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지 마. 웬만한 건 돈 내면 해결되더라.

매 순간이 당황스럽지만 약간만 생각하면 해결 못 할 일도 없다

by 심미금


'이걸 어떻게 하지? 한 번 도 안 해봤는데...'

'나 빼고 다 아는 거 같은데 어떡한담?'


새로운 걸 만나면 겁부터 먹는 아이였다. 원래 걱정도 많지만 호기심도 많았던 나는, 공교육의 입문한 후로 시끄러운 아이가 되었다. 눈에 띄면 찍히기 쉬운 교실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질문은 금지'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이상한 사상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켰고, 질문을 삼키고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며 살기로 결정했다. 물론 마음먹었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닌지라 내면의 부침이 있었는지, 공교육의 세계에 적응한 대가로 새로운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루틴 한 것, 이미 아는 것,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며 사는 삶은 평화로웠다. 24살에 방송국에 취업하기 전까지는.

얼떨결에 들어온 방송국은 눈이 팽팽 돌만큼 바빴고 매 순간이 새로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세계에 발을 디딘 나에게 선배들은 '넌 왜 호기심이 없니?' '자료조사할 때 이건 왜 안 물어봤어?'라고 물어봤다.

그래서 모르는 걸 물어보면 '그건 알아서 해야지'라고 답이 오긴 했지만.


그전엔 모르는 것도 일단 아는 척하는 거로 넘어갈 수 있었다면, 사회인이 된 후에는 앞에 조건이 더 붙었다. 호기심은 갖되 누군가를 귀찮게 하지 않아야 하며, 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이미 알던 일인 것처럼 알아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출 것.


그게 싫다던가 부당하다 느꼈냐 하면,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쨌든 이거 또한 내가 진화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그것으로 됐달까.


여전히 잘 모르는 걸 해야 할 땐 속에서 거부감이 잔뜩 올라오지만, 사회에서 더럽게 깎이며 구른 나는, 강제로 잃어버린 호기심을 주입받았던 시기 덕에 하나를 깨달았다. '싫긴 한데, 하면 되긴 하더라'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

어쩌면 초년생 때 만난 선배들은 나에게 은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트레이닝이 없었다면 여전히 나는 새로운 일에 겁만 잔뜩 집어먹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이 정도로 진화한 단계에서 독립한 것은 천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가구를 들이고 집을 꾸미는 것으로 끝일 줄 알았던 독립의 세계는 나에게 매일 새로운 퀘스트를 제공했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일의 어려움 여부와 관계없이 일평생 생각해 보지도, 해결해 본 적도 없는 일이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한 일들만 쏙쏙 골라 매일 내 일상을 채워줬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독립과 관련된 글을 읽고 대비해도 내 예상 범위 밖의 일만 일어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전의 나의 삶에선 부모님이 해결하셨던 일을 이제 내가 직접 수행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고, 세상은 나에게 말했다. '안 해도 돼. 근데 니가 해결 안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거야.'


보통 이렇게 막막한 일들에 둘러 싸이면 일단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화가 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제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가 됐구나.

하 정말 싫은데, 또 강제 레벨업이로군.




어떤 문제부터 이야기해 볼까. 일단 예상가능했고 실제로 나에게 닥친 일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이사 전날 침대주문을 취소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거 같다.


이사를 위해 가구를 고를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침대였다. 본가 내 방은 침대 혹은 책상 둘 중 하나만 감당 가능한 쁘띠 한 사이즈였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책상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무려 6년을 소파 베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침대로 사용했다. 이제 내 집이 생기면 꼭 좋은 침대를 둬야지. 나도 푹신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잘 거야 하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는 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이사 갈 내 집이 복층 구조라는 거였다.

복층의 안 좋은 점은 이미 너무 많이 들었으니 미루고, 방 하나가 붙으면 월세 단위가 달라지는 서울의 집값 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복층이었다.


1층에 침대를 두는 게 편할 거란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집순이인 데다 재택근무를 포함한 책상 앞 작업이 많은 내 라이프 스타일상 1층에 책상을 두고 복층에 침대를 두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우리 집의 메인 자리인 큰 창문 바로 앞에 책상을 둬야 그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일도 하고 밥도 먹고 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복층에 침대를 두면 자러 갈 때마다 계단을 올라야 해서 귀찮긴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을 놓고 봤을 때 비교의 대상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복층에 침대를 두기로 한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침대를 어떻게 복층에 둘 것인가.

