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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구름 뒤로 숨어버린 흐린 날씨다. 응달에 앉아 있노라면 오스스 소름마저 돋는다. 오늘은 해녀들이 나흘 동안 바당에서 숨비어 온 뿔소라를 수협에 출하하는 날이다. 장날 구경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나도 그들 틈에 끼었다. 두월 삼촌이 다가와 호박엿을 건넨다. "고맙습니다."(꾸벅) 오전 9시 반, 수협 직원들을 실은 트럭 두 대가 어촌계 앞마당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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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소라는 채취 즉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어촌계 앞 바당에 담가놓는다. 출하 전까지 싱싱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해녀들은 일찍부터 나와 기중기로 들어 올린 바구니 속을 점검한다. 타지로 나간 아이들에게 보낼 작은 소라를 골라내면서 상한 물건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확인이 끝난 바구니는 트럭 쪽으로 끌고 가는데, 남편이 있는 쪽은 운반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녀에게는 겹쳐진 바구니 무게가 만만찮다. 나라도 거들 타임이지만 삼촌들은 옷이 더러워진다며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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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직원은 해녀 삼촌이 들이민 바구니를 저울 위에 얹은 다음 코를 바짝 들이대고 냄새를 맡는다. 상한 소라를 골라내거나 씨알이 작은 것은 주인에게 도로 안긴다. 7센티가 안 되는 것은 채취금지다. 직원의 평가를 두고 그와 해녀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오간다. 가끔은 언성이 높아진다. “거 저울눈금 좀 잘 보라게. 글고 이 소라는 무에 크기가 작다는 거랜?”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다.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낯을 붉혀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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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물질 해녀, 즉 하군 해녀가 먼저 박스를 저울 앞으로 끌고 온다. 박스는 평균 5개다. 나의 베프인 순신 삼촌은 해녀 중 두 번째로 연장자인지라 3개에 불과하다. 나이와 수확량은 반비례한다는 정확한 이치를 삼촌은 오래전에 받아들였다. 다음은 뱃물질 해녀 순서다. 역시 이들 상군의 소라 씨알이 굵고 크다. 박스 개수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평균 10개다. 오늘의 장원은 해녀회장이다. 바구니 15개다. 15개*35킬로=525킬로. 나흘 일한 것치고는 상당한 양이다. 하루에 130킬로가 넘는 물건을 걷어 올린 거다. 나는 속으로 ‘해녀회장, 1등!’ 하고 추어올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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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일한 만큼의 숫자가 적힌 메모지를 어촌계장에게서 받아 든 해녀들은 서로 어획량을 확인한다.
“성님은 저번보다 훨씬 많이 잡았수다게.”
“이번엔 바당이 잔잔해 좀 했주게. 그래도 점점 소라가 어서져(없어져).”
네가 많네, 내가 많네 설왕설래하던 해녀들은 전동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들의 거친 숨소리와 맞바꾼 해산물이 누구네 식탁에 오르든 싱싱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트럭은 떠나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공터는 이른 겨울의 한기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