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블루’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든다. 낚시고수, 낚시초보, 낚시엔 관심조차 안 갖는 부류 등. 그들을 통해 참 많은 간접경험을 하였다. 독립가옥이 아니라 낚시 전문 펜션에 숙소를 잡은 낙수 중 하나다. 그들 가운데서 인상 깊은 커플 셋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철철이 형제. 이름 끝에 둘 다 ‘철’ 자가 달려 붙은 별칭이다. 동생은 키가 크고 장대한 몸집인 데 반해 형은 땅딸막하나 뚝심 있게 생겼다. 둘 다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고, 눈매는 그지없이 선하다. 얼마나 조용한지 왔다 갔다는데도 눈치를 못 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항상 첫 배로 와서는 밤새 낚시를 한 뒤 다음 날 첫 배로 나간다. 그래서 붙은 또 다른 별칭은 ‘1박2일’이다. 낚시엔 고수라 하룻밤 만에 월척을 낚아 냉장박스 가득 고기를 싣고 떠난다. 제주시에서 감귤농장을 하는데,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올 때마다 귤을 한 상자씩 들고 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과실에 농약을 치지 않고, 농장의 규모를 키우지도 않고, 단골들의 주문에만 응한단다. 약품을 써서 껍질에 광을 내는 몰지각한 상인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게다가 달콤하고 과즙 팡팡 터지는 그 싱싱한 맛은 말해 뭐해. 이 집 감귤 맛은 내가 먹어본 것 중 최고다. 뱃구레가 작은 나는 과일을 먹으면 한 끼를 건너뛰어야 하므로 웬만해선 집어 들지 않는데, 이 집 귤만은 참아내기 힘들다. 식당 접시에 놓인 귤만 보면 하나 까서 한입에 털어 넣고 오물오물. 일산에 올라가서도 겨울만 되면 주문 버튼을 누를 것 같다.
블랙앤화이트 부부. 남편은 온통 까만 옷을 선호하는 데 반해 아내는 눈에 띄게 새하얀 옷만 입고 등장해 붙은 별칭이다. 이들 부부는 추위를 많이 타 한여름을 제외하고 보일러 난방을 ‘입빠이’ 올려달라고 간청해 내가 뜨거운 방바닥 때문에 몸부림치는 방문객이기도 하다. 참, 블루는 중앙공급식 난방이다. 남편은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대한다. 무얼 묻든 자상하게 설명하고, 무거운 짐을 절대 들지 못하게 막는다. 아서, 아서. 평생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단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세운 회사의 상품을 팔아치운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특히 러시아를 공략하기 위해 찬 공기를 갈랐던 이야기는 폭 빠져 들었다. 부부는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이들이 오는 저녁은 항상 삼겹살 파티다. 음식손맛이 좋은 아내는 맛깔 나는 밑반찬을 잔뜩 싸들고 온다. 식당에 걸린 보드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는 순간 기대가 차오른다. 낚시엔 막 입문한 쪽이라 고수는 아니지만 인생의 고수라기엔 충분하다. 사이좋은 둘을 바라만 보아도 내 맘이 순해지고, 별식을 종종 즐길 수 있기에 언제든 환영이다.
맥가이버 브라더스. 주인장에겐 동생이 몇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른다. 동업하는 형을 대동하고서. 둘의 손재주는 맥가이버급인데, 올 때마다 ‘블루’는 환골탈태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다. 방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선반을 짜서 동선이 얽힌 식당을 말끔히 정리하고, 고장 난 채 방치된 어항을 손질해준다. 나의 방에 들어와서는 거미줄처럼 얽힌 전기선을 정리해주었다. 울산 사나이들이라 말투는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성격이 보드랍기로는 으뜸이다. 잦은 방문에 친해져 같이 밥을 해먹고, 글 쓰는 데 도움을 준다며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를 전해준다. 낚시에 고수인지라 온갖 돔을 낚아와 밤마다 ‘한라산’을 돌돌돌 따르는 술자리가 벌어진다. 며칠 전에도 찾아와 이별주를 나누었다. 아듀, 인생 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