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다고 진짜 대운이 바뀌었을까?

확실한 건 3개월 산 내 집이 30년 산 집보다 편해졌다

by 심미금


냉장고를 열어보니 탈취용으로 모아 둔 커피 찌꺼기가 꽤 많이 쌓였다.

약 한 달간 커피를 내릴 때마다 모아서 말려둔 커피들이 한 봉투를 채웠으니 이제 마지막 소임을 하고 떠나보내 줄 차례가 된 것이다. 작은 냄비를 꺼내 커피 찌꺼기를 몽땅 담고 물을 넉넉하게 넣은 뒤 가스레인지 불을 올렸다. 너무 강한 불로 하면 커핏물이 온 주방에 튀기 때문에 불은 약불로 은은하게 맞춰주면 된다. 이 상태로 30분 정도 끓이는 동안 실외기실 옆에 놓아뒀던 서큘레이터를 가져와 열어둔 창문과 마주 보게 두고 켠다.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놔도 공기가 고이는 느낌이라 순환을 시키려고 덥지 않아도 서큘레이터를 켜두는 편이다. 효과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창가에 둔 다육이들이 전보다 생생한 거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커피물이 다 끓은 후에는 불을 끄고 한 김 식힌다. 물기를 완벽하게 빼고 건조해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식힌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팬에 볶아 수분을 완전히 날려 버린다. 그 후에 완벽히 식은 커피 찌꺼기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면 된다. 이 과정을 다 하면 한 시간가량이 걸리는데, 창문을 활짝 열어놔도 온 집 안에 은은한 커피 향이 돈다.


원래도 향에 민감한 편이었지만 내 집이 생긴 후로는 거의 집착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현관과 베란다 문을 열면 온 집안에 맞바람이 불던 본가와 달리 내 작은 원룸은 잠자는 공간, 생활하는 공간, 요리하는 공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신경 써서 관리해주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여러 생활 냄새가 섞이면 기분이 다운되는 건 물론이고 손님이 찾아왔을 땐 혹여라도 안 좋은 인상을 줄까 봐 안절부절못해진다.

정말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는 건 참을 수 없다. 이제 이 집은 내 얼굴이니까.




이사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도저히 내 집 같지 않고 낯설기만 하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이제 이곳이 내 집이 됐다. 어느 순간 내 집 하면 이 작은 원룸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진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와 조용한 동네 풍경이 떠올랐었는데. 인간의 적응이 이렇게 빠르다.


이제 밤에 잘 때 냉장고 소음이 들려도 놀라지 않고, 샤워할 때 복도나 배수관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지도 않는다. 집에서 남산 타워가 보인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는데 이제 익숙해졌고, 바로 번화가로 이어지는 거리도 이제 당연한 나의 영역이 되었다.


심지어 명절 때 본가에 갔을 땐 집 주변이 너무 평화로워서 놀랐다. 차들이 빵빵대지 않는다니. 우리 집에선 창문을 닫아도 교차로에 차들이 빵빵대고 꼬리물기 잡는 경찰 사이렌 소리와 앰뷸런스, 소방차 소리가 24시간 울려 퍼지는데. 동네 친구가 한 번 자고 갔다가 너무 시끄럽다고 깜짝 놀라기에 '이게 시티라이프야. 뉴욕 같지 않니.'라고 농담을 했었다.


이렇게 기준이 잡혀버리고 나니 본가에 지낼 땐 익숙하고 편하면서도 묘한 위화감이 든 채로 보내야 했다. 내 손길이 닿은 공간이 아니다 보니 얹혀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고 해야 하나.


더 놀라운 건, 장소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는데, 내 집에 있을 땐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것도 달리 본가에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 본능적으로 몸도 아는 거다. 본가에선 내가 집을 가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본가에 살 때 그래도 나도 집안일을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던 것인지 말이다.


30살 때부터 독립을 꿈꿨지만 38살이 되어 서야 독립을 실행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심리적 이유는 바로 사주 때문이었다. 사주 맹신론자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나에게 38살이나 돼야 독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땐 반드시 집터를 옮겨야 한다 이야기를 하니 혹할 수밖에. 내 귀가 이렇게 얇다.


그래서 이사를 감행했을 땐 약간 설레는 것도 있었다. 이제 진짜 이사를 했으니 뭔가 달라질까?

어떤 게 달라질까? 정말 이사하자마자 엄청나게 큰 일을 제안받는다거나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거나 하다 못해 로또가 된다던가 하는 행운이 벌어진다면? 내 삶이 180도 달라진다면?


이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낯선 환경에 정착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에는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일상이 정리되고 약간의 평온함이 감돌자마자 이 기대감이 다시 쓱 올라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사해 보니 어때? 진짜 대운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


약간 그런 느낌이다.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을 땐 몰랐는데, 큰 일을 처리하고 나서 문득 정신 차리니 밤마다 아랫집에서 담배 냄새가 올라온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느낌. 분명 전과 달라진 건 없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깨닫고 위기감을 확 느끼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면 '그러게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한 번 지켜보자. 조만간 뭔가 변화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설렘을 즐겼는데, 시간이 흐르고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자 이 똑같은 메시지에 뉘앙스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운이 바뀐다며.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어? 너 어떡하려고 그래?'