사실 여기까지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게 복층 오피스텔이고 당장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복층에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이렇게 수요가 많은데 복층에 침대를 올리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는가. 원래 수요가 많은 일에는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이라 믿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침대를 보기 시작했는데, 후기를 읽을수록 걱정되는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업체들이 배송 인원의 부족과 파손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복층 운반을 하지 않았고, 1층까지만 배송되거나, 상황에 따라 복층에 올려줄 수도 있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현장을 와봐야지만 안다는 내용들 뿐이었다. 배송비만 내고 다시 반품하는 일도 꽤 있는 일 같았다.


매트리스를 포기한다면 될 일이지만, 지난 6년 간 소파베드에서 자며 매트리스에서 자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포기하라니. 그럴 순 없지. 오늘의 집 어플을 뒤져 복층 후기가 있는 매트리스마다 문의를 남기고 다녔다. 대부분 배송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어쩌어찌 복층 배송 가능하다는 답변을 준 업체 몇 개를 찾아 그중 한 곳을 골라 침대를 주문했다.


문제를 일단락 지었음에도 내면의 쎄함은 웬일인지 사라지지 않았고, 이사 직전에 업체에 한 번 더 복층 설치가 가능한 게 맞는지 문의를 남겼다. 고객 센터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설치 기사님과 이야기해 보라는 답변을 했고, 이사 전 날 연락온 설치 기사님께 문의하니 복층은 원칙적으로 배송이 안 되니 취소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아 어쩐지 싸하더라니... 보통 일을 해결하고 나서도 찜찜하고 본능적으로 쎄하면 일이 생긴다는 걸 데이터 베이스로 알고 있어서 각오는 했지만 일이 벌어지고 나니 머리가 멍해졌다.


그 상태로 일단 이삿짐을 가져와 집을 정리하는데, 이번엔 예상 못한 문제가 두 건 벌어졌다.

하나는 나의 자만(?)으로 벌어진 일이었고(스불재란 뜻이다) 하나는 나의 부주의? 혹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생겨난 일이었다.


우선 스불재는 커튼 설치였다. 이사 간 집은 벽 한 면에 크게 난 창문이 매력적인 집인데,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커튼 설치 부분에 일부 부품이 빠져 설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전 세입자는 고장 난 채로 두고 임시로 간이 봉을 설치해 커튼을 쳤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문제가 맞아서, 나는 고민 끝에 압축봉을 사서 직접 커튼을 달기로 했다. 창문이 좀 많이 크긴 한데,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창문 길이에 맞춰 주문한 압축봉과 마주한 순간 나는 망연자실했다. 창문이 큰 만큼 압축봉도 커져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길이까지 다 재놓고 실제 그 크기와 무게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했고, 그냥 무작정 시도하기엔 누가 봐도 설치다가 벽지든 창문이든 깨 먹기 딱 좋은 상태가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부주의 혹은 사고라고 생각한 것은, 가스레인지 문제였다. 집은 엉망이고 매트리스 배송은 취소됐고, 커튼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밥이나 먹고 시작할 요량으로 가스레인지를 켰는데... 가스 점화가 되지 않았다.


이사 전 주에 가스 검침원이 왔을 때 체크했던 것을 기억하면 그때까진 문제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한데, 지금 당장은 가스 점화가 되지 않았고, 이 문제를 전세입자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전세입자가 문제를 만들어 놓고 그냥 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여러 사건의 연타로 마음이 지쳐버려서 그만두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멍청하고 손해 보는 행동일 수 있지만 그땐 그냥 누군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입 아프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사건 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오기도 했다.

어떤 일은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일은 주문부터 다시 해야 하고, 어떤 일은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업체든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걸 하나하나 해결하기엔 지금 집구석에는 집에서 가져온 온갖 물건들이 널려져 있고 당장 내일 몇몇 가구가 배송올 계획이라 짐을 치우고 가구를 받을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일단은 짐 정리부터 하면서 생각하자 싶어서 붙박이장에 서랍장을 열었는데, 서랍장이 덜그덕 거렸다.

아 맞다 주말에 입주청소 해주러 오신 분이 레일이 고장 난 거 있으니 고치는 게 좋겠다고 했었지... 맞다 이거도 해결해야 하는구나. 잊고 있었다.


