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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레지던스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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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서 만났던 뜻밖의 공간 둘. 캠핑장 ‘태봉왓’과 ‘가파도 레지던스’다. 둘은 동쪽 바닷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존재를 드러낸다. 일출은 일출대로, 일몰은 일몰대로 고즈넉하게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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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예술재단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가파도 레지던스에는 2018년부터 2025년까지 53명의 예술가가 다녀갔다. 한 해에 적게는 5명, 많게는 11명. 다양한 작가와 화가가 머물렀다. 눈에 띈 이로는 시인 김해자, 소설가 장강명, 김금희, 김연수, 김숨, 박상영 등. 한 장 한 장 작품을 넘겨봤던 작가들이다. 작업실엔 그들의 출판물이나 메모, 사진으로 흔적이 남았다. 매해 팀을 이룬 예술가들의 단체사진을 보니 함께 창작하고, 바닷가를 거닐고, 밥을 해먹고, 술잔을 기울였을 시간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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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4월부터 석 달 동안 7명이 동고동락했다. 시인 안상학과 새를 그리는 화가 이우만을 비롯해 김도영, 포질(우즈베키스탄), 하지 오(재일 조선인), 하셀 알람 키(아랍에미리트), 볼튼(영국) 등. 그들이 가파도의 자연환경과 작품세계를 연결한 전시가 레지던스 내 오픈 스튜디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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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 3세인 하지 오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여성과 이름 없는 개인들의 침묵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가다. 연작 ‘할머니 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대마도에서 제주 출신 해녀 가족을 인터뷰했던 내용이 영상으로, 음성으로 흐른다. 나는 오 작가의 방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비록 작가도, 해녀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앉아 해녀들의 거친, 혹은 조금은 슬픔이 묻어나는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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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시인은 ‘블루’에 자주 들러 안면이 있었고, 이우만 화가는 내가 낚시 관람에 입문한 날 처음 만났다. 안 시인은 직접 낚싯대를 잡았으며, 이 화가는 꽃멜을 맨손으로, 뜰채로 잡아 그날 저녁 내가 생애 첫 꽃멜 회를 시식할 수 있도록 공헌을 한 인물이다. 꽃멜과 참돔을 곁들인 그날 밤의 한라산은 참 달달했더랬다. 안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고을 안동으로, 이 화가는 서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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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예술가가 가파도의 찬란한 봄기운을 받으며 창작해낸 작품 전시는 7월 25일까지다. 그때까지는 출입이 자유롭다. 안상학 시인이 머물렀던 스튜디오는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하기에 그만이다. 이우만 화가의 스튜디오는 가파도의 다양한 새를 찍은 비디오를 반복해 볼 수 있다. 나는 자주 들러 고요가 철새처럼 내려앉은 두 공간을 서재처럼 이용할 요량이다. 이 작은 섬에서 지낸 날을 반추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글로 남길 것인지를 생각하는 곳으로….

가파도 레지던스. 가파도문화예술창작공간이다.
안상학 시인과 포질 기자가 함께 머무르던 공간. 요즘 가끔 들르는 내 서재다.
가파도 레지던스는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이우만 화가의 '노랑발도요를 위한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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