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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캐나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법.

by 김예인

20대 초반, 처음으로 길게 미국에서 인턴을 했을 때도 외로움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기에, 그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다 27년 만에 알게 된 사실, 난 외로움을, 아니 불안함을, 누구보다 많이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땐, 항상 가족,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기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미국에서 인턴을 했을 때도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았고,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과 인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지냈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새 없었다. 그런데 캐나다는 완벽히 달랐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오긴 했지만, 최소 2년에서 길게는 4년,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민까지 고민을 하고 와서인지 느끼는 바가 사뭇 달랐다. 캐나다에 온 이후로, 어쩌다 보니 한국인이 없는 호텔, 카페, 그리고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주변에 맘 편히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도 잘 지냈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고, 그중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가정이 있어 자주 만나기도 어려웠다. 그뿐만이랴, 항상 영어로 대화하려니 누굴 만나던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날이 추워지면 더 외롭다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쫙 풀리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있을 순 없었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다음날 도시락도 싸야 하고, 빨래도 해야 했다. 나를 챙길 사람은 나뿐이니까. 이렇게 모든 일을 혼자 해내다 보니 외로움인지 불만인지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감정들이 쌓였다. 처음엔 갑자기 캐나다에 오자마자 구매한 이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이불? 싶을 수 있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뭐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자 방 전체가 이상해 보이고, 심지어는 방을 치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방이 지저분해지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 번 엉망이 된 방은 더 치우기가 싫어졌고 와중에 투잡을 시작하며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고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놓이기 시작했을 때 우울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새로운 산업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모르는 용어는 넘쳐났고 미팅을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영어가 안 들리니 혹시라도 수습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잘리게 될까 봐 걱정하며, 하루하루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유리 위를 맨발로 걷는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때의 난, 캐나다의 삶의 목표를 한국의 것과 똑같이 설정했다. 20년을 넘게 쌓아온 인간관계와 경험을 캐나다에 온 지 몇 달 만에 똑같이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최소 몇 년간 알고 지냈던 친구에게 느꼈던 편안함을 만난 지 몇 개월 밖에 안 되는 친구에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느꼈던 따뜻함과 여유를 혼자 살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와중에 월세 90만 원을 내면서도 저축은 한국에서만큼 하고 싶었고, 워킹홀리데이인 만큼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거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나간 밋업!

그러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고민해 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없어서, 친구가 없어서, 친구가 없어서.. 그리고 너무 일, 집만 반복해서, 딱히 하고 싶은 무언가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도 만날 친구들은 많았다. 옆에서 도와주고 지지해 줄 친구들이 있는데 괜스레 혼자 마음을 닫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혼자 선을 긋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한 번은 호텔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캐나다에 혼자 있는 게 가끔은 버겁다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나 있잖아! 친구! 무슨 소리야! 그리고 너 캐나다 온 지 이제 1년도 안되었어.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아차 싶더라.

혼자서 기준선을 냅다 하늘 꼭대기에 긋고 힘들어했다.



주말에 혼자 중고서점

그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사실 해결할 문제는 없었다. 마음을 조금은 더 편히 먹기로 다짐하고 그동안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세워두었던 플랜을 지웠다. 나를 엄격하게 바라보기보다,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칭찬해 주기로 했다. 연고 없는 해외에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닌가! 먼 미래만을 생각하지 말고 당장 오늘을 착실하고 행복하게 보내기로. 그리고 외롭다는 감정을 너무 나쁘게만 치부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언제 또 이렇게 외로울 일이 있을까 싶더라! 지금이 외로움을 즐기기 딱인 시기인 거다. 혼자인 시간을 외롭다고만 생각하기보다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 사본 튤립

이직한 회사에도 적응이 되기 시작했고 점차 캐나다의 삶이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때쯤, 책상에 달력을 꺼내고 매월 하고 싶은 일들을 작게 그렸다. '이번 달은 친구랑 맥주도 마시러 나가고, 집에 꽃도 사서 꽂아두고 먹고 싶었던 에그타르트도 사 먹고, 스키도 타러 가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걸 하나씩 할 때마다 표시를 하면서 다음 달 계획을 고민하기도 했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주말에는 우선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카페로 향했다. 샤워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상쾌해졌고 카페까지 가는 날에는 아주 뿌듯한 하루가 되었다. (물론 침대에 누워 빈둥빈둥거렸던 날들도 많긴 했다ㅎㅎ)



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타인으로 인해 외로움을 채우는 게 아니라 혼자서 외로움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젠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을 버티는 방법도 나름 알고 있다.



워킹홀리데이를 오기 전에는 단순히 집을 구하는 게, 직장을 구하는 게, 돈을 버는 게 제일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캐나다도 한국과 별 다를 게 없더라. 특히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후 그걸 더 느끼고 있다. 삶은 똑같이 흘러간다. 그 안에서 나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한 거였다. 그렇게 오늘도 주말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카페에 나와 따뜻한 블랙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하나 시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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