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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름성게를 잡는다. 춘희 삼촌은 바닷가에 서 있는 내게 묻는다. “순신 언니 물에 들어감샤?” 방금 도착한 옥자 삼촌은 빙삭이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같이 물질허주?” “그러게요. 십 년만 젊었어도.” “3, 4년만 일찍 왔어도 됐젠이.” 정말이지 나도 바당으로 뛰어들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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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베프는 서쪽 바당, 바로 내 앞에서 마라도를 바라보며 숨비고 있다. 숨비다란 물질하다와 동의어다. 30여 명의 삼촌들은 대부분 노란 오리발인데, 베프만 파란 색이다. 가까이 정자가 있어 오늘은 거기 앉아 삼촌들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내리꽂히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지 않아도 되겠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잠깐 ‘블루’에 다녀와도 파란 하늘, 파란 물살 아래서 오르내리는 파란 오리발만 찾으면 된다. 아, 저기다!
3
삼촌들은 오전 7시 무렵 바당에 들어 11시가 가까우면 나오기 시작한다. 오랜 물질로 굳어진 약속이다. ‘시마이’ 30분 전쯤 하나둘 오토바이 부대가 나타난다. 남편이나 아들이 물마중을 오는 것이다. 물마중이란 해녀가 무거운 테왁을 갯가로 끌어올리기 힘드니 남자들이 마중을 나오는 일이다. 정차된 전동차를 보고 아내 혹은 엄마를 찾아내 근처에서 기다린다. 나는 물마중하러 나온 이들을 보면서 임마중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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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가파도소나이’를 운영하는 현덕 씨는 이모 영열 삼촌의, 재윤 삼촌은 아내 계순 삼촌의 물마중을 나왔다. 물이 봉봉 들어오는 밀물을 피해 갯가 가까이 헤엄쳐 나온 해녀들. 남자들은 최대한 그들과 가까운 바닷가로 내려가 갈고리가 달린 끈을 던진다. 해녀들은 그걸 망사리에 걸고 위에서는 당긴다. 성게가 가득한 물 먹은 망사리는 꽤 무거워 보인다. 전동차까지 한 걸음 떼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해녀를 맞는 남편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미안하다. 언제까지 하도록 냅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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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 망사리는 재윤 삼촌이 끌어주었다. 그녀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물에서 나온다.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표시리라. “망아리(망사리)만 누가 끌어내 줘도 한 10년은 더 할 것 닮아(같아).” 하고 매일 노래를 한다. 나라도 올려줄 수 있었으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청년에게 부탁하고 해녀 여럿이 n분의 1을 했는데, 마을엔 이제 청년이 씨가 말라 그도 안 된다. 베프는 망사리를 끌고 올라오기 힘들 때면 혼잣말을 한단다. “아이구, 이놈의 성게(혹은 소라), 누가 져다 먹어버렸으면 좋것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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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때는 오토바이가 앞서고, 전동차가 따른다. 가파도 해녀는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70대, 80대 고령이다. 이제 저 어른들 이후로는 잠수의 맥이 끊기겠구나. 나는 그들의 뒷모습에다 대고 기원했다. ‘용왕 할망, 저들이 오래도록 무난하게 물질할 수 있도록 도와줌써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