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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일 년, 책으로 출간

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134화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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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 가파도를 떠나 일산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지난주엔 짐을 부쳤습니다. 오늘 아침엔 그간 머물렀던 공간 안팎을 청소했고요. 허리를 굽혀 흔적들을 정리하다보니 일 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더군요. 겨울부터 봄·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순삭입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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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놓고 보니 그 추운 겨울에 와서 어떻게 이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청보리가 들판에 가득했던 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풍경입니다. 질기디질긴 생명력으로 나를 괴롭혔던 여름은 뒤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가을엔 억새 흔들리는 길 위에서 지난날을 되새기며 건강한 귀환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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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서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을 먹는 날, 어른들에게 작별인사를 드렸고요. 삼촌들은 “종종 놀러 옵서.” 하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선뜻 훗날을 기약하지는 못했습니다. 삼촌들이 저의 베프에게 “떠나보내고 허전해서 어떵 살 거라?” 하고 위로를 하는 모양입니다. 베프는 “평생 같이 살 것도 아니고, 갈 사람은 가야주”라고 덤덤히 대답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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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문객을 위해 깔끔히 정리한 방을 둘러봅니다. 삼촌들의 이름과 특징을 적어 붙여놓았던 메모 자리가 말갛군요. 그 이름들은, 그 체취는 제 마음속에 이미 저장했습니다. 이 땅에 혼자 떨어졌던 날, 가파도란 지도는 하얗게 비어 있었지요. 이제 그 지도 위엔 정담을 주고받은 해녀 삼촌들이 동서남북에서 까만 점이 되어 반짝입니다. 삼촌들, 물질할 때 너무 욕심내다 물숨 먹지 말고 건강하게 바당에서 숨비기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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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 책으로 묶기로 했어요. 가제는 『가파도에는 해녀가 산다』. 제 첫 책(『편집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2023)을 펴내준 ‘책이라는신화’에서 출간합니다. 섬 속의 섬에서 현장중계처럼 생생히 써 올린 글이 어떤 리듬을 타고 한 권의 책으로 묶이는지 종종 소식을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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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제 글을 정성껏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주에 오길 잘 했다. 가파도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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