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가파도 앞바다는 물반, 방어반이다. 낚싯대를 던졌다 하면 30, 40센티미터짜리 크고 튼실한 방어가 휙휙 낚여 올라온다. 낚시꾼들은 이를 3짜, 4짜라 부른다. 내가 둥지를 튼 블루오션펜션은 낚시의 고수들이 거의 매일 들어와 이틀 혹은 사흘 동안 낚시만 하다 간다. 해드랜턴을 켠 채 새벽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이, 오후 네 시쯤 갯가로 나가는 이, 한밤중에 낚시 장비를 챙겨드는 이. 대개는 오후 네 시에 가장 많이 나간다. 바람이 불든, 비가 몰아치든, 날씨가 춥든 관계없다. 이런 날씨에? 내가 괜히 걱정되는 그런 날에도 사력을 다해 낚싯줄을 당겨야 하는 그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조업을 서두르는 것이다. 그들은 두어 시간 낚싯대를 던져서 팔딱이는 고기를 낚아온다. 방어가 낚이지 않는 날은 벵에돔, 자리돔, 줄돔, 부시리, 전갱이, 농어 등이 걸려 올라온다. 주인장은 이곳의 조류를 터득하지 못한 손님들과 동행해 쏠쏠한 손맛을 느끼게끔 유도한다.
2.
저녁 먹을 시간이다. 주인장은 손님들이 낚아온 생선을 받아들고 바깥 수돗가에서 1차 정리를 한 다음, 주방으로 들어와 2차 손질에 나선다. 주방 하얀 면포 위엔 항상 회칼 네댓 개가 일렬로 정리되어 있다. 가늘고 긴 놈, 넓적하고 뭉툭한 놈, 중간 크기인 놈. 퇴직 전부터 낚시에 미쳐 전국을 돌아다닌 이 고수 양반은 순간적인 판단 아래 칼 한 자루를 집어 든다. 두껍게 썰어야 하는 고기, 얇게 저미듯이 썰어야 하는 고기, 적당히 썰어야 하는 고기 등 그때그때 선택이 다르다. 칼날을 손가락으로 쓰윽 한 번 훑은 다음 날렵한 솜씨로 살을 발라낸다.
3.
나는 그 동안 두 칸으로 나뉜 접시에다 한쪽에는 초고추장을, 한쪽에는 회간장 위에 와사비를 짠다. 커다란 식탁에 좌식으로 둘러앉아 초면인 우리는 통성명을 먼저 한다. 제주산 소주인 한라산을 입에 털어 넣은 다음 굵직굵직하게 썬 방어를 입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며 그 쫄깃쫄깃한 식감을 음미한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손님이 들지 않는 날은 주인장이라도 나가서 고기를 잡아온다. 처음엔 한라산을 한두 잔 마셨지만, 알코올이 약한 나는 이젠 사양한다. 건배를 할 땐 혼자 뻘쭘하긴 하다.
4.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선 올해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방어축제가 있었다. 내가 도착한 12월 1일은 축제 마지막 날이라 운진항을 바로 코앞에 두고 길이 한참 밀렸다.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는 물살이 빨라 방어가 크고 쫄깃하기로 유명하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방어를 이곳에서 잡은 걸로 상당 부분 해결한단다.
주인장에게 물었다.
“매일 회를 먹는데 물리지 않아요?”
“아니오, 전혀.”
같은 음식을 두 번 이상 먹는 걸 거부하는 나도 여기선 항복이다. 집에서라면 오늘 회를 먹었는데 다음날 또 먹으러 가자면 인상부터 구길 터다. 곰곰 생각하니 조리법이 다양한 데도 이유가 있는 듯하다. 주인장은 그날그날의 어종을 보아 회로, 튀김으로, 찜으로, 조림으로, 지리로 다양하게 요리를 만들어 척척 상 위에 올린다. 혹은 어떤 날은 회와 조림, 어떤 날은 회와 튀김, 어떤 날은 회와 지리, 이런 식으로 신경을 쓰니 물릴 틈이 없다. 그리고 한 번도 비리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 아마도 정말 싱싱해서 그럴 것이다. 오늘로 여기 온 지 20일, 이렇게 황홀한 향연을 매일 밤 즐겨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