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파도에서 보름이 넘었다. 보름 하니, 보름달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여긴 일산보다 별이 많이 보이고, 보름달도 맑고 두둥실하다. 암튼, 오늘도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나가는 길에 보니 옆집 해녀 삼촌이 외출옷 차림으로 집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묻는다.
“어디서 왔어? 요새 자주 만나네.”
제주 사투리에 제주 억양이라 잘 못 알아듣지만 순간적으로 해석을 해 대답한다.
“네, 서울에서 왔어요.”
경기도 일산이라 하면 못 알아들을까봐 넓은 범위로 말한다. 뭐 하러 왔느냐, 지금은 어디서 사느냐, 밥은 어떻게 먹느냐며 질문을 쏟아낸다. 절반은 못 알아듣지만 들리는 만큼 대답한다. 해녀 삼촌들은 오랜 물질로 귀가 잘 안 들려 목청이 크다. 나도 따라간다. 몇 마디 안했는데 목이 칼칼하다.
“삼촌, 지금 어디 가세요?”
“으응, 저기 노인정에. 점심을 모여서 해먹거든. 10시에 가려고.”
그때가 9시 반인데 벌써 나와 앉은 거다.
2.
가파도터미널에서 전전전전 이장을 만났다. 경윤 샘이 소개해주었다. 가파도 역사를 죽 읊는다. 메모장에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예전엔 배를 몇 척 거느린 선주였단다. 아내가 터미널 근처에서 식당을 한다는 말에 경윤 샘이 거든다. “가파도에서 보말칼국수를 제일 잘하는 집이지.” 엄지 척까지. 단골식당이 또 하나 늘었다. 상호는 ‘해녀의집’. 경윤 샘과 ‘꼬닥꼬닥걸으멍’(천천히걸으며)에서 청보리누드김밥과 어묵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기도 자주 들를 것 같다. 내가 카드를 내밀자 현금만 받는다며 샘이 계산을 한다. 손이 부끄러웠다. 모슬포오일장에서도 현금만 받더구만. 그날 10만 원 인출해왔는데, 절반 남았다. 더 찾아놔야겠다. 연세기간이 끝나 이사 간 경윤 샘의 새 집에 들렀다. 첫 방문인데, 빈손이었네. 어머나, 부끄러워라. 오늘은 ‘따불’로 부끄럽네. 담에 좋은 거 사가야지.
3.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일찌 삼촌을 만났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앙로에서 돌담정리공사가 한창인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왔고, 일제를 잘 가지고 다닌다 하여 일제, 일제로 불리다 일찌가 되었다는데, 그이도 물질을 한다. 해녀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책 한 권을 선물하겠다고 했었다. 오늘 받았다. 제주대학교 교수 둘이 가파도 강순화 할머니(91)의 생애 구술을 풀어쓴 것으로 비매품이다. 가파도의 역사와 세세한 생활상이 빼곡하다. 참 진귀한 자료다. 좀 부풀리자면,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기에 온 값어치가 충분하다.
4.
가파도는 가오리 모양이다. 가오리 머리 쪽이 터미널이 있는 상동이며 북쪽, 꼬리 쪽이 하동이며 남쪽이다. 나는 하동에 산다. 해발 20.5미터. 땅의 높이가 해수면과 별 차이가 없어 파도가 크게 치거나 태풍이라도 닥치면 물에 곧 잠길 것 같지만 암초 띠가 섬을 둘러싸고 있어 안전하단다. 전체 면적의 60퍼센트가 보리밭이다. 주민 수는 150여 명이다. 몇 년 전 200여 명에서 자꾸 줄고 있다. 100명이 못 되는 여성 중 해녀가 44명이다.
5.
가파도는 바람이 세서 집도 담도 낮다. 해녀 삼촌들은 낮은 담 사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떤 때는 가벼운, 어떤 때는 심각한. 나도 언젠가는 저 이야기에 낄 때가 있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해녀전동차를 탄 그들만 보면 무조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옆집 해녀 삼촌이 나를 보고 아침에 말을 걸어온 것이리라.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도착했을 때는 며칠 동안 새벽마다 깨어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해녀들은 마음을 잘 안 연다는데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고 가벼운 고민을 했다. 고민하지 말자. 다 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