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132화
‘블루’의 주인장에게 선언했다.
“제가 여기서 머물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어요. 그동안 회를 실컷 먹고 가게 잡아주세요.”
“옛,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오? 낚시의 ‘낚’ 자도 모르는 내가?)
앞 바당에 횟감이 지천이니 좀 잡아오시오. 그날 이후 주인장은 오후 서너 시만 되면 낚시 포인트로 향한다. 마침 강풍주의보가 내려 펜션엔 손님이 없다.
어제는 나가긴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에궁, 저녁도 굶고 기다렸는데. 할 수 없지,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오늘, 오후가 되자 그의 동향을 살핀다. 나가나? 안 나가나? 역시 나간다. 두어 시간 뒤 마당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을 빼꼼 열고 소리친다.
“뭐 좀 잡혔어요?”
낚시용 장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던 경상도 사나이는 대답한다.
“예, 한 마리 잡았십니더.”
야호! 실내복을 갈아입고 그를 따라 아래층 수돗가로 달려간다.
“어? 돔을 잡았네요.”
“예, 긴꼬리벵에돔이라예. 몇 마리 놓치고 간신히 잡았심더.”
크기가 작은 3짜(30센티미터)다. 4짜는 되어야 크게 한 접시 나오는데, 쩝. 하는 수 없지.
나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아이구, 이거라도 다행이에요.”
주인장은 생선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잡아 뺀 다음 수돗물로 닦고 나서 식당으로 향한다. 나도 쫄래쫄래 따라간다.
주인장이 회칼로 돔을 얇게 저미는 동안 나는 상추와 깻잎을 씻은 다음, 와사비 간장과 회고추장을 종지에 덜어놓는다. 회를 접시에 담아 내 온다. 적은 양을 겸연쩍어 하면서 그는 말한다.
“딱 쏘주 한 병 마실 만한 양입니데이.”
회 한 접시, 소주 한 병, 상추쌈과 깻잎으로 차린 조촐한 한 상이다. 소주잔을 들어 부딪치고 나서 입안에 턴 다음, 간장에 살짝 찍은 회 안주를 비로소 맛본다. 앞 바당에서 뛰어 놀던 고기를 썰어 놓으니 육질이 꼬들꼬들한 것이 보통 맛있는 게 아니다. 맛을 음미하며 오래 오래 씹는다. 입안에서 화려한 불꽃이 팡팡 터진다.
보통은 낚시고수 서너 명과 같이하는 술자리라 시끌벅적했는데, 오늘은 단둘이 앉아 있으려니 너무 적막하다. 마침 창밖에서 소나기가 동석자가 되어 내리 퍼붓는다. 빗줄기에 따르는 찬바람에 오스스 소름이 끼친다. 창문을 닫고 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회가 반쯤 그대로 남았다. 주인장은 말한다.
“아, 쫌 잡수소. 나는 안주 없이도 술 잘 먹습니더.”
선한 거짓말이다. 양이 충분할 땐 회 밑으로 젓가락을 쓱 들이밀어 포획한 놈을 입에 잔뜩 우겨 넣고 음미하는 타입이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다가 결국 내가 반 접시를 다 비웠다. 소주는 딱 일 병만 마셨다. 안주가 없으니 더 마실 수도 없다. 내일은 다량으로 잡아와 서로 눈치 안 보고 양껏 먹으리라 기대하며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매일 밤 회를 먹는 이 루틴은 일주일 동안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집에 가서도 포한으로 남지 않지, 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