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다이어트와 통장 쪼개기 비결 대공개
자고로 요리는 불맛이라 배웠다. 엄마도 동생도 심지어 일하다 만난 셰프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인덕션이 편하긴 한데 그래도 요리는 불맛이지'
그래서인지, 나의 [집 구하기 체크 리스트]에는 [주방에 가스레인지가 있는가?]라는 항목이 존재했다. 요리를 잘하지도 않고 조리에 가까운 요리를 할 뿐이지만, 그리고 내 성격상 매일 쓸고 닦을 거 생각하면 인덕션이 훨씬 관리하기 편한 걸 알면서도 이왕이면 나는 가스레인지 있는 집을 선호했다. 왠지 가스레인지가 있으면 요리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지금 집을 봤을 때도 주방에 인덕션이 아닌 쿡탑이 쿡탑이 있는 걸 보고 흡족해했었다. 2구인 건 아쉽지만.
그리고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시가스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가스를 쓰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상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는 건지 따로 신청을 해야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현대인이 뭔가 막히고 궁금한 게 있을 때 하는 일은, 바로 인터넷 검색.
바로 관리비, 공과금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했고 챗지피티에게도 일반적으로 공과금에 들어가는 항목과 아닌 항목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챗지피티의 답은 이랬다.
'오 그렇구나. 가스는 공과금 포함... 아니 근데 부동산에서 가스는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공과금 항목은 정해진 규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세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관리실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헷갈리는 정보가 있을 땐 혼자 생각하기보단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는 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란 걸 일하면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전화에 거부감이 없었다.
새로 입주할 세입자라고 이야기하자 관리실에서는 내 궁금증에 빠르게 답변을 해주었다. 내가 살게 될 오피스텔의 경우 관리비에 포함된 항목은 [청소와 소독을 포함한 일반 관리비, 전기, 온수, 수도]였다.
일단 여기서부터 챗지피티가 알려준 정보와는 다르다. 가스의 경우 전입전출 시 신고를 해야 하고 인터넷 등 필요한 다른 항목은 별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가스는 전기나 수도처럼 일상에 필수품이 아닌가? 왜 이것도 따로 부과하지?라고 생각했지만 가스를 쓰지 않는 가구도 있으니 이제 필수는 아닌가 보다 하고 넘겼다. 어쨌든 새로 살 곳의 룰을 알았으니 따라야지.
그리고 이곳의 룰을 대략 알았으니 이제 전략을 짤 때가 됐다.
혼자 살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은 이제 너무 유명하다. 하도 많이 봐서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격언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이 200% 공감될 때는 나에게 현실이 됐을 때뿐이다.
일단 집에 당연하게 있어 내 일상에 필수가 된 것들이 무엇인지, 내 일상을 더듬어가며 하나하나 써보기 시작했다. 물은 정수기를 쓰고, 요리할 땐 가스레인지를 써야 하고, 설거지할 땐 주방세제, 빨래할 땐 세탁세제, 인터넷은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사용하고. 이것만 해도 벌써 손으로 꼽기 힘들어질 만큼 많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당연한 일상 리스트를 정리하고 이제 그 당연한 일상에 드는 값을 계산해 본다.
물을 마시려면 물을 사야 하고, 가스레인지를 쓰려면 도시가스를 신청해야 하고, 인터넷을 쓰려면 인터넷 가입하고 설치해야 하고... 여기에 정규 방송을 볼 생각이라면 iptv 설치비가 추가되고, 그 모든 걸 보려면 TV가 있어야 하고, 베란다가 없으니까 빨래를 말리려면 빨래 건조대가 필요하고...
정말 내가 꽁으로 살긴 했구나.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값을 계산하면 할수록 그간 내가 얼마나 쉽게 살아왔는지 여실하게 느껴졌다. 아 인생은 유료 구독이었지. 무료 체험 기간이 길어서 내가 잊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남들보다 무료 구독 기간이 길었던 덕분에 유료 구독을 준비할 여력이 있었다는 거다. 하도 보고 들은 게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쌓인 지식들이 [마음의 준비]와 [통장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줬다는 거다. 무작정 뛰어들어도 어떻게든 살았겠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두니 마음의 부침을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지도...?
