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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로 일하려고 캐나다 갔냐고 물으신다면..

by 김예인
5월에도 패딩은 필수

언제나 첫 출근 날은 참 떨린다. 전 날 출근을 위해 산 검은색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어주고 출근길에 나섰다. 첫날이라 그런지 날씨가 참 좋다. 트레인을 타고 도착한 호텔에는 오늘 트레이닝 해 줄 Stas라는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임무는 다음 날 있을 행사를 위한 룸세팅하기. BEO라는 종이에 행사에 대한 모든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고, 그대로 준비만하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Stas가 알려주는 대로 의자를 나르고 주최 측에서 요청한 대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100개 정도 되는 의자를 세팅하고 나란히 줄을 맞춰주니 금세 끝이 났다. 일을 하면서 동료에게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보니 2주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을 다 아냐고 다시 질문을 하니, 일 자체는 쉽다고 말하며 근데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진 않다고 말하더라.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동료가 그렇게 말하니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걱정해 봤자 바뀔 건 없고 해 봐야 아는 것 아니겠냐며! 그렇게 몇 개의 행사장과 다음 날 음식 서빙을 위해 사전 준비를 마무리하고 퇴근을 했다. 힘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호텔에서 인턴을 했을 때도 뱅큇(연회) 부서에서 몇 번 일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다른 부서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지원을 했는데 딱 2번 일을 하고 그 이후로는 다시 자원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강했고 음식 몇 접시를 한 번에 서빙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 나르는 게 힘들었는데 8시간 시프트가 끝나면 몸이 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호텔을 지원할 때, 뱅큇 부서만은 피하자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테이블 옮길 때 쓰라고 동료가 준 장갑

주요 업무는 이벤트 준비를 위한 공간 세팅, 음식 세팅 그리고 이벤트룸 정리이다. 대부분의 이벤트는 대부분 비즈니스과 관련된 미팅, 포럼, 혹은 사내 이벤트였고 그렇기에 엄청난 서비스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큰 특이사항 없이 물 흐르듯이 행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하셨다. 다행히 음식은 뷔페식이기에 직접 서빙을 하진 않아도 되었지만 접시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사실 다른 것보다도 테이블과 의자들을 나르는 것이 제일 힘들긴 했다.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뱅큇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급여였다. 매달 90만 원의 월세와 10만 원의 교통비, 휴대폰 비용, 식비 그리고 기타 등등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일부를 저축하기 위해선 최저시급(앨버타주 기준 $15) 만으로 일하기는 조금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축하는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저축하던 금액의 최소 50%는 저축하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시급의 잡이 필요했다. 호텔에서 제안받은 포지션인 Conference Porter(Banquet Server)는 시급이 $19.6였고 팁도 추가적으로 지급되었다. 팁까지 생각했을 때,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꽤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출근하면 빼곡하게 적혀있던 오늘의 할 일

두 번째, 영어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영어를 아예 못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문제없이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유창하지도 않다. 항상 그 애매한 실력으로 줄타기를 하곤 했는데 오랜만에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놓이니 무서웠다. 뱅큇부서에서도 고객들과 소통하는 일이 많긴 하지만 주로 짜인 스케줄대로 이벤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점이 안심이 되었다.



세 번째, 주로 평일 오전에 근무를 시작해서 이른 오후에 퇴근을 할 수 있는 시프트였다. 면접을 보면서 주로 주어지는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매번 유동적이지만 비즈니스 미팅이 주이기에 평일(월-금) 오전 6-7시부터 8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고 주로 주말에 오프(쉬는 날)여서 마음에 들었다.



네 번째, 프런트데스크 부서의 경우 다른 부서에 비해 경력이 없으면 바로 업무를 시작하기 어려운 편이다. 사람들에게 호텔리어라고 말하면 대부분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 체크아웃을 포함한 객실 예약, 고객의 문의에 대응하는 프런트데스크 부서를 주로 생각한다. 다만 프런트데스크는 어느 정도의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했던 호텔의 경우, TO가 났을 때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가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직장을 빠르게 구하고 싶어서 뱅큇부서를 제안해 주셨을 때 냉큼 받았던 것도, 이력서를 돌리고 인터뷰를 보기 위해 호텔을 들렸을 때 보였던 밝아 보이던 팀의 분위기도 한몫을 하긴 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나름 이성적으로 결정했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출근 둘째 날부터 큰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발에 불이 난 것처럼 뛰어다녔고, 오피스에서 일하는 게 적응되었던 체력이라곤 1도 없는 몸뚱이 덕분에 요령 없이 피곤을 온몸에 쌓았다.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싶다는 다짐은 그대로 사라지고 퇴근을 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쓰러져서 휴식을 취하길 반복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의 일을 퇴근한 이후에도 집으로 끌고 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호텔은 퇴근하면 끝이다. 물론 다음 날 큰 이벤트가 있으면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럴 땐 더 잘 먹고 푹 쉬면 될 일이다. 퇴근을 하면 진짜 퇴근이라는 게 행복했다.



손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난 생각보다 서비스업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물론 간혹 마주치는 힘든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고객은 나이스하고 친절했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했지만 계속 웃다 보니 더 행복해졌다고 할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동료들이 남겨주고 간 포스트잇

제일 중요한 장점을 놓칠 뻔했다. 나에겐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동료들이 좋다. 그동안의 짧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알게 된 건 일은 버텨도 사람은 못 버틴다는 것. 물론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동안 호텔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전부는 아니었다^_^)의 동료들은 친절하고 정이 있었다. 산업의 특성상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들 도와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호텔 적응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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