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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_듣는_아침

by 배경진

1.

‘블루’에서 열흘 동안 혼자 지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줄 몰랐다. 잔뜩 성이 난 바다를 달래느라 그리 긴 날들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모두 ‘밖’으로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였다. 적적했지만 한편으론 그 속에 푹 잠겨 있었다.

2.

아침마다 ‘블루’의 식당에서 베토벤의 ‘황제’를 들었다. 휴대폰 음질의 한계가 있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스테인리스 볼에 휴대폰을 담갔더니 날카로움이 깎이어 나가고 소리가 깊어졌다. 한동안 손열음의 황제를 듣다가, 한동안 조성진의 황제를 듣다가, 요즘은 임윤찬의 황제만 듣는다. 감미로운 손열음, 부드러우나 에너지를 실은 조성진에 이어 이젠 영롱하나 힘찬 임윤찬에게 가 꽂혔다.


3.

주인장이 나만의 거라며 아주 작은 밥솥을 선물했다. 쌀을 안치고 30여 분, 종료를 알리는 멘트에 따라 뚜껑을 여니 노오란 루피니빈이 점점이 박힌 밥에서 하얀 김이 오른다. 데워놓은 밥공기에 밥을 푸고, 소찬을 상 위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는다. 그런 다음 창밖 수평선과 갈매기에게 눈높이를 맞춘다. 휴대폰 버튼을 누른다. 스위스 베르비에페스티벌에서 연주한 곡이다. 1악장이 힘차다. 순간, 목이 탁 멘다. 그렇게 거듭 들었건만 1악장은 항상 새롭고, 목이 멘다. 물 흐르듯이 2악장으로 바통이 이어진다. 선율을 음미하듯 밥과 반찬을 꼬옥꼬옥 씹는다. 연주 시간 37분 동안 밥과 임윤찬과 내가 하나다.


4.

임윤찬: “음악을 소외된 사람들과 나누는 건 음악을 모르는 그들에게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과정이다.”

'블루' 식당에서 바라보는 하동항. 일출이다.
임윤찬은 신선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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