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공항에서 버스 151번을 타고 1시간 반쯤 달리면 모슬포 운진항에 닿는다. 가파도에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 블루레이호. 1호, 2호, 3호가 있는데, 내가 탄 배는 1호였다. 294명이 탈 수 있는 규모다. 우도행 배처럼 차를 싣고 갈 수는 없다. 블루레이는 푸른 가오리란 뜻이다. 가파도가 가오리처럼 생긴 데서 작명한 이름으로 보인다. 배는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 안으로 들어서면 3열의 붉은 시트가 보이는데, 1열 중앙 자리는 항상 가파도 주민이 앉는다. 자주 오가니 2층에 올라가 풍경을 감상할 일이 없고 뒤로 갈수록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니 맨 앞에 모여 앉는다. 그들 주변엔 생필품 보따리가 수북하다. 주민들은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어디 갔다옴수까?”
“뭐 사완?”
나는 첫 방문 때 두 번째 줄에 앉았다가 더 뒤로 가야 하나 잠깐 고민했었다. 그분들에게 무엇이든 양보하고 싶은 맘이 드는 건 왜일까.
2.
블루레이호는 4월의 청보리축제 기간을 제외하곤 하루 7번 왕복하는데,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뜨지 않는다. 풍랑주의보는 언제 내리는가? 아무도 모른다. 하늘만이 아신다. 물론 기상앱을 켜고 며칠 뒤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바로 당일 오전 8시에 운항 여부를 발표하기 때문에 개인사든 집안일이든 거사를 앞두었을 경우엔 애가 바짝바짝 탄다. 그래서 가파도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미리 제주 본섬에 나가 대비를 한다. 나는 가파도에 이번 봄과 가을에 두 번 왔는데, 첫 방문 때는 배가 뜨지 않아 제주시 대동호텔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 했다. 가을에는 다행히 곧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앞으로 생필품을 사러 나갈 일이 종종 생길 테니, 풍랑주의보는 이제 내 초미의 관심사다.
3.
가파도 요금은 성인 왕복 15,500원이다. 65세 이상은 11,600원이다. 모슬포 시내에 종종 나갈 텐데, 이것은 부담스럽다. 줄이는 방법은 없나? 있다. 가파도 주민이 되는 거다. 주민등록을 옮기면 왕복 2,000원만 내면 오케이다. 배삯뿐 아니라 가파도 주민이 되면 혜택이 더 있다. 제주항공 예매 시 할인, 65세 이상 버스비 무료. 모슬포에 나갔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끊겼다. 그럼 모슬포에서 하룻밤 묵어야 한다. 이때 모슬포호텔에서 묵는다면 5만원 요금이 3만원으로 할인된다.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적응을 잘하고 장기간 머물러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주민등록 이전을 고려해보려 한다.
4.
일산 집에 독서안경을 빠뜨리고 와서 입도 나흘 만에 운진항 배를 탔는데, 그날따라 파도가 심해 배 전체가 흔들렸다. 털썩 털썩. 의자에서 엉덩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창밖을 보니 허연 파도가 거세게 노기를 띠고 있었다. 멀미가 약간 느껴져 눈을 꼭 감았다. 운진항 도착 바로 전에 선사 직원이 앞문을 열려 나오기에 물었다.
“앞에 타는 게 멀미를 덜해요? 뒤에 타는 게 덜해요?”
짧게 한 마디 던진다.
“뒤!”
곰곰 생각하니 그렇다. 버스는 우악스런 기사를 만나면 뒷부분이 심하게 흔들리는 데 반해 파도가 거칠면 배는 앞부분이 들썩들썩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항상 앞자리를 선호하던 버스만 생각하고 배의 앞에 탔더니 오판이었다. 귀가할 때는 맨 뒤에 앉았다. 경윤 샘이 그려준 약도를 들고 다빈치안경에 들렀다가 홍마트·정마트에서 생필품을 샀다. 모슬포중앙시장 근처에서 감자해물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했다. 경윤 샘은 일산 한양문고에서 만난 지인인데, 앞으로 자주 등장하니 주목하시라. 여기저기 기웃거린 첫 외출이 고단했던지 배를 타자마자 15분을 달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