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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성게알은 노랗고 싱싱하더라고요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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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침내, 해녀삼촌들이 성게를 잡았다. 미처 여물지 않아, 파도 때문에, 안개 때문에 미뤄지던 바로 그날이 온 거다. 노동자는 일을 할 때, 학생은 공부할 때 빛나듯이 해녀는 물에 들어야 가장 빛난다. 하마 하마 언제 지나갈까 ‘블루’의 테라스에서 올레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울릴 듯 열 대가 넘는 전동차가 커브를 돌며 하동 항구 길에 나타났다. 고무옷을 차려 입고, 짐칸에는 테왁과 망사리를 실은 해녀들. 얼굴은 생기가 돌고 가벼운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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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잠수든 작은잠수든 성게작업은 할망바당(=갯가 바다)에서 이루어진다. 삼촌들은 ‘블루’가 있는 하동에서 주로 물질을 하는데 오늘은 바람무늬에 따라 상동에 모였다. 뱃물질하던 해녀, 갯물질하던 해녀가 모여든 잔잔한 바다엔 30송이 가까운 주황 테왁꽃이 활짝 피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꽃이 또 있으랴. 해녀들은 바닷속 보물을 잡아 올리기 위해 오르고 내리고를 수십, 수백 번 반복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한 물질은 11시에 끝났다. 삼촌들은 물에서 나와 삼다수로 짠 입을 헹궈내며 입을 모았다. “없쪄, 없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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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손질이다. 큰 다라이에다 망사리의 성게를 쏟았다. 가시가 궁금해 손끝을 대어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날카롭고 딱딱하다. 살아 있던 놈이 가시를 움직거리며 반응했다. 칼로 성게를 반으로 가르고, 숟가락으로 알을 파내고, 핀셋으로 잡티를 뽑았다. 똑같은 행동을 2시간 동안 반복. 수행이 따로 없다. 베프는 묵묵히 손을 놀리며 입으로는 고시랑고시랑. 나도 일손을 도우며 피 같은, 살 같은 정보를 머릿속에 메모했다.

“성게가 별로 안 보여서 죽을 둥 살 둥 했주. 그런데 알도 실하지 않다마씨. 똥보다 알이 많아야 하는데, 알보다 똥이 많다게.”

보통 물질시간만큼 손질에도 같은 시간이 걸리는데, 오늘은 껍질 속 알이 적어 절반밖에 안 걸렸다. 나는 보조에 불과한데도 허리와 어깨가 뻣뻣하다. 삼촌은 힘든지 입으로 “하아, 하아” 하고 연신 밭은 숨을 내쉰다. 왜 안 그렇겠나. 4시간 물질, 2시간 손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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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는 선명한 노란 색만 상품으로 받아준다. 약간이라도 거무스름한 빛을 띠는 게 눈에 띄면 삼촌은 내 손에 놔준다. 그럼 난 어미참새에게서 먹이를 얻는 것처럼 받아 입으로 호로록. 바닷물에 담가 헹궈내니 살짝 짜지만 보약이려니 여기고 먹는다. 첫 맛은 그래도 뒷맛은 치즈를 씹는 듯 묵직하면서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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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가 든 그릇을 들고 어촌계로 갔다. 어촌계장은 남은 잡티를 살짝 골라낸 다음 저울에 올렸다. 600g. 1kg은 되어야 고소득에 속한다. 물론 뿔소라보다는 단가가 세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반밖에 안 된다. 삼촌은 '할 수 없지, 그 정도라도…' 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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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들이 물질을 하는 내내 지켜보고, 손질을 도왔다. 나도 해녀 삼촌들이 물질을 하고 뒷마무리를 하는 걸 지켜볼 때 제일 즐겁다. 남은 날들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날씨가 거칠지 않고, 바닷속 생물들이 숨지 않고, 삼촌들이 신이 나서 바당으로 들어가는 그런 날들. 성게에 이어 7월은 보말의 달이라니 기대가 된다.

가파도 바다에 테왁꽃이 피었다. 활짝~.
나의 베프는 산방산을 보며 물질 중이다.
망사리 한가득 성게로 채웠다.
성게 가시는 정말 강력하다.
바닷물을 사용해 손질해야 한다.
해녀 삼촌들의 젊음, 그리고 목숨과 바꿔온 성게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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