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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텅 비었다

by 배경진

1

가파도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올 한 해 동안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제주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뉴스가 나오면 안부를 묻는 전화가 온다. 그러나 그 뉴스는 제주시에만 해당될 뿐 이곳 가파도와는 연관이 없다. 단비는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다. 우영팟의 채소는 말라비틀어지고, 건조한 기후 아래서도 잘 자라는 늙은 호박의 번식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해졌다. 오이·가지·배추·무·고추·부추는 물을 공급받지 못해 시들 새들이다. 가파도 사람들은 이제 일기예보를 믿지 않는다. 비 소식을 실은 예보는 곧 오보가 되기 일쑤다. 모종을 심어놓은 우영팟을 들락거리다 베프는 혼잣말을 되뇐다. “무사(왜) 이리 가물댄? 아휴, 비 좀 오지.” 확실히 이상 기후다.

2

섬 곳곳에 쓰레기 더미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깃발 아래 가파도의 지붕은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교체되었다. 그렇게 시멘트와 플라스틱과 비닐이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면서 ‘독한 물’이 바다로, 바다로 흘러들었다. 선박의 숫자가 늘면서 배에서 바다로 무분별하게 버리는 폐어구는 어마어마해졌다. 수시로 우리 해안을 넘보는 중국 배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파도에 떠밀린 쓰레기는 중국어가 찍힌 포장지가 절반을 넘는다. 해양 쓰레기를 걷어 들이는 일손을 따로 고용했지만 버리는 사람을 따라잡기란 애초에 힘든 일이다. 너울성파도가 일거나, 풍랑주의보가 끝나고 나면 해안은 쓰레기로 하얗게 덮인다.


3

미역이 나지 않는다. 바닷속 봄의 전령은 미역이다. 해녀들은 봄바람을 맞으며 거꾸로 솟구쳐 들어가 호미로 미역을 한 땀 한 땀 끊어 올리는 기쁨을 기다린다. 그런데, 가파도에서, 미역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뿔소라·해삼·전복 등은 미역이나 톳 같은 해조류를 자양분으로 삼는데, 바다풀이 사라지니 어패류 또한 고사 직전이다. 물때도 들쑥날쑥이다. 예전엔 물때가 오면 해산물을 잡고, 때가 아니면 테왁을 손질하면서 시기를 기다렸건만 요즘은 갑자기 풍랑주의보가 뜨거나 갑자기 날씨가 변해 해녀들의 손을 잡아매기가 일쑤다. 그들은 입을 모은다. “사람이 변하니 세상도 변해여.” 이제 바당에서 수확을 기대하는 마음들이 점차 식어가고 있다. 해녀가 되려는 젊은이가 없고, 어린 해녀는 본섬으로 나가 직업을 바꾸어 버린다. 지금 활동하는 해녀를 끝으로 ‘호오이, 호오이’ 하는 숨비소리가 지구 위에서 멈출 것 같다. 바다를 좋아하고, 해녀를 좋아하는 내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가파도 바다가, 제주 바다가 텅 비어간다.

222-미역.jpg 가파도 바다에선 이제 마주칠 수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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