문제가 몰아닥쳤을 때 사람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화를 내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세상을 원망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인데, 그나마 일을 하면서 돌발 상황을 너무 많이 겪다 보니 요 몇 년 사이에는 화를 내 후에 '그래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의무적으로 붙게 됐다.


엉망이 된 집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 깡 탄산수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전세입자에게도 화가 나고, 그냥 눈 감았다 뜨면 집이 알아서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고, 커다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눈부시고. 당장 오늘 밤은 맨바닥에서 자야 할 테니 등이 베길거고.

너무 성질나는데... 그래서 이럴 땐 엄마는 어떻게 했지?


화는 내는 건 이따 해도 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 하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맞았다. 하다 못해 침대를 새로 주문해도 업체에서 확인하고 배송을 보내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일단 해놓고 화를 내는 게 맞지... 보통 이런 건 다 부모님이 해결하셨었는데, 이제 진짜 나 혼자 해야 하는구나. 내가 외면하면 이 문제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겠구나.


방법은 외면하던가 해결하던가.

그리고 나는 조금씩 해결해 보는 쪽을 선택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남들도 다 하고 살던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




씩씩대는 화를 애써 누르고 나는 부동산에 전화부터 걸었다. 업무시간에 전화를 하는 게 맞으니까.

가스레인지 화구와 레일에 문제가 있음을 알렸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 물어봤다. 이 과정에서 욱해서 전세입자가 문제 있는 걸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갔다고 화를 낼까 했지만, 부동산 사장님이나 집주인의 잘못도 아니었고, 이미 지나간 일에 화를 내봤자 의미 없다 싶어서 팩트만 전달했다. 적어도 이들은 내 이사 날짜를 알고 있었고, 이사 온 첫날 말한 문제가 내 귀책사유가 아님은 이해하는 상식적인 분들이었다.


우리의 친절한 부동산 사장님은 바로 집주인에게 확인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고, 잠시 뒤 일단 고친 후에 청구된 금액을 알려주면 수리비를 보내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순식간에 문제 두 개를 해결하고 나니(물론 실질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고 나서는 오늘의 집 어플을 켜서 침대를 검색했다. 어차피 복층이라 매트리스와 저상 프레임을 쓸 계획이었기 때문에 예쁜 디자인이고 뭐고 복층에 설치된 후기만을 뒤져서 내용을 찾아봤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롤팩매트리스]를 사서 올리는 게 가장 현실적일 거라 조언해 줬다.


롤팩 매트리스는 롤 형태로 말려서 배송되기 때문에 복층에 올리기 상대적으로 쉬웠고, 매트리스 + 저상 프레임 조합으로 사용하는 후기가 압도적으로 많아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제품은 내가 기존에 구매했던 침대보다도 비싸서 좀 놀랐지만(매트리스 하나 가격이 매트리스+프레임 조합보다 비쌌다) 일단 기존에 구매한 침대 카드값이 환불된 걸 보자마자 바로 결제부터 했다.


땅바닥에서 이틀 정도 자고 나면 매트리스가 배송될 거니 이것은 이제 시간에 맡기면 될 문제고, 이제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할 시간이다.


1. 롤팩 매트리스를 복층에 옮길 방법

2. 커튼을 창문에 달 방법

3. 고장 난 레일을 수리할 방법


짐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머릿속에선 계속 이 세 가지를 떠올렸다. 이 세 문제는 공통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내 성격대로 스스로 해결하려 들다가는 일을 더 크게 만들 것들 뿐이었다. 집에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땐, 주로 아빠가 해결을 하셨는데 아빠는 건축 업계에서 오래 일했고 온갖 자격증을 가진 집 고치기 전문가였다. 집에 전문가가 없다면?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전문가를 부른다.


집에 해결 못 할 문제가 생겼을 땐 전문가를 부르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왜 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왜 못했긴, 해본 적이 있었어야 사람 부를 생각도 하는 거지.

근데 사람은 어디서 부르지? 철물점 같은 데 전화해야 하나? 근데 부탁할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이거 다 어떻게 설명하며, 이왕 사람 부르는 거 한 명이 이걸 다 해결해 주면 깔끔할 거 같은데...


그렇게 나에게 닥친 문제와 전문가를 넣어 검색하며 방법을 모색하던 중, 내 눈에 광고가 하나 띄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기술을 팔 수 있는 사이트 [숨고]

하늘에 맹세코 이건 광고가 아니다. 아주 예전에 일 때문에 접속해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고, 나의 문제 해결방법에 이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평소엔 핸드폰을 통해 내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고 그와 관련된 광고가 뜰 때마다 소름 끼치고 싫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이 시스템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아마 혼자 생각했다면 동네 + 용역을 검색하는 게 내 한계였을 거다.