줄자 집착러로 살며 집에 들일 최소한의 가구를 정한 다음 스텝은 필수제를 어떻게 취하느냐였다.
아무리 줄이고 산다고 해도 책상과 의자, 침대는 필요하듯이 인간의 삶을 영위하려면 반드시 준비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어떤 형태로 취할 것인지 선택할 차례였다.
일단 생활의 필수품인 물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내가 선택한 물공급 방식은 구매다. 2주에 한 번 정도 쿠팡에서 2L 생수 묶음을 사고 있다. 일단은 임시고 이 방법도 불편한 점이 있지만 당분간 유지할 거 같긴 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정수기를 들여야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보리차를 끓였던 시절을 제외하면 우리 집은 항상 정수기가 물 보충 역할을 했다. 게다가 나는 물을 아주 많이 먹는 아이였기에 당연히 정수기를 사는 게 이득일 거라 여겼다. 그리고 이쯤 되면 반복되는 패턴, 절대 정수기 사지 말라는 조언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내 마음을 관통시킨 핵심 키워드는 이랬다 '초반부터 구독을 늘리지 마라'
그냥 사 먹어라, 정수기가 얼만데 이런 말을 했다면 잔소리로 치부했겠지만, 구독을 늘리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은 제법 그럴듯해서 듣자마자 마음에 새겨졌다.
현대인은 모두 구독에 묶여 살고 있지 않은가. 아주 기본적인 휴대폰, 인터넷 약정부터 시작해서 온갖 ott 구독까지. 인터넷이랑 TV는 구독 외에는 방법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쳐도 구독을 늘려 버리면 이사할 때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는 거였다. 그리고 본가에 살 때야 4인 가구가 물을 소비했으니까 정수기를 썼지, 내가 물을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정수기까지 들일 필요 있겠느냐는 거였다. 그것도 제법 값이 나간다며.
"근데 물 사 먹으면 귀찮잖아. 페트병 버리는 것도 일이라고."
"좀 귀찮아도 나갈 때 버리기만 하면 되잖아. 정수기는 공간도 차지하고 필터도 갈아줘야 해. 브리타는 필터값에 설거지는 덤이고. 네 성격상 잠깐 귀찮고 뒤처리가 깔끔한 게 낫지 않겠어?"
과연 경력직은 달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이야기에 세 가지 삶에 대해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정수기가 있으면 편하겠지만 한 달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에 약정 기간이 보통 5년인 걸 계산하면 아무리 싸게 접근해도 5년에 60만 원, 검색해 보니 정수기 렌탈은 정말 싸야 1만 원대 보통은 2~3만 원대가 되는 거 생각하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아무리 5년이어도 물에 100만 원을 넘게 쓴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브리타는 가까운 사람 중에는 이모가 쓰고 있어서 들어보니 습관이 되면 편하지만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려면 결국 두 개는 있어야 하고 이것 역시 유지 관리비가 제법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물을 사는 것에 대해서도 안 좋은 견해가 있긴 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미세 플라스틱 이야기는 말모. 도대체 물을 사면 얼마나 드나 싶어 찾아보니 2L 12개 묶음 제품이 보통 5~6천 원 사이. 지금 몇 달간 살며 체크해 보니 물 마시거나 요리할 때, 커피 내릴 때 쓰는 걸 생각해 보면 12개 묶음을 사서 2주 정도 사용하니 그렇게 따지면 한 달에 많이 나와 봐야 만 원 초반대로 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니 나한테 물은 공짜였는데 물에 값을 매겨야 한다니... 심지어 매일 문 앞에 쌓이는 플라스틱 물병을 보면 심란하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 전까지는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 방법은 다른 방법으로 갈아타기 쉽지만, 정수기나 브리타를 들이게 되면 다른 방법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물이 이럴진대 다른 분야, 인터넷, TV, 가스 등으로 넘어가면 일이 더 복잡해지고 고정 생활비도 더 늘어나게 된다. 이 과정을 다 쓰기엔 너무 길고 집마다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르니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내 경우엔 이렇게 정리했다.
