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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엔 세 자매가 산다. 첫째와 둘째는 뱃물질을 하는 큰잠수이고, 막내 부부가 원조짜장·짬뽕집을 운영한다. 해녀들이 뿔소라·전복·홍해삼을 건져와 메뉴를 채운다는 소문이 자자해 평일에도, 주말에도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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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연휴엔 식당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제 키만한 배낭을 짊어진 남녀들이 길게 늘어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캠핑장 ‘태봉왓’에서 밤을 보낸 야영객들이 짬뽕 해장을 하려고 긴 줄을 선 것이었다. 전날 캠핑장엔 80여 명의 캠퍼들이 들어차 볼 만한 텐트 야경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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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모슬포 홍성방, 가파도 안의 중식당 등에서 짬뽕과 짜장을 수없이 즐겼지만 이곳 ‘원조’는 그 누구와 어깨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 실내도 모자라 실외 탁자를 그득 메운 손님들 사이로 쉴 새 없이 짬뽕·짜장 그릇이 날아다닌다. 내가 시킨 짬뽕을 기다린다. 이때만큼 설레는 순간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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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다. 커다란 뿔소라가 통째로 터억 올라 있다. 뿔소라를 헤치니 새우·게·홍합으로 그릇이 비좁다. 명실상부한 해물짬뽕. 청보리와 시금치를 넣고 치댄 면은 초록색을 띤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난 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해물이 잔뜩 들어가는 바람에 면의 양이 너무 적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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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비리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시원한 맛, 그러나 깊이가 느껴지는. 자극적인 맛을 내려고 괜히 맵기만 한 시중의 짬뽕과는 확연히 다르다. 해물을 다른 그릇으로 옮겨놓은 다음 면을 먼저 흡입한다. 매끈매끈한 면발에서 느껴지는 청보리의 고소함? 그건 잘 모르겠다. 암튼 젓가락질 몇 번에 면치기는 금방 끝났다. 뿔소라를 젓가락으로 빼내어 내장을 끊어 버리고 입 안 가득 소라 뭉치를 집어넣는다. 우물우물, 쫄깃쫄깃. 새우와 게를 먹고 나니 너무 배가 불러 홍합은 못 먹겠다. 정말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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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식당에선 현금 지불이 무언의 약속. 15,000원을 내고 나서는데, 주방장과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해오니 나도 웃으며 답례. 마음은 속말로 전했다. ‘오늘도 잘 먹었어요, 경훈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