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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춥고 매트리스는 없는 캐나다 이삿날

by 김예인
터질 것 같던 나의 캐리어들

2주간 머물렀던 호스텔을 뒤로하고 드디어 첫 캐나다 집에 입성하는 날. 2개의 커다란 캐리어와 간신히 잠근 백팩을 둘러매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데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며 택시 안에서 가방을 풀고 편히 자리를 잡았다. 다운타운에서 약 10분 정도 달리니 높은 빌딩들은 모두 사라지고 집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간혹 가다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몇몇 보였지만 정말 몇몇일 뿐, 대부분 하우스 들이었다. 몇 년 전 미국 인턴을 할 때에는 콘도(낮은 층수의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에 살았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현지인들이 산다는 하우스에서 살고 싶었는데, 이제 그런 곳에서 지낸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장장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엔 큰 이층 집이 날 맞이해 주었다. 집주인의 도움을 받아 짐을 2층으로 옮기고 한숨을 돌리려 하니 방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바닥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저녁 중으로 매트리스도 도착을 할 거고, 그전까지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변에 있는 가까운 달러라마(한국의 다이소 격이다)로 향했다. 간단한 청소용품과 생활용품만 구매하려 했는데 어느새 양손, 그리고 배낭까지 짐이 가득 차버렸고 이와 상반되게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역시 날 추울 때는 국물이 최고다

우선 몸도 녹일 겸 달러라마 옆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무얼 시킬까 한참 고민하다 가장 많은 종류의 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를 한 그릇 시켰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쌀국수의 국물을 들이켜니 추위에 얼어붙어있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먹으면서 보려고 휴대폰으로 틀어두었던 유튜브는 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먹었더니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했다. 역시 뭐가 좀 들어가니 힘이 난다. 곧 매트리스가 도착하기로 해서 집으로 어서 들어가 봐야 한다.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매트리스는 Kijiji라는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했다. 이사를 하기 전에 미리 연락을 했고 이삿날에 맞춰서 배달을 해주시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바닥 청소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즈음, 판매자분에게 연락이 왔다. 내용은 즉슨, 딸이 집에 돌아오게 되어서 매트리스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이전 글에서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난 모든 가구가 없는 방을 계약했다. 고로 매트리스가 없으면 땅바닥에서 자야 한다는 것.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선 아마존을 뒤져서 다음날 배송이 되는 매트리스를 찾아냈다. 가격은 $200로 약 20만 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늘 거실 소파에서 자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감사하게도 게스트룸을 내어주시면서 오늘은 그곳에서 자라고 해주셨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사실 한국이었으면 바닥에서 하루 자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해외에 나오니 별게 다 서러워지더라. 그래도 어찌어찌 일이 잘 풀렸다. 그럼 이제 침구를 사러 다시 나가보자.



이고 지고 집으로 들고 온 나의 침구류

평소 같았으면 하루에 두 번 외출은 가당치도 않은 집순이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이번 외출의 목적은 이불, 베개, 그리고 침대 시트. 이사한 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인 월마트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시킨 매트리스 사이즈에 맞는 침구류 중에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뒤지고 뒤져서 깔끔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동안 직접 침구류를 구매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구매해 주시거나 보내주신 링크 중에서 골랐을 뿐,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구매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돈으로 구매한 건 아니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편지인 줄 알고 받으면서 장난스레 '나 지금 읽어본다~' 하며 열어본 봉투에는 돈이 있더라. 놀라서 이게 뭐냐고 하니 선물 주면 짐 될 것 같아서 현금으로 준다고 하며 너 가서 그걸로 필요한 거 사서 쓰라고 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선물에 놀라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가서 꼭 잘 쓰겠다며 말했고 친구가 준 마음으로 따뜻한 침구류를 샀다.



침구류를 사고 어느새 눈으로 바뀐 비바람을 뚫고 집에 도착했다. 게스트룸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니 그제야 좀 긴장이 풀렸다. 당장 이틀 후부터 새로운 호텔로 출근을 해야 하는 터라 다음날도 바쁠 것 같지만, 그래도 머무를 곳과 일할 곳을 찾았다는 것이 퍽 안심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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