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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_사투리_참_어렵수다게

by 배경진

1.

이른 아침, 올레가 끝나는 곳에 놓인 나무 벤치 앞. 바다가 지척이다. 하늘엔 몽글몽글 아이스크림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파도는 가볍게 술렁인다. 물질에 최적인 날씨다. 해녀들이 서서,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디 이짝 웅웅웅웅….”

“저디 저짝 웅웅웅웅….”

오늘은 물질을 어디서 할 건지를 정하는 모양이다. 오물오물, 조물조물 주름진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토론에 한창이다. 새끼 새처럼 나는 그들의 입만 바라본다. 한두 마디 빼고는 입모양으로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삼촌들의 톤은 높고 말은 빠르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때문에 톤은 높고, 하루하루가 눈 돌아가듯 바쁘니 말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같은 이 묘한 상황. 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희한하게 그들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한 이 기분.


2.

고갯짓을 하거나 손가락을 동으로 서로 가리킨다. 이쪽 말고, 저쪽. 아니 저쪽 말고 이쪽. 해류를 짐작하며 물질에 최적인 장소를 난상토론으로 가리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내 존재를 의식한 삼촌 하나가 묻는다. “우리 말 알아들으우꽈?”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자신들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렇게 한 시간여 복작복작대더니 삽시간에 싹 흩어진다. 삼촌들은 집으로 돌아가 잠수복을 입은 뒤 전동차를 타고 전사처럼 기세 좋게 나타날 것이다.


3.

경상도, 전라도, 하다못해 이북 사투리는 알아듣는 게 우리 육지 사람이다. 제주는 뭍에서 멀리 떨어져서 그런가, 당최 못 알아듣겠다. 나의 베프 순신 삼촌은 도시에서 오래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온 해녀다. 나와 이야기를 할 때는 표준어를 쓴다. 그런데 해녀들만 모였다 하면 마음 놓고 사투리를 구사한다. ‘엄마야, 이 어른덜이 머라캐쌓노? 한나도 몬 알아 묵겄다.’ 나는 내 고향 사투리로 중얼거린다.


4.

가파도에 온 지 두 달. 간단한 단어나 어미 정도는 알아듣는다. 바당(바다), 구제기(소라), 몬딱(전부), 소나이(사나이). “밥 먹었져?” “먹었수다.” “어제 어데 강?” “오일장 갔다왔지게.” 소소한 일상, 혹은 심각하게 나누는 이야기를 알아듣고 싶다. 책이나 자료에선 헤아릴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을 듣고 싶다. 삼촌들과 더 자주 부대껴야겠다.

제주어.jpg 불턱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해녀 삼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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