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_선생과_나

by 배경진

1.

우린 둘 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윤 샘은 만 60세, 난 만 68세. 공통점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한 뒤 자의에 따라 머물 곳을 정하고, 할 일을 정하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 다 가파도로 내려와 싱싱한 회를 매일 먹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별로 심심할 틈도 없지만, 암튼 심심하면 가파도터미널에 가서 매표일을 하는 그와 한담을 나눕니다.

2.

가파도터미널에선 한라산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그날 날씨가 맑을지 혹은 흐릴지, 한라산은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입니다.

가파도 초보인 내가 묻습니다.

“저기 저 한라산 꼭대기에 보이는 하양이는 구름이에요? 눈이에요?”

그럼 가파도 일 년 경험자는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만 친절하게 대답합니다.

“눈이지. 얼마 전에 눈이 왔잖아.”

“가파도에 눈이 왔다구요? 언제? 나도 모르게?”

“며칠 전에 여기에 비가 왔잖아. 여기 비 오면 한라산엔 눈이 내린다구. 누군가 SNS에 사진 올린 거 보니 많이 왔던데. 저건 눈이 맞아요.”

나는 화제를 돌립니다.

“오늘 바다의 파도는 어떤 편이에요?”

“이 정도면 장판바다지. 정말 잔잔하잖아요.”

약간 바람이 센 것 같긴 하지만 일 년 동안 매일 매표소에서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에게 표를 끊으면서 바람에, 파도에 민감했을 그이기에 데이터 입력량을 믿어줍니다.

저 멀리서 블루레이호가 파도에 앞머리를 끄덕끄덕대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배로 나갈 승객의 표를 끊어야 하기에 그는 매표소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향합니다. 집. 그렇네요. 내게도 가파도에 집이 생겼네요. 흐뭇합니다.


3.

경윤 샘은 일산 한양문고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한양문고 바로 뒤에 집이 있던 나와 서점 붙박이에 가까웠던 샘과는 오다가다 부딪히기도 하고, 인문학 저서가 한 가득인 그가 강연을 하면 가끔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올 봄 가파도 첫 방문에서 그를 딱 마주치곤 너무 놀랐지요. 아니, 샘이 어떻게 여기에? 가을에 다시 방문해 장기간 머물 숙소를 부탁했더니 블루오션펜션, 여기 주인장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가파도 생활 처음인 저는 그에게 원대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물어 해결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4.

경윤 샘은 가파도터미널에서 일 년 근무한 뒤 얼마 전 재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니 나와 비슷하게 일 년을 같이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터미널 근처로 집을 이사했답니다. 에어컨, 보일러, 실내 화장실, 바다가 보이는 거실 등 이전 집에 비해 완벽에 가깝다며 자랑이 심합니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면 초대한다고 하네요. 날짜가 정해지면 모슬포에 나가 제주삼겹살을 사 들고 파티에 참석해야겠습니다.


5.

오늘 비로소 짬이 나서 신간인 <<장자를 거닐다>>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배경진 님, 가파도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2024.12.10. 김경윤.” 이 책은 내가 여기서 짬짬이 읽어 볼 요량으로 가져왔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루레이호_오늘은_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