인터넷 → 기존에 쓰던 알뜰 통신사(핸드폰)와 결합 할인되는 곳 가입
도시가스 → 도시가스에 이사 사실 고지 후 검침 완료 (*가스앱으로 사용 금액 확인 중)
수도/전기 → 한 달 치가 관리비에 포함돼서 나옴
인터넷은 가격 비교로 유명한 사이트에서 상담사에게 도움을 좀 받았다. 인터넷 단독, 인터넷+iptv 합친 가격, 통신사 할인 등에 대해 문의하면 상담사가 친절하게 알아봐 준다. 나의 경우엔 업무 특성상 iptv를 쓰는 게 맞단 판단이 들어서 포함된 요금제로 가입했는데 대부분은 인터넷 가입만 해도 충분할 거다.
나의 일상이지만 한 번도 값을 지불해 본 적 없는 것들에 가격을 매겼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필수재들을 정리할 때 내가 했던 게 또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꽤 도움이 된 거 같다.
내가 만들어둔 비책은 바로 통장 쪼개기였다.
통장 쪼개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소비단식 일기]를 읽고 난 후였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책인데 브런치북 수상작이라고 해서 더 놀랐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되는 데로 소비하며 살던 사람이 자신의 소비 패턴을 돌아보고 소비단식을 통해 빚을 갚고 경제관념을 세우게 됐단 내용이었다.
과소비한 것도 없는데 빈약해진 잔고와 줄지어 들어오는 카드값을 보며 가슴이 철렁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벌이가 불안정한 나 같은 프리랜서는 그게 일상이었고. 혼자 사는 삶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돈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했다.
내 앞에 결제해야 할 가구 리스트가 줄을 서고 그 옆에는 새로 구독해야 할 공과금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에서 당장 수입이 없이 골머리를 앓던 어느 저녁, 이거 어떻게든 미리 방법을 찾아두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에도 검색해 보니 온갖 통장 쪼개기 방법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날고 기는 고수들의 비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려웠다. 보통 이렇게 엄두가 안 나면 화르륵 불타 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들기 때문에 (원래 내 성격이 금방 타오르고 금방 식는다) 열정에 불타올랐을 때 빨리 내 삶에 적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차 떼고 포떼고 나만의 방법으로 1차 통장 쪼개기를 시도했다. 일단 해놓고 아니면 수정하면 되니까.
현재 내가 활용하는 통장은 총 5개다.
1. 월급 통장 및 생활비 자동이체 통장
내가 하는 모든 소득 활동이 들어오는 계좌
카드값, 보험, 건강보험 등 대부분의 자동이체가 연결되어 있음
2. 월세 및 고정지출 6개월 킵 통장
(월세, 관리비, 기타 고정 지출) x 6개월 금액 입금된 통장
갑자기 일이 끊겨도 6개월 기본 생활 유지 가능
일 시작하면 이 통장에 빠져나간 달수만큼 채워 넣기 (1순위)
3. 교육 통장
전화 영어, 헬스 1년 등록비 입금
그 외 새로운 것 배울 때 이 통장에서 빼서 쓰기
일 시작하면 매달 일정 금액씩 채워 넣을 예정 (2순위)
4. 1년 목표 금액 모으는 통장
목표 금액 정해놓고 모으는 계좌
예적금, ISA, 주식 등 여러 형태로 나눠져 있는데, 쪼개진 통장은 하나로 보고 합산
5. 정말 비상시에 사용할 통장
이건 진짜 최악의 경우에만 손댈 예정 아예 없는 돈 치고 살 거
여기 건들 바에는 일 없으면 쿠팡을 가라
한 달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는 살아봐야 알 문제라 그 부분은 감안하고 좀 뭉뚱그려 놓긴 했지만, 일단 이렇게 기준을 잡고 빅데이터를 쌓는 중이다. 게다가 카드값도 이사 초반에는 별별 일이 다 생기기 때문에 오버가 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대신 단 하나의 원칙은 모든 카드값은 일시불로. 어차피 나갈 돈 큰 금액이 한 번에 빠져나가야 살 떨려서라도 아끼고 살 테고, 미래의 나한테 빚을 넘겨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맞겠단 판단이 들었다.
