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책임감의 무게만큼 두 발이 더 강하게 땅을 딛게 됐다
"조심히 가. 도착하면 전화하고."
"어 정리 좀 해놓고 연락할게."
유전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집의 이별 방식은 원래 간결하다. 길게 말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짧고 깔끔한 인사로 끝. 누군가의 관점에선 너무 건조하고 정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38년 간 그분들의 딸로 살아온 나의 입장에선 이 짧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문장이 함축되어 있는지 안다. 걱정은 되지만 딸의 결정에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우리 집의 문화다.
처음 내가 독립을 결정지었을 때 부모님은 우려를 표하셨다. 평소 딸들의 결정에 직접적인 표현을 잘 안 하는 부모님이 '굳이 왜 나가?'라고 물어봤을 땐 사실 나도 말문이 막혔다. 직장도 수익도 불안정한 프리랜서 딸이 20년 동안 잘 다니던 서울 출퇴근을 포기하고 독립한다니.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렇듯 내 부모님이 상상한 딸의 독립은 결혼이었다. 실제로 내 동생이 먼저 그 과정을 밟았고. 결혼에 관심 없어 보이는 큰 딸이지만, 어느날 인연을 만나서 데려오지 않을까? 그리고 작은딸이 그랬듯 신혼집을 구해서 나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던 거 같다.
하지만 (부모님 기준) 애석하게도 청개구리 큰딸은 결혼 대신 혼자사는 삶을 선택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일단 지금으로선 평생 혼자 살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독립을 결정하는 것은 나로서도 쉽지 않았고, 여러 생각과 고뇌가 있었지만 이걸 다 설명하려면 입이 아프므로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알아야 다음 단계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모호한 말로 독립하면 다른 가능성 (이를 테면 부모님이 바라는 결혼같은)이 열리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일단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보겠다는 뜻을 이해한 부모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가서 해보고 안 되면 돌아와.'
이정도면 부모님에게 받을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응원 아닌가?
이후로 더 이상 내 독립에 대해 말을 얹지 않는 부모님을 보며 반드시 열심히 살아남아겠다고 다짐했다.
이사하던 날 아침, 엄마는 잘 가라고 인사한 후 출근하셨고, 아빠는 내가 짐을 싣는 것을 도와줬다. 그리고 짧은 인사와 함께 손짓을 하고 쿨하게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나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네가 그렇게 꿈꾸던 독립 라이프가 이제 시작된다. 잘 살아남아보렴.
작은 원룸이라도 가구가 없을 땐 원래 크기보다 넓고 쾌적해 보인다. 관리실에서 카트를 빌려 차를 꽉 채운 짐을 두어 번 왕복하며 날랐다. 1시간 안으로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방문할 예정이라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지만, 붙박이 가구 외에 텅 빈 직사각형의 공간을 보니 묘하게 쾌적했다. 이 깔끔하고 쾌적한 공간에 내 짐을 밀어 넣는 게 맞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이런 식으로 발현됐던 거 같다. 괜히 그만둘까 하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제 돌아가기엔 너무 일을 많이 벌려놨다.
당장 1시간 안으로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오실 거고, 내일부터 가구가 들어올 거다. 당장 집에서 가져온 짐들만 정리해도 오늘 하루가 다 가지 않을까. 뭔가 생각하고 감상에 젖을 시간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내가 다 해야 하는 거,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테니까.
그리고 이 모든 걸 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엄마가 신신당부한 데로 온 집안에 성수 뿌리기.
모태 천주교인 집안에서 나는 꽤 오래된 냉담자지만 엄마는 레지오 활동까지 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다. 그리고 지난밤 내가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꼭 가져가라고 주머니에 밀어 넣어준 게 바로 성수와 성모마리아상이었다.
'꼭 집안 곳곳에 부리고 기도도 해야 한다.'
옛날 같으면 뭐 이런 걸 주냐고 질색했겠지만, 잘 챙겨갈게라는 대답과 함께 가방 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물건들을 넣었다. 이건 엄마의 방식인거다. 손없는 날 미리 밥솥을 넣어두고, 집 터에게 잘 살게 해달라고 인사하는 것과 크게 다를 거도 없지 않은가. 딸을 위해 준비한 독립 선물이니 감사히 받아야지.
온 집안 곳곳에 성수를 뿌리고 햇빛 가장 잘 드는 곳에 성수와 성모마리아상을 올려두고 집 정리를 시작했다.
이삿짐이 많지 않아서 따로 이삿짐 센터를 부르진 않았다. 30년 간 산 집에서 터전을 옮기는 일이라 짐이 제법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리하다 보니 짐이 별로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지금 당장 없으면 안 될 것'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모든 걸 다 챙겨가자고 하면 짐이 늘어날 순 있었겠지만, 차에 실을 수 있는 양을 계산하며 담다 보니 '이건 그렇게 급한 거 아니니까'하고 다시 넣어두는 물건들이 더 많았다. 이 기회에 짐 좀 정리하라는 엄마의 말에 버린 물건이 더 많았다. 안 입은지 1년이 넘은 옷, 오래된 화장품,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들, 여행지에서 샀던 스노우볼 등등. 한땐 이유가 있어 나에게 왔지만 이제 이유를 다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에게는 새로운 자리를 찾아줄 필요가 있었다.
