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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허니 말아줍서, 안 풀어지게

by 배경진

가파도에는 미용실이 없다. 모슬포로 나가야 한다. 퍼머는 일산 올라갈 때 하지만 자주 하는 커트는 모슬포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처음 미용실을 정할 때 생각했다. 나이 많은 삼촌들이 주로 가는 곳이면 어떨까. 제주시나 서귀포시엔 세련된 업소도 많겠지만, 이왕 삼촌들 곁으로 왔으니 미용실도 좀 올드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을 찾고 싶었다.


종종 갖는 나의 반나절 휴식 코스는 산방산탄산온천-바람수제비-홍마트다. 온천을 하고 모슬포우체국 앞에 있는 바람수제비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 보니 미용실 한 군데가 눈에 띄었다. ‘아름다움의 시작 인순이미용실.’


안을 들여다보니 퉁퉁한 중년 미용사 둘이 머리를 자르거나 퍼머를 마는데 손님들 모두 나이가 지긋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퍼머 중인 삼촌들 서넛이 믹스 커피를 직접 타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귀 기울여보니 대부분 해녀 삼촌들인 듯했다. 모슬포에도 해녀가 많은데, 제대로 들어갔다! 미용실 안엔 고구마와 단호박 상자가 쌓였는데, 미용사 하나는 머리를 말다가 단호박 두 상자를 팔기 시작했다. 머리를 자르는 기술이 그다지 흡족하진 않지만 ‘머리카락은 금방 자라니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미용사 둘의 손이 어찌나 빠른지 순환에 막힘이 없다. 커트 비용으로 ‘현금’ 만 원을 내고 나왔다. 뒤따라 나서는 삼촌들 퍼머 모양이 똑같다. 짱짱하게 말았다. 오래 가겠다.


나중에 순신 삼촌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삼촌도 여기만 간단다. 뿐만 아니라 가파도 삼촌 대부분이 애용한단다. 단골은 커트에 5천 원. 속내를 모르고 들어간 집이 가파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속으로 살짝 놀랐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주인과 단골의 부드러운 교감. 아, 그래서 주인과 손님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자연스러웠던가 보구나.


나는 벌써 여러 번 애용했다. 삼촌들은 퍼머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앉아 날씨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밭농사 이야기, 물질 이야기를 나눈다. 다 알아듣진 못하지만 모슬포 해녀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선택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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