도착한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해녀다. 며느리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면모가 더 잘 드러난다. 여든둘이다. 말 속에, 눈 속에 깊은 바다가 일렁일 나이다. 오랜 물질로 귀를 다쳐 말소리가 큰 삼촌들에 비해 목소리가 작고 낮다. 둘이 이야기를 나눈 첫날, 집으로 데려가 햇빛 가리개 모자를 빌려주었다. 하루에 한 번은 올레에서 마주친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내 눈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아준다. 오늘도 삼촌과 나 사이엔 따스운 정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바당에 들기 전의 춘희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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