본가 내 방은 벽 한 면이 붙박이장으로 되어 있었다. 안쪽 공간을 보면 제법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있는데, 구조상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물건들은 꺼내기 쉽지 않았다. 그 말은 뭔가 애매한 건 죄다 붙박이장 안 쪽으로 쑤셔 넣었단 뜻이다. 내가 작은 방으로 터전을 옮긴 게 5년 전이니 그간 쌓인 물건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옷들부터 처리하고 몸을 반정도 집어 넣어서 잡동사니들을 죄 꺼냈다. 대부분은 쓸데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래고 튼튼하고 큰 쇼핑백이라거나 쟁여뒀던 소모품들은 이사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가끔은 찾을 수 없었던 물건들과의 반가운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모두가 그런 책은 산 적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표지 질감과 색감까지 기억하고 있던 책을 다시 찾기도 했다. 소장용으로 샀던 책이 왜 붙박이장 안에 썩고 있었나 모르겠지만 이사 덕에 구출된 나의 책은 지금 새 집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과정은 지루하지만 내 안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느낌을 주었다.
필요한 짐을 선별하고 불필요한 건 버리고, 애매한 건 다시 포장해서 한 곳에 모아두고,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을 다시 찾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내 삶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열린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계약서에 사인할 때와는 분명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바쁘게 짐 정리를 하던 와중에 인터넷 기사님이 방문해 인터넷과 iptv를 설치해주셨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이 새 집에 닿자마자 나는 TV부터 켰다. 그전까진 TV를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었으면서, 마치 이게 없으면 큰일날 것처럼 바로 TV를 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새 집 정리를 했다.
새 집 앞에 배달되어 있던 택배들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 버리고, 광활하게 느껴지는 집 곳곳을 쓸고 닦았다. 무의식적으로 틀어둔 TV에선 때론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예능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때론 스트리머들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쏟아냈던 거 같은데 사실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없다. 그저 누군가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을 울렸던 기억만 남아있다. 듣지도 보지도 않을 거면서 왜 틀어놨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적막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집을 떠나기 전 간단히 한 식사 외에는 밥은커녕 물도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하루가 지나갔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정리에 지쳐 첫날은 배달 음식을 시켰다. 책상도 없어서 배달 온 휴지 묶음을 책상으로 만들어 그 위에 테이블매트와 접시를 올리고 바닥에 대충 주저앉아 식사를 했다.
그래도 이사 온 첫날인데 맥주 한 캔 정도는 기념으로 할까 싶었지만, 정신이 흐려지는 건 싫어서 논알콜 맥주를 사서 마셨다. 그리고 한 입 먹자마자 후회했다. 으 아무리 생각해도 논알콜은 아닌 거 같아.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이 다 계실 저녁 시간에 영상 통화를 했다. 사실 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먼저 전화할 생각이었지만, 눈앞에 할 일이 급급하니 그만 정신이 팔려서, 기다리다 못한 부모님이 먼저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얼추 정리된 집을 보여주고 집 밖 풍경을 보여주니 '잘 정리 됐네.'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분명 걱정하고 계셨을 텐데 눈으로 확인했으니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까맣게 변한 액정을 보니 또 한 번 묘한 바람이 내 안에 불어왔다. 진짜 혼자다라는 느낌.
그토록 원하던 정적이 왜 그 순간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통화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갑자기 뭔가 크게 다가왔고, 이 공간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쉴 새 없이 떠드는 TV는 나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게 새삼 뼛속 깊이 사무쳤다. 정작 함께 살 땐 살갑게 대화를 하지 않던 딸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독립 첫날에는 너무 외롭다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게 이거였나 보다.
매트리스도 배송이 안 와서 맨바닥에 이불을 깔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본가의 책상을 두면 침대를 둘 수 없을 만큼 좁았고, 소파베드를 침대 겸 소파로 써야 했다. 그런데 새 집은 방 가운데 아무렇게나 퀸사이즈 이불을 펼쳐도 공간이 넉넉했고, 그 남겨진 공간이 너무 크다는 느낌이 덜컥 들었다. 천장은 왜 또 이렇게 높아 보이던지. 내가 이 넓은 공간을 책임질 수 있을까? 내 삶을 책임지고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을까? 그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만약 모종의 이유로 내가 계속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가진 돈을 다 써버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들.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삶도 이런데 다양한 이유로 더 일찍 더 오래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건 오만한 일이지만 적어도 경험해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었을 감각들에 대해 감이라도 잡을 수 있게 된다는 게 독립이구나. 이걸 로망에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즐길 생각만 했으니. 정말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에게 독립 첫날은 로망보단 세상을 이해할 또 하나의 눈이 생긴 날로 기록됐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걱정 없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내 전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