생각해 보면 일할 때는 뭔가 필요하면 항상 전문 사이트가 있는지부터 검색했었다. 스튜디오나 촬영용 집을 빌려야 할 때는 에어비앤비나 아워플레이스를 봤고, 필름메이커스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때론 전문가를 찾으려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강연을 뒤지기도 하고.


문제 해결에는 관련 전문가를 찾는 게 우선인데, 왜 내 집에는 그걸 적용할 생각을 못했지?

집이야 말로 전문가가 해결해줘야 하는 영역 아닌가?

전문가를 모시고, 합당한 돈을 드리며 되잖아? 왜 모든 일을 네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자괴감이 들지만, 숨고를 떠올렸다는 것,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뇌 안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근데 이건 인정해줘야 한다. 질문하지 않고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알아서 센스 있게 해결하라고 한평생 배워왔으니, 내 문제를 누군가에게 도움 받아서 해결한다는 건 너무 새로운 영역이었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가 모여있는 사이트가 있다니. 내가 견적을 올리면 그들이 알아서 돈을 제시해 준다니. 돈 낼 각오는 진작에 되어 있는 나 같은 호구에게 이건 정말 혁명이었다.

드디어 창에 내가 한 달간 심혈을 기울여 고른 커튼을 달고 복층에 매트리스를 깔 수 있겠구나. 며칠만 땅바닥에서 자면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생활할 수 있어 ㅠㅠ 소파 베드 위에서 꾸던 꿈을 드디어 이루는 거야...!


바로 어플을 설치하고 들어가서 필요한 견적을 올리려는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서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문제가 너무 많아도 문제구나 생각하며, 일단 내 기준 가장 시급한 매트리스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하루빨리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싶었으니까.


복층에 롤팩 매트리스를 올리고 설치해 주는 내용으로 글을 올리자 바로 견적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제품과 집의 구조, 복층의 높이 등을 모두 계산해 미리 적어놓은 내용을 복붙 해 답변하기 시작했고(침대 취소 당하지 않으려고 집 들어오는 입구부터 계단, 복층의 너비와 높이까지 미리 싹 적어서 기록해 놨었다) 그중 답변이 가장 빠른 업체 한 곳에(그리고 그냥 괜히 느낌이 오는 업체에) 레일 수리와 커튼 설치 가능여부를 함께 문의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후 출장 한 번에 세 가지 일을 다 처리해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 매트리스 배송 다음 날 방문하는 것으로 약속까지 잡고 나니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진 막막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았는데, 돈을 내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이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다니.

정말 돈이면 다 되는구나... 이건 좀 비약 같지만.


아무튼 그날은 나에게 자본주의에 눈 뜬 날로 기록됐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어'에서 '못할 건 없지. 돈만 내면'으로 생각이 바뀐 날.

전자는 의욕에 불타는 젊은이(?) 느낌이 있다면 후자는 좀 더 원숙해진 느낌이 나는 건 내 착각일까.

조금 위험하지만, 전혀 틔여있지 않던 부분이 터진 느낌은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이사 전부터 나를 부글부글 끓게 했던 문제들은 단 삼일 만에 해결됐다.

두 명의 전문가는 깔끔하게 내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나는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하기만 하면 됐다.

사실 집 문제를 해결하자고 사람을 부른 건 처음이라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전문가들에겐 이것이 일상이란 것이 마음이 위안이 좀 됐다. 내가 어색하거나 말거나 그들은 척척 자신의 일을 끝내고 빠르게 다음 문제를 해결하러 떠나셨으니까.


결론이 좀 이상하게 나는 거 같긴 한데 이 경험 후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예전에는 새로운 일이 닥치면 '어떡하지? 내가 이거 해야 해야만 해!'라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이 든 다음에 '안 되면 전문가를 부르는 방법이 있어'라는 다음 옵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된달까.


예전에 지인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큰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땐 이해 못 했던 것을 이제는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독립해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뜻이 아닐까?


저 같은 불안이분들 마음에 화가 싹 밀려와도 일단 짱돌을 내려놓으세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하고, 안 되는 건 돈을 지불해서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우리를 도와줄 준비가 된 이들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