원래 사람은 계획할 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불확실한 걸 제일 못 견디는 게 사람이니까.
심지어 불안형인 나에게는 이렇게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놓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해결된 거 같은 착각을 받는 게 좀 문제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이사 준비는 두 장의 카드로 해결했다. 한 카드로 몰아 쓰는 것보다는 나눠 썼을 때 혜택이 더 좋아서 그랬던 거였고 어차피 두 카드 모두 한 계좌로 연결되어 있고 카드값이 나가는 날짜도 같았기에 큰 문제없었다. 통신 요금, 건강보험, 실손 보험 등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돈도 모두 이 계좌에서 빠져나가게 바꿔버렸다. 이렇게 해두면 몇 달간의 빅데이터가 쌓여도 한 곳에 기록이 모이니 파악하니 편할 거였다.
월세와 관리비, 고정비 6개월치를 따로 모을 통장을 분리한 건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지금도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예상보다 길게 일을 쉬고 있다. 곳간이 줄어드는 불안을 최소화하려면 일정 생활비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월세와 관리비는 내 삶에 없다가 독립하면서 내 인생에 새롭게 추가된 비용이기에 따로 나눠두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교육비 통장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내 가치관을 흔들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 지금은 헬스와 전화 영어만 유지하고 있지만 이 통장에 잔고가 좀 쌓이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생각이다. 실제로 이사한 다음날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할 때 이 통장에 있는 돈을 일시불로 넣어버렸다.
그리고 1년 금액을 모을 재테크 통장. 이게 앞으로의 성패를 가를 거 같다.
사실 최근 몇 년은 예적금을 제외하면 재테크를 거의 안 하다시피 했다. 전 국민 주식 열풍이 불던 코로나 시절에 동학 개미로 참전해 국장과 미장, etf를 오갔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투자 초반에 처참히 실패한 국장 두 개와 정찰병으로 한 두 주씩 남겨둔 미장을 제외하면 재테크에 손을 놓은 상태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군중심리에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보니 다시 발을 담그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일 년에 반을 일하면 반은 강제로 쉬어야 하는 일자리 부족 사태를 겪다 보니 더더욱 있는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장독에 넣어뒀다 믿었던 내 돈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장독마저도 독립하면서 비고 있다는 걸 깨닫고 뭐든 다시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바로 뛰어들면 동학 개미 운동 때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크게 한 번 데인 걸 다시 경험할 거 같아서 일단은 통장 하나를 비워 돈을 모으면서 뭔가 해볼 생각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에 실패한 주식을 보는데, 큰 금액은 아니지만 수익률이 짜릿하게 나락 가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이 정도는 인생 수업비라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마지막 비상금 통장은... 정말 열 일이 없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겠지 하고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 있다. 온전히 나 혼자 힘으로 내 삶을 책임져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말로만 듣던 월세와 공과금의 압박이 시작되고 일자리는 없어 막막한 이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때에 어떻게 내 삶을 개척해 나가는지가 나의 앞으로를 결정하지 않을까?
부모님 집에 있었다면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게 피부로 와닿진 않았을 거다. 피부에 와닿지 않다 보니 모든 걸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당장 통장 사정은 지금보다 나았겠지만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았을지는 미지수다. 부모님 집에 살 때 매일 집안일을 하고 일이 있을 때 차로 모셔다 드리는 것만으로도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고 살았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리고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고 열심히 살 차례다. 다행인 건 독립하고 통장이 좁아지니 절로 전투력이 올라간다는 거다. 이 전투력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되어야만 한다. 이 독립이 실패해서 본가로 돌아가는 일만큼은 절대 추호도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최악의 수라는 걸 아니까.
1인분의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원래 어려운 게 더 재밌는 법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