진짜 어떡하려 그러나. 어젯밤엔 자려고 누웠다가 곧 월세 낼 날인 걸 깨닫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번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내가 모아둔 6개월 치 생활비의 반이 날아가는 셈이었고,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더라도 생활을 하면서 이 빈 곳간을 채우기란 쉽지 않을 거 같았다. 정말 생활비를 다 쓸 때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 어떡하지? 빈털터리가 되면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텐데?


한 번 마음이 쫄리기 시작하니 평화롭던 내 집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적당한 수납함을 찾지 못해 정리가 안 된 붙박이장이라던가 매일 줄어드는 식료품, 집을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살 엄두가 안 나는 인테리어 소품까지.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땐, 일하는 친구들이 일하기 싫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카톡에도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서 아무 말하지 않는 걸로 잠시 카톡을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와 똑같이 일이 없는 프리랜서들을 만나면 속이 편하냐? 전혀. 나의 미래에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또 다른 한숨이 늘어갔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정해둔 기한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기한이 되자마자 변하지 않은 나의 삶에 대해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한 거지. 근데 내가 봐도 그 기한이 너무 짧긴 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혼자 먹여 살려야 하는 걸? 미래를 알지 못하니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게 범인의 한계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거라면 무슨 느낌인지 확실히 알 거 같긴 하다. 독립 후에 나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으니까.


정리해 보자면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이사 후에도 내 대운은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본가에 있을 때보다 몇 곱절로 모아둔 돈을 까먹는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사야 할 것, 혼자 사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것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뾰족한 해답은 아직 없다. 불안감 때문에 잃지 말아야 할 호기심과 설렘까지 영향을 받는 거 같아서 그것도 좀 슬프다.


독립해서 행복하다더니 순 걱정과 불안만 늘어놓는 거 같은데,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고, 이것은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베이스로 두고 그 위에 두 발로 딛고 선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매우 불안하고 미래가 걱정되고 삶이 두렵지만, 편안하고 행복하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복잡한 행복을 누리는 데 있다.




잔고가 줄어든 만큼 내일이 두렵고 기대된다. 그리고 대운은 어쩌면 이미 바뀐 걸지도, 바뀌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이게 지금까지 내 독립생활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인 거 같다.


드라마틱하게 한 순간에 모든 게 바뀌는 그런 건 당연하게 없고, 똑같이 지난한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안 좋다. 이사하기 전엔 내 집도, 집 밖의 풍경도, 내가 가던 곳도 늘 같았다. 30년째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곳을 다녔으니 편안하고 안락했다. 모든 게 예측 가능한 데서 오는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그 익숙함과 안락함에서 벗어나자고 선택한 길 아닌가.

그리고 불안함을 선택했다면 아주 그 선택에 충실하게 하루하루 새롭고 불안하다. 일부러 집 반경으로 동서남북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는 중인데 아직도 새로운 골목, 가게, 길이 보인다. 언덕과 내리막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내 인생의 굴곡을 보여주는 기분이다. 자 이제 안락함을 두고 불안함을 선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보이니?


그럼에도 몇 달을 살고 계속 길을 걷다 보니 익숙한 곳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에도 패턴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매일 걷다 보면 그 패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람이다.


이제는 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오늘은 시장에서 채소를 사고 내일은 도서관을 들렸다가 마트 세일 상품을 확인하고 저녁에는 한강을 뛰는 일상의 계획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 프리랜서 작가 동료들을 만난다거나 기획 단계에서 표류 중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선배들과 만나서 일을 할 때도 있고 머리에 맴도는 생각을 정리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폭염이 지난 시즌 즈음부터는 비정기적이지만 쿠팡 단기 알바를 나가며 월세와 관리비 정도는 벌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해고 있다. 어쩌다 보니 10월에 10km 러닝 대회를 두 개나 나가게 돼서 좀 덜하지만 지금 기획 중인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11월부턴 주에 3회 이상으로 쿠팡 근무를 늘리려고 한다. 쿠팡을 나가도 생활비는 마이너스가 되겠지만, 적어도 나가서 일하면 월세와 관리비는 세이브할 수 있으니까. 향후 3년 안에 미래를 위해 업무적으로 변화 줄 수 있는 게 있는지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거 같다.


음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뭔가 변화가 있는 거 같기도?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대운이 바뀐다라는 것이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는 것을 뜻한 다면 이미 대운은 바뀌기 시작한 거 같다.


창 문 밖을 바라보면 수많은 창문들이 보인다. 아파트, 빌라, 학원, 시장, 가게 등등.

예전에는 그저 그곳들을 바라보며 '저 집은 얼말까? 저기 사는 사람은 부자겠지?', '일해서 좋겠네 나도 일하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했다면, 요즘은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 네모난 곳에 한 명 이상의 삶이 담겨 있을 텐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지금 이 순간엔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일에 찌들어 살고 본가의 안락함 속에 살 땐 잊고 있었던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아마도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느라 그런 거겠지?


내 독립생활은 이제 시작이고 아직 뭔가 정의하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내년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낮엔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 치고 밤엔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며 타인의 삶과 내 삶을 궁금해하며 살겠구나. 뭐 나쁘지 않을지도?

낯선 공간을 내 영역으로 넓히는 게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내 대운은 아마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