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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_6개월이라니요

by 배경진

가파도 사람들 가파도에 온 지 6개월째입니다. 눈 한 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나요. 12월 1일, 운진항에서 ‘블루레이호’를 탔으니 6개월 맞습니다. 이젠 많은 삼촌들이 나를 알아보고 살갑게 대해줘 잘 살고 있습니다. 160여 주민을 다 알진 못하지만, 눈에 익은 사람은 많습니다. 백이면 백 다 친한 건 아니고, 다 호의적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스스럼이 없이 대해줍니다. 곁을 내달라는 바람이 통한 걸까요. “이따 들러 커피 마시고 가”라며 초대해주는 해녀촌식당 수자 씨, “여기서 아주 살 거야?”라고 물어주는 안유 삼촌, “아침 먹었어?”라며 끼니를 챙겨주는 용궁식당 영순 삼촌…. 모두 감사합니다.

가파도의 겨울과 봄 겨울은 그다지 춥진 않았지만 자꾸 웅크려지던 날들. 그런데 노란 유채에 이어 청보리가 풋풋해지고, 무엇보다 해녀 삼촌들이 물질을 시작하는 봄이 오자 몸과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길고 길었던 겨울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날씨는 화창하고요. 요즘은 섬을 샅샅이 누비고 다닙니다. 물이 봉봉 드나드는 바닷가에서 해초인 가시리를 베거나 군벗·고둥·삿갓조개를 캐는 삼촌들을 따라다닙니다.


가파도의 여름과 가을 은총과도 같은 햇살에 청보리는 여물고, 들꽃이 곱닥하게 피어나는 여름이 오고 있네요. 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 없는 이곳에선 과랑과랑한 햇살을 피해 그늘만 골라 디뎌야 할 듯합니다. 제주의 노오란 여름성게는 알이 꽉 차고 맛이 좋아 나라 안팎에서 알아준다는데, 7월 한 달은 성게 수확 철입니다. 냉동실에 얼려둔 모슬포 미역을 꺼낸 뒤 녹여 성게 알을 듬뿍 넣고 복닥복닥 끓이는 미역국. 기다려지는 맛입니다. 가파도에 여름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 기세가 얼마나 강력한지 마을이 초토화된답니다. 지붕이 날아가고, 정박시켜 놓은 배가 뒤집히고, 돌담이 무너지고. 지난해엔 태풍이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올해는 어떨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 한 번뿐인 인생처럼, 한 번뿐인 가파도의 사계. 이제 여름과 가을이 남았습니다. 귀가할 때 후회하지 않도록 삼촌들을 자주 만나고, 세심하게 모든 것을 살피면서… 암튼 잘 지내다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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