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동차_없인_못_산다”

by 배경진

1.

해녀 삼촌들은 걷지 않는다. 대부분 고령인 해녀들은 오래 걷기도, 짐을 들고 다니기도 힘에 부친다. 그래서 전동차가 최고의 친구다. 물질을 하러 탈의장에 갈 때도, 이웃에 마실을 갈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애용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노인용 유모차를 밀며 꼬닥꼬닥(천천히) 걸었다. 옛날 이야기다.

2,

전동차는 속력이 웬만큼은 난다. 자전거와 걷는 것 중간이다. 물론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처음 여기 와서 전동차 탄 해녀 삼촌에게 말을 걸었다가 혼쭐이 났다. 전방에 장애물이 나타난 것처럼 공포를 느꼈던가 보다. 크기는 작아도 차는 차. 유모차로 삼촌들이 이동을 한다면 말 걸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 아쉽다. 어제 경로잔치가 끝나고 한 사람 당 쌀 10킬로를 나누어주니 전동차에 싣고 유유히 돌아가는 삼촌들. 이추룩(이처럼)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그건 좋은데, 전혀 걷지 않는 삼촌들의 무릎 관절은 점점 약해지는 건 아닌지….


3.

가파도에는 탈것이 다양하다. 해녀전동차 숫자가 가장 많고, 오토바이·스쿠터·킥보드에다 트럭·승용차까지, 뭍에 있는 건 여기도 다 있다. 전부 혼자 타고 다닌다. 과장하자면, 탈것이 주민 수에 육박하지 않을까. 오토바이나 트럭이 지나가고 나면 매연이 심하게 남는다. 주민들은 이제 자전거조차 타지 않는다. 페달을 밟는 수고조차 마다하는 것이다.


4.

섬에서 걷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타박타박 걷는 사람이 보인다면 나다. 하동에서 배를 타러 상동으로 갈 때도, 해안가를 돌 때도, 청보리밭을 가로지를 때도 걷는다. 주민들은 지나가다 차를 타라고 권한다. 모슬포에서 장을 봐온 날이 아니라면 사양한다. 친해진 이웃들은 중고든 뭐든 하나를 골라서 타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련다. 예서 지내는 동안 걸으면서 나 하나만이라도 무해하게 지내다 가고 싶다.


5.

섬사람 사귈 때는 원주민 식당에 가서 말꼬를 트는 게 좋겠지. 며칠 전 점심을 먹으러 식당 ‘느영나영’(너랑나랑)에 들렀다. 떡국을 시키자 주인아저씨가 산책하는 나를 자주 봤다며 반색한다. 걸어 다니니 이처럼 첫 인사가 ‘스무스’해지고, 나를 ‘걷는 육지사람’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도 좋은 점이다.

해녀 삼촌들은 말한다. “이제 전동차 없인 못 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_방에_귤이_주렁주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