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쾰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내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 D2C 브랜드의 승마 박람회 Spoga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출장은 단순히 행사 참석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신상품 개발 아이디어를 얻고 유럽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고자 함이었다. 어떤 브랜드가 참가했는지, 그들이 주력하는 제품이나 마케팅을 보다보면, 온라인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진짜’ 현지 시장 분위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람회를 둘러보던 중, 미리 약속되어 있던 신생 브랜드 대표와 미팅을 하게 되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걸크러시 느낌에 카리스마가 있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너무 멋져서, '와- 이 사람처럼 나도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부스는 또 얼마나 잘 꾸며 놓았는지.
한 눈에 보아도 이 사람이 마케팅이나 브랜딩 분야에서 꽤 많은 경험을 쌓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제품 패키징, 라벨 디자인, 회사 스토리 모두 빠질게 하나도 없이 이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회사와 협업하면 재미있는 시너지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그쪽에서 먼저 마케팅 협업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꽤 흥미롭게 들렸다.
하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이상한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협업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쪽에서 주어야 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정작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파트너’라며, '윈윈'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파트너다운 균형이 아니었다.
그 순간 예전에 함께 일했던 회사의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참 존경하던 유대인 사업가였는데, 비즈니스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에게 했었다.
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에게 무엇을 '얻으려고만' 하지 마라.
사람들은 다 느낀다.
약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비즈니스를 해라.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매 순간 진정성있게 행동하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가 스스로 알아서 나에게 먼저 더 주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이 말이 조금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미팅을 하면서 그 말이 얼마나 옳았는지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심혈을 기울이고 잘 계획하여 만들어 놓았을 브랜딩은 분명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상대방이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려는 의도만 느껴졌고, 믿고 함께 갈 수 있는 회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결국 우리는 돌아서서 이 회사와는 협업하지 않기로 했다.
의심할 것도 없이, 100프로 동의하에 매우 빠르게 내려진 결정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많은 생각이 남았다.
그날 출장에서 돌아오며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진정성’이라는 단어였다.
요즘은 브랜딩을 등한시 하는 회사를 찾기 어려운 시대다. 그리고 충분한 자본만 있다면 훌륭한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감각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멋진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이제는 AI까지 더해져 그 속도와 완성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파트너이든, 협업 인플루언서이든, 소비자이든—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행동하는 사람과 조직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다르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차이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은 고객을 끌어오고, 팬덤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오래가는 회사를 만든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진정성이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를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눈치채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은 표면적으로는 신상품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마케팅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비즈니스와 마케팅 모두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얼마나 화려하게 보여지는지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진정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